싸움에 기술이 필요하다면
화해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화해할 때는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너무 빨리도 너무 늦지도 않은 사과는 화해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잘못한 사람이 즉각 사과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상대가 사과를 받아들일 기분과 상황이 아닌데 사과를 한다면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다.
자꾸 우물쭈물하다가 사과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서도 안된다.
어찌어찌 상황은 지나가고 제대로 화해가 안된 채 넘어갈 수 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마음에 서운함과 억울함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우리 부부의 화해 타이밍은 싸운 다음날 점심에서 오후 사이다.
어느 순간부터 둘이 그렇게 정한 바도 없지만 이 패턴이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요새 자주 싸우지는 않지만 싸운다면 주제는 거의 아이들 문제다.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 교육관이나 철학, 가치관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이상 이 싸움은 불가피하다.
서로서로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어도 어떨 때는 자신의 생각을 더 관철시키기 위해 큰소리를 낼 때도 있고 가끔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있어 예의를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 집은 대부분 내가 나의 방식을 고집하고 남편이 따른다. 주양육자가 나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가 나의 의견을 따라주다가도 가끔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발생하여 그가 의견을 피력하다 보면 말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러면 분위기가 냉랭해지는데 애들도 있고 하니 각자의 감정은 일단 추스르고 서로 말을 아낀다. 더 큰 싸움을 막기 위해 그렇기는 하지만 이미 둘 다 기분은 상했기 때문에 바로 화해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다 잠자리에 든다. 그러다 다음 날이 되면 그가 출근하고 나는 아이들 등원시키고 서로 각자의 오전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가 점심을 먹은 후 나에게 전화를 한다. 보통은 그런데 아주 가끔은 점심시간이 아닌 오후 3~4시쯤에 전화가 올 때도 있다. 그때까지도 전화가 오지 않으면 내가 한다.
그가 알지 모르겠지만 싸운 다음 날 나는 그의 전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의 전화가 오면 그냥 사르르 마음이 풀린다. 이미 전화를 받기도 전이여서 화해하기 전이지만 이미 내 마음은 그렇게 된다.
어찌 됐건 그는 사과를 하기 위해 혹은 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민 거니까
그 마음이 가상하다. 이쁘다.
그가 전화를 거는 용기를 냈다면 나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는 전화를 받아서 평소와 다름없이 말하고 싸운 일을 먼저 언급하지 않는다. 어제 싸운 일이 마치 없었다는 듯이. 먼저 전화한 그가 무안하지 않게.
일전에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는 걸로 말다툼을 했다. 그는 약을 먹이는 것보다 쉬고 스스로 낫기를 좀 기다려봐야 한다는 주의고 나는 증상이 생기면 진료를 보고 그에 맞는 약을 먹어 빨리 치료해야 한다는 주의다. 둘째 아이는 특히나 감기에 자주 걸려 걸핏하면 병원에 가고 잘 낫지도 않아 2~3주 항생제를 먹을 때가 있어 우리는 이 문제로 여러 번 다퉜다.
그의 말도 맞다. 항생제를 오래 먹는 것이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감기에 걸리면 그저 푹 쉬며 잘 먹으면 되는 것도 알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니 그것에 초점을 맞춰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그의 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의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며칠씩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게 되면 언제까지나 내가 가정보육을 하고 있을 수 없고 둘째 아이처럼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이는 점차 좋아지는 경우보다 중이염이나 폐렴으로 더 악화될 때가 많기 때문에 나는 하루이틀이면 몰라도 감기가 나을 때까지 그저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아이가 감기 증상이 보이면 하루 이틀은 지켜보다가 병원에 데려간다.
그가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고 아이가 병원을 한 달 내내 다녀도 낫지 않으면 내게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는데 그가 그럴 때마다 마치 나를 가벼운 감기로 애들을 병원에 데려가 항생제만 잔뜩 먹여 오히려 면역력만 떨어뜨린다고 책망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나 내게 앞으로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취소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소리를 하면 해결책도 없으면서 원론적인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 같아 남편이 밉다.
병원을 예약해서 데려가는 것도 내가 하고 병원에 가서 1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다가 진료를 겨우 보고 오는 것도 내가 하고 매 끼니마다 밥 먹여 약까지 꼬박 챙기는 것도 내가 거의 하는데
혹여 아이가 열이 나면 밤새 옆에서 시간마다 열체크하고 해열제 먹여 간호하는 것도 난데
그냥 속 편하게 '감기는 집에서 푹 쉬고 잘 먹으면 나아' 하고 말하는 그가 미워 나는 큰 소리를 쳤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아이들이 아파도 당신은 회사 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나는 나의 모든 일정이 올스탑되고 있던 일정도 다 취소해야 하며 며칠을 아이 돌보는데만 집중해야 한다며 큰 소리를 냈다.
그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느 싸운 날처럼 우리는 침묵을 하다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그의 전화가 왔다.
점심시간 때 전화할 줄 알았는데 3시가 다 되어 전화가 왔다.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집에 있었어"
"밖에 눈이 와서 여보가 눈 구경하려고 밖에 나갔나 했지"
"아니야. 그냥 집에서 이것저것 하느라~"
"응, 눈이 많이 와서 전화해 봤어"
그는 전화를 해서 어떨 때는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미안한지 말해줄 때도 있지만 또 어떨 때는 그저 안부전화처럼 걸고 끊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건 화해의 전화다. 예전에 나는 융통성도 없고 유연하지도 못했어서 정확한 사과를 받아내려고 고집을 부렸다. 이래 이래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겠다. 하는 공식적이고도 평이한 그런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말하는 그가 진심 이어야 하는데 내가 요구해서 사과를 받아낸들 그게 정령 사과일까 싶다.
"그래. 다른 할 말은 없고?"
사과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싸운 일에 대해서는 서로 잘 말하고 화해하고 넘어가고 싶어
그에게 일부러 물어본다
그런데 그가 뜬금없이
"사랑해"
말한다.
"미안해"가 아니라 "사랑해" 라니.
눈이 와서 그런가
그래서 로맨틱 지수가 높아진 건가
어찌 됐건 "미안해"보다 듣기 좋은 "사랑해"였다
그리고 밖에 예쁜 하얀 눈이 흩날리니 마음은 더 말랑해졌다.
서로 말싸움하고 미웠던 감정은 오간데 없이 사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래 가끔은 사과보다 고백이 더 빨리 화해를 불러온다.
부부끼리 살다 보면 그리고 싸우다 보면
누군가의 일방적인 잘못이 있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차이와 쌍방의 잘못이 공존해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러니 부부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상대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자주 싸우는 만큼 화해할 일도 많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