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남의 편'이 아니다
'남자 중 유일한 내 편'이다
임신을 하고 나니 그가 미워졌다.
나의 몸은 비정상적으로 달라지는 것 같았다. 외형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몸속에서도 이상한 변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때로는 내 몸 안에 에얼리언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니 제약이 훨씬 많았다.
약을 먹을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무슨 제약이 그리 많은지 임산부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몸에 담아 키우고 있는 하나의 기계 같았다.
그는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했고 내가 필요한 것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미워졌다.
나는 실제로 괜찮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없게 된 많은 일들을 그는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가 났다.
출산을 하고 나서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아이라는 신세계를 나는 너무 버거워했다. 나는 그 무게를 그가 덜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 역시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고
아이한테는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았다. 감당해야 하는 몫이 이미 다른 것에 나는 분했다. 억울했다.
힘든 이 모든 상황들이 그가 만들어 놓은 함정 같았다.
결혼 후 그의 일터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살게 된 나는 도와줄 엄마도 힘듦을 호소할 형제도 친구도 주변에 없었고
아이와 함께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홀로 육아라는 노역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날이, 조금씩 무너져 갔다. 나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엄마라는 사람만 남아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인생은 180도가 달라졌는데
그는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똑같이 사랑하고 둘이 같이 결혼했는데
왜 결과는 이리도 다르지?
왜 이 험난하고 위험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대 굴곡을 나 혼자 겪어내야 하는 거지?
도대체 그는 무엇을 하는 건가?
이 모든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모두 여자만의 몫이었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의 억울함, 분함, 화남, 힘듦을 모두 통틀어 화살을 그에게 쐈다.
그 화살을 그는 어느 날은 묵묵히 받았고 또 어느 날은 억울해했고 또 어느 날은 화를 냈다.
나는 알았다. 나의 화살의 끝이 그라는 게 잘못된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화살을 겨눌 곳이 그밖에 없었다.
그의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망가진 것에 대한 원인을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지만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으니까.
이 잔인한 화살을 거두어들이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가족끼리 밥 먹으며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동생이 남편에게 물었다
"보통 신혼 때 기싸움을 한다는데 형부는 어땠어요?"
그는 말했다
"기싸움을 할 수가 없었어. 언니가 임신 중이니까 그냥 졌지 뭐. 거의 맞춰줬어."
나는 옆에서 "무슨~" 하고 말했지만 사실 그 말이 맞다는 걸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는 애초에 나랑 싸울 생각이 없는 아니 할 수 있는 거라면, 대부분을 나에게 맞췄다.
나는 임신해서 예민했고 아팠고 힘들어했으니까 그런 나를 그는 지켜야 할 아군으로 생각했지
싸워서 이겨야 할 적군이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가 나를 철저히 아군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만 적군으로 둬서 뭐 하나
그냥 갑자기 전의를 상실했다. 아군끼리 싸워 뭐 하나.
그리고 둘째를 출산한 날.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아 응급으로 수술해 둘째를 낳았다. 전신마취를 해서 그런지 깨어난 후 극심한 고통에 하루 반나절을 거의 기절했다 깼다를 반복했고
무통주사를 만빵으로 써도 배가 아팠다. 내 생에 그렇게 아픈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고통과 아픔이 지금 다시 떠올렸을 때 지옥이 아닌 것은 모두 남편 덕분이다.
3월이었고 창문을 통해 봄바람이 들어왔고 머리맡에 큰 꽃바구니가 있었다. 바람이 꽃들을 스치며 풋풋하고 향긋한 꽃향기가 났다. 그리고 아주 잔잔하게 연주곡이 흘렀다.
기절하듯 자고 깨어나면 꽃향기와 음악소리 덕에 다시 안정을 찾고 또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아픈데도 천국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수술하는 동안 꽃가게를 찾아 꽃바구니를 사들고 왔고 내가 아파서 잠든 순간에도 계속 음악을 틀어놨다. 나중에 물으니 그렇게 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덜 아플까 해서 그랬다고 했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최선을 다해. 내가 알든 모르든.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음을 나는 천천히 알아갔다.
나는 아직도 결혼과 육아는 여자에게 아주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직도 남편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와 감당하고 있는 몫에 대해 더 이상 나의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서로 하고 있다고 믿는다.
남편을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고 한다는 말을 웃으면서도 동조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나는 아빠도 하늘나라에 가셨고 남자 형제도 남사친도 없다. 나에게 남편은 '남자 중 유일한 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