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는 누구에게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누군가한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려서 나는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들어 사람들이 그걸 환청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어려서는 '환청'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기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다.
여하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목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나를 향해 말하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천장 너머 혹은 문 너머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누구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어쩌면 그 소리는 내 머리 속이나 가슴속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나에게 하는 소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 목소리들은 대부분이 책망하는 것이었다.
"빨리 해. 그렇게 느려터져서는. 도대체 뭐가 되려는지, 너같이 느려 터진 애는 어디에도 없을 거다."
"집중하라고. 어디다가 정신을 팔고 그러는 거야?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애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사실은 다들 너를 미워해. 똑똑한 척, 예의 바른 척 해도 다들 알고 있어. 네가 어떤 애인지. 니 실체를 알면 누구도 너를 좋아하지 않을걸"
같은. 나를 나무라고 탓하고 못마땅해하는 소리들.
어린 나는 묵묵히 그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집중해서 들을수록 나의 행동은 점점 느려졌다.
대부분은 뭔가 빨리 준비해야거나, 다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은 긴박하고 급한데 나는 엿가락 늘어지듯 어물쩡 정신을 놓아버렸다.
나의 모든 행동은 슬로모션을 걸어놓은 듯 움직였다. 무중력 상태나 혹은 물속. 그런 곳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상한 건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발치는 목소리가 귀에서 쟁쟁거리고 나는 한없이 느려져 곧 멈출 것 같은데
이 모든 건 그저 나만 아는 것들, 나만 느끼는 것들.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평소의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종종 다른 세계에 퐁당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아무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그 목소리들이 다시는 들려오지 않았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는데 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시작했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서 없어졌던 것 같다.
왜인지 이유도 모르고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만의 비밀로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에서는 불안정했던 어린 내가 겪은 정신적인 혼란 정도로만 여기고 묻어두고 있다. 이제와 이유를 찾는 것도 너무 늦은 것 아닐까? 이제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인데 애써 이유를 찾은들, 그 환청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안들 그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린 나를 떠올리면 그 목소리들이 되살아 난다. 그림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데 웅크려 있는 아이에게 비수 같은 뾰족한 것들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쓰라린다. 그 그림에 아이는 아파하지도 않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엎드려 있다. 엉엉 울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있는 그 아이가 나는 짠하다.
아니라고. 너는 참 사랑스럽다고. 애쓰고 있는 게 장하다고. 아픈 기억들은 금방 사라질 거라고. 많이 웃으라고. 그럼 더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어른이 된 내가 뒤늦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