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착각을 했었다.
일단 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뭘 해도 보통은 넘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내재되어 있어서 자신을 과도하게 믿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자기 자신도 사랑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 자기애도 넘쳤다. 절대적인 기준을 들이대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해 만족했다. 나만 좋으면 됐지 뭐, 남 생각보다 내 생각이 우선인 것도 한 몫했다.
내가 나를 안 좋아하면 누가 대체 나를 좋아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의심도 안 했었는데 가만히 따지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도 도통 모르는 인간이 나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새벽에 배가 아팠다. 저녁 먹은 게 잘 못 되었는지 계속 명치끝이 아팠는데 결국 새벽 내내 토하고 기진맥진했다. 체했나 보다.
나는 내게 따뜻한 흰 죽 한 그릇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체해서 토하고 아픈 건 내게 정말 별일이 아닌 일이니까.
며칠 후에는 이유도 없이 또 배가 아팠다. 아파서 허리를 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있었고 약을 먹으려고 기어가야 할 만큼 아팠다. 열도 38도 정도 되었다.
배가 아픈 위치를 봐서나 열이 좀 나는 걸 봐서 장염 같았다. 서랍에 유통기한이 한 2년쯤은 지난 장염약을 먹고 타이레놀 2알을 삼켰다.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만 아픈 걸 견디면 새벽에 응급실 가는 건 피할 수 있다. 그렇게 고난의 1시간을 이 악 물고 아픈 걸 참아냈다. 다행히 진통제가 효과를 발휘해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다음 날도 나는 내게 따뜻한 흰 죽 같은 건 차려주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에서 먹다 남겨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피자 2조각을 먹었다. 지금 안 먹으면 버려야 되니까. 재료를 손질해서 음식을 하지 않고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니까.라는 핑계를 대며.
1년에 한두 번 새벽에 딱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아프다. 아주 오래전부터.
초등학교 때에는 그저 잘 체했다.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에 예민한 나는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 체하겠다 생각만 해도 체했다. 우리 엄마가 졸려서 눈 감은 채로도 바늘로 내 손을 딸 수 있을 정도로 자주 체해서 내가 체해 토하고 배 아픈 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좀 커서는 체하지 않아도 배가 아팠다. 통증이 심해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팠다. 새벽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번은 내가 배가 아파서 거실에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동생이 119에 신고해 주고 약속 있다면서 나갔다. 배가 아파 응급실 가는 것도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내가 스스로 119에 신고해 병원에 갔다. 덕분에 아픈 걸 참는 것도 잘하고 아프기 전 전조증상도 알고 어느 부위가 아픈지, 어떤 증상이 동반되는지 보면 이게 위염 때문에 아픈지 장염에 걸려 아픈지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배가 아프면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올 게 왔구나"였다.
그래, 응급실 갈 때쯤 됐지 하면서 아프면서 동시에 아픈 나를 체크한다. 응급실에 가면 답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마음속으로 준비한다.
저녁은 뭘 먹었고, 통증은 몇 시에 시작했고, 토를 했는지 설사를 했는지, 약은 몇 시에 뭘 먹었는지.
심하게 아파 특히 고생한 날 다음에는 하루 이틀 굶는다.
다른 이유는 없다. 뭔가를 또 먹어서 아플까 봐 겁나기 때문.
의사가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말고 당분간 조심하라고 해도 귀 기울여 새겨듣지 않았다. 위염으로 새벽 내내 고생하고 병원에서 수액 맞고 겨우 정신 차려 나오면서 가게에 들러 오렌지주스를 사 먹은 적도 있었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는다. 특히 건강에 관해서는 특히.
건강보조식품도 전혀 관심 없고 영양제를 챙겨 먹지도 않는다. 어떤 음식이 어디에 좋다는 정보는 내게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하는 그저 이론 같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몸에 좋지 않은 재료는 본 적 없다며 재료들이 가진 효능에 늘 콧방귀를 뀌었다. 서로 먹고 싶어서 안달 난 몸에 좋다는 것들도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너나 먹으라며.
반대로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을 따로 피하거나 안 먹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다. 내게 음식은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일 뿐, 맛없으면 안 먹고 최대한 먹기 간편하고 간단한 음식이 내겐 가장 좋은 음식이었다. 그러니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 같은 몸에 해롭다는 음식들은 내게 섭취하기 용이한 고마운 음식이었다.
그러니 배가 아픈 건 당연한 일. 배뿐만 아니라 면역력도 약해져 사시사철 자잘하게 때론 크게 아팠다.
그렇게 아프면 각성할 만도 한데 오래된 습관과 뇌리에 박힌 관념은 고쳐지지 않는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아프게 내버려 두었을까?
'고단하다. 그만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항상 이 생각을 했다. 지워지지도 않는 기억 위에 차곡차고 또 쌓이는 나쁜 일들이 더는 감당이 안될 때,
더는 채워질 곳도 없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죽는 건 너무 무섭고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상상이라고는 지금 여기서 모든 게 그냥 다 멈춰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모든 게 끝난다 해도 아쉬울 게 하나 없는 인생이었다. 아니, 내 머릿속에 나쁜 기억들이 모두 사라져 준다면 땡큐지.
그래서 아픈 게 어떨 때는 다행 같았다. 이렇게 아프다 끝이 날 수도.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나는 아픈 나를 방치했다. 내가 더 아플 수 있도록.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아끼고 잘 돌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저 자기 자신을 믿고 예뻐한다고 해서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던 나는 어리석었다.
이제는 아이도 있는 엄마니까 더더욱이나 나를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게,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몸속 깊은 곳부터 건강할 수 있도록,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고 건강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만 멈추고 싶어 하는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불쑥불쑥 나온다. 오늘 하루가 어서 빨리 끝나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저녁마다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모든 게 멈춰버렸으면 하는 작은 아이의 마음은 무슨 수로 없앨 수 있을까.
오늘 점심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보자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