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쇼핑몰 안에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키즈카페가 있어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곁에 없어도 혼자 잘 놀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굳이 키즈카페에 같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에게도 황금 같은 2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사실 난 이런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한다. 쇼핑을 해도 되고 커피 한 잔 해도 되는데... 대형쇼핑몰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옵션을 두고도 굳이 키즈카페에서 제일 가까운 벤치에 앉는다. 아이가 노는 걸 먼발치에서 본다. 혹시 나를 찾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서 더 멀리는 못 가고 그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뉴스도 보고 해결해야 할 몇 가지도 하고 애들 찍은 사진첩도 뒤적였다. 한참을 휴대폰을 들여다본 것 같은데 두 시간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요즘 드라마 요약한 영상을 심심풀이로 봤더니 알고리즘으로 내게 권하는 드라마가 여러 개 손가락에 걸렸다. 그러다 '마더'라는 드라마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후에는 아이와 연관된 범죄 영상을 차마 눈 뜨고 못 본다. 그게 영화든 뉴스든 그 영상을 보더라고 눈을 질끈 감고 중간에 끄게 된다. 가끔 지인이 어린이집 학대영상이나 학교 앞 범죄 관련해서 링크해 온 영상을 나는 애써 외면한다. 그 장면이 남긴 잔영들로 하루 종일 다운되고 우울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이 우리 아이에게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걱정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이미 본 드라마다. '마더'라는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에는 어린 주인공이 겪는 학대를 다른 드라마 보듯 볼 수가 없어 수없이 눈을 돌렸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앤딩에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매회 줄거리 리뷰를 찾아 스토리를 쫓아 봤던 드라마이다. 영상 한 시간을 보면 얼마나 울었는지 눈 코가 다 빨개져서는 진이 다 빠져버렸었다. 그랬는데 그것도 까먹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재생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윤복이는 모두가 잠든 다 늦은 밤에 고아원 내 식당에 있는 전화기로 전화를 건다. 학대하는 친엄마로부터 자신을 유괴한 죄로 감옥에 갔다 온 강수진에게.
윤복이는 고아원에서 지내는 평상시 일들을 강수진에게 해맑게 얘기한다. 원장 선생님 방귀 냄새 이야기, 곧 입양 가는 7살 동생 이야기, 최근에 배운 배드민턴 이야기. 그리고는 뜸을 들이다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런데... 나 언제 데리러 와요...? 기다리고 있는데..."
그 대사에 나는 단숨에 무너져 버렸다. 사람들이 쳐다보는지도 모르고 대성통곡을 했다. 어린아이 마냥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대형쇼핑몰 한가운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과 수군거림을 알아챘음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황급히 뛰어들어갔다. 화장실 한편에서 남은 울음을 꺼이꺼이 토해냈다. 어쩜 이렇게 뜬금없는 포인트에 나는 무너져 내렸을까.
사실 울면서 알아 버렸다. 내가 왜 우는지.
윤복이가 내뱉은 대사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하지는 못했던.
어렸을 때 엄마는 몇 번이고 가출을 했다. 부부싸움을 크게 한 날이면 아빠가 잠든 사이에 엄마는 집을 나갔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나 되니까 기억나지 않는 것들까지 합하면 꽤 여러 번 일 것이다. 내가 100일이 되기도 전에 나를 버리고 나가버려서 아빠가 나를 동냥젖으로 겨우 키웠다고 생색을 내며 얼마나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순간에도 버림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새벽에 살금살금 문을 열고 나가는 엄마의 인기척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붙잡지 않았다. 어린 나는 엄마라도 나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철이 들어있었다. 내가 붙잡아서 불행한 엄마를 보느니 차라리 내 옆에 없어도 어디에선가 엄마가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덜 괴로울 것 같았다.
가출한 엄마는 아주 가끔 집에 전화를 했다. 아빠는 집에 와서 엄마가 전화했는지 꼭 확인하기 때문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놓치지 않고 받아야 했다. 만약 엄마가 전화를 건 것이면 아빠가 써준 내용을 엄마에게 꼭 말해야 했다.
"우리는 밥도 잘 못 먹고 잘 지내지 못해"
"그러니까 빨리 집에 와. 엄마"
"아빠는 술도 안 마시고 열심히 일 다니고 있어"
"보고 싶어. 거긴 어디야? 언제 올 거야?"
종이에 써준 내용들을 엄마에게 빠짐없이 말하고 엄마가 집에 돌아오게 마음을 돌리는 일은 아빠가 내게 준 막대한 임무였다. 꼼꼼하게 빠트리지 않고 다 얘기했음에도 전화가 끊어지면 아빠는 나를 나무랐다. 자식들 버리고 집 나간 비정한 엄마의 비난을 시작으로 좀 더 애절하지 못해서, 더 간곡하지 않아서. 그래서 엄마가 집에 오겠냐며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선택도 모두 나의 잘못이 되었다.
엄마의 부재는 길 때도 있었고 짧을 때도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어느 순간 나는 그 시간들에 익숙해져 갔다. 혼자 밥도 차리고 학교 준비물도 챙기고 동생도 돌봤다. 어쩌면 엄마의 가출이 내가 성장하는 동력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를 버리고 간 엄마를 원망한 적도 없었다. 아빠의 괴롭힘이 심하니까 나라도 그랬을 거라고 엄마조차 바라지 않은 이해를 스스로 했다.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이전처럼 지내는 엄마 아빠를 봐도 화를 내거나 투정 부리지 않았다. 그저 언제 또 반복이 될까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전처럼 지냈다. 티 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리면 없던 일이 되는 줄 알고 마음속에 묻고 또 묻고 그 시간들을 지나며 커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터진 거다. 아무 상관없는 때에 뜬금없이, 갑자기.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그저 덮여있었던 것뿐이었다. 건들지 않으면 안 아픈 줄 알고 약 바르고 호 해주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버려 곪고 곪은 그 상처가 어느 순간에 빵 터졌다. 이렇게 사람 많고 복잡한 대형쇼핑몰에서 창피한지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40대 여자가 돼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 언제 데리러 와? 나도 데려가 주지. 엄마만 가버리고.
나도 엄마랑 같이 가고 싶어. 엄마랑 함께 있고 싶어.
무섭고 막막한 여기에 나만 두고 가지 마"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엄마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밥도 먹고 학교도 다니는데 엄마가 있는 때와 없는 때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린애인데도 불구하고 공허하고 막막했다.
엄마가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그랬던 내가 갑자기 괜찮아질 리가 없었다.
괜찮은 척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억지로 어른의 가면을 쓰고 슬프고 아팠던 어린 나를 지금까지 가슴에 묻어버리고 모른 척했다.
어떻게 해야 그 여리고 슬픈 아이를 달래줄 수 있을까.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저 '너 참 슬프고 힘들었겠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