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차는 1톤 트럭이었다.
그 차에 물건을 잔뜩 싣고 가게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대주는 것이 아빠의 직업이었다. 아빠의 차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다. 고무장갑, 샤워타월, 비누, 건전지, 화투.... 가게에서 파는 식료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물건들을 모두 갖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마다 작은 슈퍼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대형마트도 많지 않았고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기 전이었다. 작은 동네 슈퍼마다 돌아다니며 물건들의 재고를 파악해 주고 모자란 물건들을 채워주며 아빠는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사고는 찰나였다.
그날 아빠의 1톤 트럭은 경사가 심한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보통은 경사가 심한 곳이면 뒷바퀴에 벽돌을 대놓는데
그날은 아빠가 차 안에 물건을 정리한다고 어찌어찌하다 그 벽돌을 옆으로 치워놨었나 보다.
나는 주차된 아빠 차 조수석에 앉아 놀고 있다가 운전석에 앉아보고 싶어서 기어 있는 곳을 넘어 운전석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실수로 사이드브레이크를 눌러 풀어버렸다.
차는 후진으로 경사를 미끄럼 타듯 내려갔다. 경사가 가팔라 가속도가 붙은 트럭은 무서운 기세로 내려갔다.
문제는 경사가 끝나는 지점에 인도가 있고 인도 넘어 8차선 도로가 있다는 것이었다.
차를 멈추지 않으면 아빠의 트럭이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갈 것이고 달려오는 차들과 박치기를 하며 대형사고를 만드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미친 듯이 뛰어 운전석의 문을 열고 뛰어올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트럭은 8차선 도로 중 3개의 차선까지 진입한 후에야 멈췄다. 천만다행으로 신호가 걸려 달려오던 차들이 모두 속도를 줄이고 있는 타이밍이어서 차들이 충돌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다쳤다. 아빠가 운전석의 문을 열고 올라가면서 앞바퀴에 다리가 쓸렸다. 발목의 복숭아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바퀴가 살점을 다 쓸어버렸다. 상황이 너무 다급했던 지라 자신이 다친 지도 모르고 차를 안전한 곳에 주차한 뒤에야 상처를 발견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뼈에 큰 이상은 없었고 다만 살이 너무 깊게 파여 살점이 올라올 때까지 붕대를 감고 쉬어야 했다. 넉넉잡고 한 두 달은 집에서 꼼짝 말고 새 살이 돋아나오길 기다려야 했다.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잘못했다는 말도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빠를 저렇게나 다치게 만들었다니.
크게 꾸지람받은 기억은 없는데 아빠가 원망 섞인 눈빛으로 날 보며 한숨을 쉬었던 건 기억이 난다.
이 사건은 훗날 우리 집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아빠는 다리가 다 나아도 일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아빠가 쉬는 몇 달 동안 단골로 있던 동네 슈퍼 사장님들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받기 시작했고 아빠는 그렇게 서서히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아빠랑 엄마랑 같이 도시락 싸 다니며 열심히 일한 지난 몇 년동안에 번 돈을 아빠는 도박으로 탕진해 버렸다. 같이 노력해서 번 돈을 도박으로 날려버린 아빠를 엄마는 원망하며 부부싸움은 나날이 심해졌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생활비를 주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다 못해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러 나섰다. 엄마는 그 이후로 우리 집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한스럽게 말한다.
그때 아빠가 돈을 도박으로 다 날려버리기 전에 집을 사놨어야 하는데 빚지기 싫어서 전세로 이사했던 게 후회스럽다고. 집 보러 다닐 때 마음에 들었던 아파트가 있었는데 거길 빚을 조금 내서라도 사놨으면 지금쯤 집값이 크게 올랐을 텐데 잘못 선택했다며.
아빠가 다리를 다친 것도
다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된 것도
일을 못해 단골을 다 놓쳐 버린 것도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아빠가 결국 도박을 하게 된 것도
아빠의 도박으로 우리 집의 대부분의 재산이 날아가 버린 것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돈 벌라고 엄마를 등 떠민 것도
부부싸움이 끊임없이 계속된 것도
나아가 지금까지 우리 집에 큰 자산이 없는 것도
그 모든 게 다 나의 잘못 같았다.
그날 일로
아빠가 마음속으로
"모두 쟤 때문이야'"라고 원망하며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엄마, 아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나라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원망스러워했다.
그러니 내가 불행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누군가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른이 된 나도 아직 그 자책을 떨쳐내고 있지 못해
스스로에게도 아직 이 말을 하지 못한다.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만 괴로워해도 돼"
언젠가 이 말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