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한 것이 살면서 아주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나한테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산다. 날뛰는 천방지축이 둘이나 있으니 넘어져서 어디 부러지지는 않을까, 차랑 부딪히면 어쩌나, 큰 병에 걸리면 어쩌나... 매일매일 아무 일없이 무사히 하루를 넘어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 된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된다.
살면서 자잘한 사고들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나에게도 몸에 몇 개의 상처들이 있다.
기억나지 않는 사건이지만 엄마가 말해줘서 알고 있는 상처가 2개 있다. 무릎에 엄지손톱만 한 하얀 상처가 있다. 엄마 말로는 어려서 군산의 큰 아빠네 갔다가 의자 위에서 놀면서 의자가 부러졌는데 그때 나무에 긁혀 상처가 났다고 한다. 찢어져 꿰매었어야 하는데 그때 병원에 가기가 여의치 않아 그저 지혈하고 밴드만 붙여 응급처치만 해서 상처는 커졌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일이 부지기수여서였을까, 어차피 미스코리아 같은데 나갈 것도 아니니까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래도 여자아이인데 신경 좀 쓰시지 하는 생각이 무릎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지만 그렇게 흉측하지도 크지도 않은 상처이니 그땐 병원에 갈 상황이 아니었나 보다 이해하고 넘어간다.
반대로 어휴, 상처가 이만하길 다행이다 생각되는 상처는 손등과 팔뚝에 있는 상처이다. 작고 동그란 단추만 한 상처가 손등에도 하나, 손목 안쪽 팔뚝에도 하나, 그 두 개가 똑같이 생겼는데 다른 위치에 있어 이상해서 엄마한테 물어보니 내가 아주 어린 꼬맹이였을 때 큰 솥단지에서 펄펄 끓고 있는 물에 두 손을 아주 그냥 퐁당 담갔단다. 팔꿈치 위까지 폭 담가서는 벌게진 두 팔을 보고 엄마는 얼마나 놀랐을까? 난 또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상처를 관리했을지 말하지 않고 상처만 봐도 안다. 이렇게 작은 2개의 상처만 남겨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정확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상처는 3개 있다. 하나는 오른쪽 눈 옆의 상처이다. 이 상처는 희미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상처지만 상처가 생길 때 상황은 완전히 또렷하게 기억난다. 초등학생 때 내가 계단에 앉아 있었고 뒤에서 유리를 든 아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 아이가 왜 그런 큰 유리를 들고 있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깨진 유리창 같은 거였을까? 타이밍이 엄청 나빴던 것이 그 아이가 내 옆을 지나갈 때 내가 마침 일어서는 바람에 뾰족한 유리 끝이 내 눈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내 얼굴에 피가 흘렀고 내가 멋 모르고 만지자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그걸 보고 그 복도에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소리를 꽥 지르던지 아주아주 큰일이 내게 벌어졌다고 생각이 들어 엄청 무서웠다. 하지만 천만다행이었던 것이 눈이 아니었다는 것, 깊지 않아 꿰맬 필요 없었다는 것. 그렇게 무사히 오른쪽눈을 지키고 생긴 상처이다.
나머지 2개는 모두 왼쪽 엄지 손가락에 생긴 상처이다. 시기가 다르지만 모두 왼쪽 엄지 손가락에 생겼고 둘 다 꿰매었기 때문에 상처도 선명하다. 그 상처 때문인지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지문 검사할 때 인식이 잘 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로 집을 비우는 동안 동생 쭈쭈바를 칼로 잘라주다가 칼로 깊게 그어 찢어져버렸는데 피가 어마무시하게 나왔다. 꼭 엄지손가락에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마냥 피가 떨어지니까 어린 동생이 얼른 그릇을 가져와 그 피를 받았다.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 장면이다. 그 피를 받아 무얼 하려고 그랬을까나, 꽉 잡아 지혈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었으니까 그저 그 피를 받아내고 있었을까? 다행히 옆집의 어른이 도와줘서 병원에 가 상처를 꿰맸다. 나머지 한 개의 상처도 마찬가지로 카터칼로 무언가를 자르다가 생긴 상처이다. 피부가 찢어지면 속의 하얀 무언가가 보이고 피가 엄청난다. 치료할 때는 막상 바늘로 꿰맬 때보다 마취주사를 놓을 때 더 아프다. 주사를 한 번만 찌르는 것이 아니라 바늘로 상처 여기저기를 찔러대며 마취약을 넣는 통에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두 번이나 카터칼로 다쳐서 그런가 내게 카터칼은 엄청 무서운 무기같이 여겨져 다룰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귀한다.
어른이 되고서는 잘 다치지 않았다. 더 이상 넘어지지도 않았고 사소하게 베인 적은 있어도 찢어질 만큼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다행히 큰 사고도 없었고.
그럼에도 나의 몸에 2번의 상처가 더 생겼다. 하나는 제왕절개 한 수술 자국. 덕분에 귀한 아이를 2명이나 얻어서 그런가 나의 몸에 생긴 상처 중 가장 큰 상처이다. 그리고 가장 영광스러운 상처이고. 2명 모두 제왕절개를 해서 출산을 했다. 아이를 낳을 때 모든 여자들이 겪는 산통도 모른 채 아이를 낳아서 그게 한 편으로 아쉬웠다. 아이를 낳기 한 두 달 전부터 혈압이 높아져 진통을 기다려보지도 못하고 날짜를 받아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았지만 진짜 고통을 겪지 않은 거 아닐까, 여자들만이 아는 산통을 나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는 고통도 정말 만만치 않게 아픈 거라서 나도 배 아파서 아이 낳았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상처는 복강경 수술로 인해 생긴 상처, 배에 총 4개의 상처가 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담낭제거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수술에 동의를 했다. 새벽에 아픔을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하고 혼자 운전해 응급실에 가서 갑자기 수술까지 혼자 받고 코로나 시국이라 입원하는 동안에 면회도 없었던, 외롭게 아픔을 마주하고 혼자 쓸쓸하게 견딘 후 갖게 된 상처. 몸에 더 이상 칼을 대는 수술이 더 이상 없으면 좋으련만. 훗날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차피 비키니 입을 것도 아닌데 하면서도 이렇게 몸에 하나하나 흔적이 남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하지만 몸에 남긴 나의 역사, 없어지지 않는 상처들을 바라보며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인 인생인가 안도하고 감사하자 생각했다. 불현듯 닥친 사고로 더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세상에는 많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더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몸에 남은 작은 상처들은 자잘하고 소소하게 작은 언덕들을 오르고 내리며 인생을 살아 냈다는 증거니까. 그 또한 나의 일부이며 나의 스토리이니까 이렇게 기록해 놓고 싶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잘 살아와줘서 고맙다'고 내게 말해주고도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