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한다는 것.
그건 그(아빠)와 나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내겐.
욕을 하지 않는다고 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갖은 상스러운 욕을 들어봐서 안다.
알지만 하지 않는 것. 그건 내가 나를 지키고 그와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처음 욕을 들었을 때는 무서웠을 것이다.
사실 욕이 무서운 것이 아니겠지. 욕을 할 때 나오는 눈빛, 벌어지는 입모양 거기에 들리는 상스러운 발음만큼 낮아질 수 있는, 저급해질 수 있는 마음가짐. 그런 것들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욕을 하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 속으로 무시했다. 쉽게 위협할 수 있는 욕이라는 무기가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음을 나는 언제부턴가 알았으니까.
학교에 다닐 때도 흔히 논다는 친구들은 입이 거칠었다. 길고 긴 시간에 무뎌질 만큼 무뎌진 내가 그런 것에 쫄지 않고 겁먹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그의 덕분이었다.
얼마든지 더 상스럽고 걸게 받아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 않는 것. 그로 인해 나는 남모르게 나의 자존감을 치켜세웠다. 그게 자존감이 아니고 그저 착각이라 해도 좋을.
그런 것이 욕이었다. 내게 욕이란 것은, 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쉽게 내버릴 수 있는 나 자신을 지키는 수단, 어쩌면 상대방처럼 천하고 저급한 마음과 다를 바 없을 수 있겠지만 그걸 들키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화장실에 들어가면 목구멍에서 욕이 굴러다녔다. 자존심이 상해서일까 욕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저 목구멍 언저리에서 돌아다닐 뿐.
샤워기 앞에서 물을 틀고
'씨X, X같은'
볼일을 보려고 변기에 앉아서는
'XX하네, XXXX'
칫솔을 입에 물고서도
'XX, XXX XX'
특정 대상도 없고 직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아이고. 이런' 같은 감탄사마냥 욕이 생각났다. 무의식에 욕을 떠올리고는 내가 제 발이 저려 '어머' 하고 깜짝 놀랐다.
'뭐라는 거야 도대체'
누가 듣지도 않았고 심지어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이 상했다.
'욕을 했어 내가'
스스로의 실망감이 나를 더 괴롭혔다.
그런데도 꽤나 오랫동안 화장실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욕이 떠올랐다. 어느 시점에서는 욕을 생각하고 있는 내가 어색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내뱉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한 순간의 부끄러움을 애써 모른 척했는지도.
하지만 일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욕이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목구멍에서 굴러다니는 욕이 구슬이 떨어지 듯 툭하고 나왔다. 옷을 갈아입으려는 상황이었다.
"XX"
그 한마디는 담담하고도 묵직하게 소리 났다.
짜증 나지도 화나지도 않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였다. 허공에 울리는 나의 목소리로 발현된 욕은 그래서 비현실적이었다. 믿기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도 옆에 없어서 진짜 소리가 났었나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격렬히 걱정이 되었다. 무슨 상황에 특별히 생겨나는 일도 아니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의식하지 않고 터져 나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이 있을 때 그러면 어떡해? 별일 아닐 거라고 애써 방관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욕을 방언처럼 터트리며 입에서 계속 지껄이고 있게 되면 어떻게 하나 근심이 몰려왔다.
시간은 흘렀고 이걸 어디에 어떻게 얘기해하며 답답해하다 한 달에 한번 있는 모임에서 나의 추악한 비밀을 털어놔버렸다.
사실 난 화장실에 가면 욕을 떠올려요. 몇 년 됐어요
그러다 얼마 전에는 그냥 입에서 툭 욕이 튀어나왔어요
어쩌면 앞으로 내가 거침없이 욕을 막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어요
마음과는 다르게 담담히 나의 말을 했다. 그들은 한 달에 한번 말고는 따로 개인적인 만남을 갖지도 않는, 사소한 수다를 주고받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어릴 적 알고 있던 사람도 아닌, 그냥 지금의 정말 나를 만나는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한.
"뭐 어때요. 누가 듣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있을 때 하는 건데. 이왕 하는 거 시원하게 해 버려요"
그들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이상한 사람 아니야 하는 눈초리도 없고
힘들었겠다 애써 위로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일부러 이해하지도 않았다.
어느 누군가는 욕하는 호리병이라며 링크를 걸어 그거 사서 대놓고 대차게 한번 해보라고도 했다.
심각했던 나의 고민은 그렇게 잠깐 웃고 가볍게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 점점 화장실에서 욕을 떠올리는 일이 줄어들어갔다. 다행히 입 밖으로 다시 천한 소리가 나오지도 않았다.
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 후유증 같은 것이었을까? 마음이 힘들다고 내는 소리였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증상은 완화됐으니까 또 이렇게 그냥 넘어간다.
다만 마음속 어린 나에게 말한다.
"너는 그냥 너야. 욕을 하든 안 하든.
그러니 너 자신을 그렇게까지 한심하고 불쌍하게 보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