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은 온 동네가 캄캄해지는 영국이다.
어둑해지는 초저녁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띵똥 하고 요란하게 울렸다. 열쇠를 가지고 가지 않았나 싶어 문을 열었다. 캄캄한 곳에서 서 있는 사람은 둘째가 아닌 한 중년의 마른 몸의 남성이었다. 한쪽에 가방을 둘러매고 한 손에는 뭔가 기다란 것을 들고 있었습니다.
날이 캄캄해진 탓도 있겠지만 최근 시력이 나빠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인지 실루엣만 겨우 확인이 가능했다.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블라블라~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가끔 도네이션을 하라고 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중년의 아저씨는 무언가를 판매하러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에 20년을 살다 보면 영어는 다 못 알아들어도 뉘앙스와 눈치를 채는 방법과 기술을 배운 덕에 물건을 팔러 왔구나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후 5시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간 그 시각, 짊어진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둘씩 꺼내어 설명을 해댄다. 그 중년 아저씨는 나에게 혹여나 민폐가 될거 같았는지 아니면 영국인들의 기본 에티켓을 지키기 위함인지, 2미터 정도 멀찍이 떨어져 말을 했다.
열의를 다해 판매하는 그의 모습이 좀 안쓰럽게 느껴져서 일까,
거부하며 매몰차게 문을 닫지 못했다.
물건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는 도중 나는 갑자기 현금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가진 현금이 없다고 이실직고 말했다.
혹여나 실컷 설명하고 현금이 없어 살 수 없다고 하면 더 미안해질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 카드도 가능하다고하며 단말기를 보여주며 더 힘차게 설명을 해댄다.
춥고 시린 날씨에 방문 판매하러 다니는 중년의 아저씨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워 보였다. 무슨 사연을 안고 이집저집 문을 두드려가며 물건을 파는지 모르지만 문을 열었을 때의 거부감은 온데간데 없고 무언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마침 아저씨 한 손에 쥔 먼지떨이를 보니 며칠 전 거실 한구석에 거미줄이 생각이 났다.
거미줄을 보며 심란해 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어 아무런 질문도 없이 아저씨가 한 손에 든 기다란 먼지떨이를 사겠다고 했다.
가격은 10파운드..
손바닥만한 작은 카드 단말기를 연결하는 동안 아저씨는 마음이 급했는지 연결이 늦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내가 혹여나 마음이 바뀔까 그랬을까?.. 비용을 완전하게 지불 후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물건을 건넨다.
그리고 마지막을 말을 덧붙인다.
크리스마스를 따듯하게 잘 보내고
가족들 모두 평안하기를 바래~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할게.
돌아서는데 코끝이 찡했다. 나는 고작 10파운드짜리 하나 구입해는데 그 사람은 진심어린 축복 인사를 해 준거 같아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뭐든지 구입할 수 있는 요즘, 방문 판매가 참 생소했지만 영국 겨울 어둑한 오후 시간에 낯선 아저씨의 열의를 다하는 마음과 축복의 한줌을 나는 덥석 받았다. 그것도 단돈 10파운드에..
부디 방문하는 집마다 물건이 다 팔려 빈 가방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하며, 집으로 들어와 천장 구석에 보이는 거미줄을 다 쓸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