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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나라 런던에서 내 차가 사라졌다

차량 도난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런브



영국식 집은 아직까지는 하우스가 많은 편이고 차를 집 앞에 주차하는 경우가 흔하다.

2층에서 거실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집 밖 창문 사이로 주차된 차가 보인다.


어느 날 다름없는 새벽 계단을 내려오는데 집 앞에 차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남편이 다른 곳에 주차를 해 놓았을 거란 생각에 아무런 의심 없이 새벽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남편은 출근 준비로 일어났다.


"차 어디다 주차했어?"


"집 앞에 있잖아"


남편의 말에 순간 아찔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지인들 중에도 몇 명이 집 앞에 주차한 차를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설마'라는 생각으로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도, 근처에도 있어야 할 차는 보이지 않았고 그제야 집 앞에 주차된 차를 밤새 자는 사이 도난당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차를 잃어버릴 수가 있을까' 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었던 일들이 나한테도 일어났다.

자고 있어도 차 시동 소리가 들려 남편이 오고 가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밤새 시동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차를 가져갔다. 현실을 인지 후 잠시동안 황당함과 당혹감에 멍하니 서 있었다. 차 도난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었지만 정작 집 앞에 세워진 차가 없어지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국 코로나 이후 스마트키를 사용하는 차량을 노린 범죄가 많아진 이유는 스마트키는 자동차 절도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무선 신호로 원격으로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을 스마트키의 약점을 노리고 절도범들은 이런 신호를 잡아 10~20m로 증폭시켜 차량을 훔친다.



한국과 달리 영국은 주택이 많고, 거실과 앞마당이 가까워 스마트키를 거실 근처에 두고 있어 우연히 쉽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절도범들은 보통 짝을 지어 범행하며, 한 명이 키 신호를 증폭시키고 다른 한 명이 집 근처를 배회하며 신호를 다시 전달해 차량을 훔친다.



이렇게 짝지어 차를 훔치는 시간은 불과 몇 분 되지도 않는다.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훔쳐간다.



대단하고 실력 있는 놈들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을 다잡은 후, 영국에서 차량 도난 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101번으로 전화를 걸어 로컬 경찰과 연결했다. 차량이 사라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차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려주었다. 경찰은 내 차의 모든 기록이 온라인으로 퍼져 저장된다고 했고, 도난 사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계속 알림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신고가 끝난 후 도난 래퍼런스 번호(crime reference number)를 받았다. 이 번호는 이후 보험회사와의 절차에서 필수였다.



경찰 신고 후에는 곧바로 보험회사에 연락했다. 보험사 담당자에게 도난 래퍼런스 번호를 제공하며 차량 도난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몇 가지를 추가로 확인했다. 보험사는 혹시 못 찾을 경우를 대비하여 차량의 시세를 조사해 보상 금액을 산정하기 시작한다고 했고, 차량 보상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Courtesy Car(대체 차량)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작년 보험 갱신 때 이 옵션을 추가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보험사에 연락해서 대체 차량을 타고 다녔지만, 이것저것 연락하고 신청하는 일이 여간 번거롭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수사 진행 상황을 계속 알려주었다. 도난 사건 발생 다음 날, 내 차가 집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량을 찾을 수 있다니 이 또한 믿기지 않았지만, 동시에 차량 상태가 어떨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차량은 큰 손상 없이 얌전히 주차된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차 안에서 마리화나를 폈는지 담뱃재와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차를 찾아서 다행이었지만 절도범들의 흔적으로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자식이 집으로 돌아오듯 세차를 안팎으로 깨끗이 해 주고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책으로 몇 가지 예방 조치를 취했다. 핸들 락을 구입해 차량 물리적 보안을 했고, 스마트키를 전파 차단 파우치에 구입해서 신호 증폭을 차단시켰다.


그런데..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일이 한 달 후 다시 일어났다.

또다시 차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절망감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차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있었고, 한 달의 시간 동안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 모든 노력은 무색해졌다. 이번에는 핸들 락도, 전파 차단 파우치도 소용이 없었다.


런던이라는 "신사의 나라"에서도 차량 도난은 더 이상 낯선 사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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