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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해서 용감했던 젊은 시절이여~

by 런브




영국 경기가 많이 침체되어 예전과 같지 않다.

남편이 하는 사업에도 위기가 왔고 앞이 보이지 않아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던 중 남편은 유튜브에서 봤다며 한국에서 트럭운전에 관심을 가져본다. 3억짜리 트럭을 한 대 구입하면 한 달에 몇천만 원씩 벌 수 있다며 흥미로워한다. 그냥 운전만 하면 된다고 한다.



듣는 내내 마음이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나름 20대에 포부와 패기를 가지고 영국에 도착해 공부를 하며 일하며 살아왔건만 지금은 가장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 급급해하며 자신의 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앞에 놓인 생계에 고민하고 있다.



혈기왕성해서 무엇에든 자신감으로 똘똘뭉쳐던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잊은 지 오래된 거 같다. 그렇게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이 났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의 설렘이 가득했던 그 시절,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무모하게 도전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은 복잡해졌고,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남편이 트럭 운전사가 되겠다는 꿈은 그 자체로는 매력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가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안쓰러웠다. 항상 의젓하고 자신감 넘쳤던 그가 이제는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모습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안겼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겠다 다짐했지만, 눈앞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그저 일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하던 남편은 더 이상 자신의 열정을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남아 있었다.





나 또한 그런 그를 보면서 내 꿈과 희망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혈혈단신 내 몸 하나만 걱정하고 신경 쓰던 시절, 하고 싶은 일에 과감하게 도전을 해 봤다.

그 시절 나름 심혈을 기울여 고민했던 일들이 지금 생각하면 그저 잔망스럽게만 느껴진다. 젊고 패기 넘치는 시절, 그토록 원했던 것은 지금 이렇지 않은 거 같은데, 지금 누군가는 꿈을 미루고, 누군가는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겨 행복하고 한 울타리를 만들었지만, 그 대가로 아이들의 사소한 걱정이 나에게 덤으로 지워지는 고민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밥 한 숟가락 거부해도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이리저리 살피고 학교가 가기 싫다고 하면 마음이 쿵 내려앉아 무슨 일이 있는지 선생님께 아이의 학교생활을 물었다. 사춘기가 되어 예전과 다른 모습에 야단을 치고 혼을 내지만 내심 나의 감정적인 말로 인해 아이가 삐뚤 하게 나가지 않을까 싶어 나오는 말을 몇 번이나 눌러 속으로 삼켰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진정 아이가 원하고 바라는 공부를 선택하기 위해 가이들을 해주는 말들 속에서 나의 속마음을 강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의 젊은 시절은 쏜살같이 흐르고 어느새 나 몸뚱이 하나에서 남편과 아이들 속에서 어느새 생각도 많아지고 잃을 것도 많아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모든 게 주춤해진다. 이런 마음의 무게가 물에 젖은 솜처럼 점점 더 무거워짐을 느낀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남편만큼이나 나도 내 꿈과 행복을 잃어버린 거 같다.


예전에는 뭐든 해 볼 수 있을 거 같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웃게 만들 최고의 길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묻혀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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