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유튜브를 틀어놓고 영어 공부를 한다.
따라 말하고, 직접 손으로 문장을 써가며 익히려 하지만, 굳어진 혀를 굴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사실 젊은 시절,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처음 영국에 발을 디딘 날, 나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 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풋풋한 나이에, 귀도 입도 한창 유연했던 그때가 절호의 찬스였다.
내겐 오랜 시간 간절히 바라왔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는 일이었고, 영어는 그저 부차적인 것이었다.
영어에 대한 간절함도 절실함도 없던 시절, 그저 생활 속에서 물 흘러가듯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그때 매일 꾸준히 연습했다면?
지금쯤 나는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며 어떤 두려움도 없이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을 물 흐르듯 그냥 흘려보냈다.
영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면서 학부모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지만, 나는 스스로 벽을 쌓았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에 영국 엄마들의 인사를 피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귀를 닫았고, 입을 다물었다.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이제 와서야 시간을 붙잡고 싶고,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 책을 펼치고, 영어를 입에 담아본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들 하지만,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습득이 어려워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자전거나 수영을 어릴 때 배우면 평생 익숙하게 할 수 있듯이, 언어나 악기도 젊을 때 배우면 훨씬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영국에 오는 유학생들을 보면 처음엔 겨우 알아듣고,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던 학생들이 1년이 지나면 대화를 하고, 2년이 지나면 영국식 발음으로 여유롭게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걸 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같은 것을 배워도, 그 속도는 확연히 다르다. 들어도 잊어버리고, 연습해도 혀가 굳어 발음이 어색하다.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적어도, 돌아서면 까먹고 만다.
그러면서 문득,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10년만, 5년만, 1년만 일찍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한때 내 앞에 펼쳐졌던 황금 같은 시간들, 손에 쥐어졌던 기회들을 하나둘 놓쳐버린 채 여기까지 왔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지만, 때가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젊고 유연했던 시절, 조금만 더 간절했다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이,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솰라솰라를 해본다.
비록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라도 나는 오늘도 배운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