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랑, 비행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을 아세요? 바로 처음 시작할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든다는 겁니다
기억의 씨앗이 발아하다
영화는 라디오 오프닝 멘트로 문을 연다. 방송용 멘트에는 객관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단 한 사람을 향한 메시지라면 주관적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정해인, 김고은이 남주, 여주로 등장하는 <유열의 음악 앨범>은 출발부터 호기심을 유발한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연상케 하는 <유열의 음악 앨범>은 유사한 발음을 이유로 유희열을 초대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우리의 기억 속에 고정된다.
작품 속에서 '유열'이라는 인물은 출연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름'은 기본적으로 인물을 지칭하지만 멀게는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열의 음악 앨범>에서 '유열'이라는 고유명사는 처음부터 인물들의 심리적 공간으로 작용한다.
소리만으로 공감해야 하는 라디오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추진체 역할을 한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불려지는 이름은 하나의 고유한 스토리가 될 수 있다. 작품 제목에 실린 이름은 어떨까. 주로 주인공 또는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들이 많다. 영화 <패터슨>이나 <캐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등은 모두 주요 인물이거나 영화의 중심을 지나가는 인물 이름이다. 그렇다면 '유열'이라는 고유명사는 작품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유열은 '어찌할 수 없는 간절함'이다
씨앗은 가벼운 손끝의 터치만으로도 싹을 틔운다. 가볍고 작은 씨앗 한 알은 훗날 거대한 사랑의 열매가 된다. 입안에서 빙그르르 돌아가는 추억의 미소가 된다. 그리고 단단한 믿음의 씨앗이 된다. 작품 속 인물에 드러난 감정의 흐름을 살펴보면, 식물의 성장과 유사한 점이 많다. 깊은 곳에 감추어 어둡기만 한 씨앗, 무엇이든 활짝 수용할 수 있는 꽃, 가득한 사랑의 열매, 그리고 다시 씨앗의 과정을 거치는 듯 보인다. 사랑의 방식은 이처럼 식물의 성장 과정처럼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유열'은 현우(정해인)와 미수(김고은)를 한 장소로 모으는 에너지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힘을 다 소모하면 하나의 빈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름의 고유성은 작품의 총체적 대표성을 띠게 마련인데, '유열'이라는 여백은 매체로서 작용하고 인물 간의 매개 역할 후 곧 사라지게 된다. '유열'이라는 고유명사는 오랜 시간 지워졌던 두 인물의 추억이 발아하는 땅이다. 마음이다. 어찌할 수 없는 간절함이다.
유열은 '마주 보기 위한 어긋남'이다
현우와 미수의 만남은 자주 어긋난다. 영화 속 스토리 전부가 '어긋남'에 대한 애절함이다. 그들의 재회가 거듭될수록 '어긋남'의 강도는 높아진다. 한 번의 만남 뒤에 두세 번의 어긋남이 그들을 기다린다. 친구들과 외출한 날 현우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수의 기다림은 직선을 향해 달려가지만 '어긋남'의 장난은 괴팍할 정도로 꼬여있다.
현우가 이메일 패스워드를 모른다는 어긋남은 두 사람 사이를 삐걱거리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헬스 트레이너로 자리를 잡은 현우가 미수에게 전화할 수 없다는 어긋남은 두 사람 관계를 포기하게 한다. 그러나 어긋날수록 강해지는 것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어긋난 구석을 찾아가는 습성이 있다. 땀 흘리며 미수를 향해 달려가는 대상은 미수에 대한 현우의 '그리움'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우를 향해 달려가는 대상은 현우를 향한 미수의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그리움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현우와 미수의 두 어긋남이 결국 서로 마주 보게 된다. '유열'이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말이다.
우연의 중첩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문학이 피해야 할 것은 핍진성의 결여다. 스토리의 작위적인 느낌은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흥미의 부재로 몰락하게 만든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추측은 긴장이나 스릴을 만들지 못한다. 추리소설이나 마블 시리즈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예측 불가능 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열의 음악 앨범>에는 작가의 의도로 보이는 흥미로운 '우연'이 존재한다. 한두 번의 우연에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들은 네다섯 번의 우연에는 오히려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유열의 음액 앨범>에서의 우연은 후자의 경우다. 연속된 우연은 숨겨진 의도를 찾도록 집중하게 만든다. 시간과 장소에 감춰진 여러 개의 '우연'은 어떤 모습일까. 미수제과 앞에서 재회한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 미수가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는 일, 6시에 미수와 통화하기로 한 현우에게 전화를 못 할 상황이 발생하는 일은 조바심을 부른다. 우리는 두세 번의 '우연'에는 지루해하지만 그 이상의 우연에는 몰입하는 버릇이 있다. 이제 미수와 현우 사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우연'이 신의 축복인지 장난인지 생각해보자.
끊임없는 어긋남과 마주 보기의 우연은 결국 '기다림', '그리움'에 기인한 것이다. 기다림과 간절함은 주위를 서성이게 만드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연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필연에 가깝다. 미수제과 앞에서 마주친 두 인물의 재회는 간절함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필연이다. 간절함이 동시에 표출한 인물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이름이 라디오를 통해 불리는 순간을 목격하려면 긴 기다림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수는 현우 전화를 기다리지만 현우는 폭력배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미수와 만남이 어긋난다. 갈수록 중첩되는 우연은 일을 꼬이게도 풀리게도 하면서 필연을 향해 질주한다.
우연을 우연으로만 결론짓는다면 그 출발과 도착에 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누구도 우연의 원리나 본질에 답할 수 없다. '사랑' 앞에서는 더욱 해석 불가능한 것이 우연이다. 우연은 과연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까. 결국 우연은 우연으로 남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연은 기다림과 간절함으로 움직인다. 수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무책임하지 않다. 때로는 거부나 안일함으로 다가오지만 대부분의 우연은 기우제처럼 기다림의 산물로 남는다.
우연을 선택한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현우가 미수를 향해 달려가는 이유는,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그렇게 달리다 보면 좋은 우연이 기다릴 것만 같아서이다. 이것이 우연을 필연으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흩어진 우연은 둘만의 필연을 위해 얼마나 달려왔던가.
사소한 '우연'으로 시작된미수와 현우의 사랑을 보고 많은 연인들이 달리기를 바란다. 그리고필연의 사랑에 곧 도달하길이 작품과 함께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