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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Jul 15. 2021

여름 지우개

가을로 가기 위한 환승역에서

ⓒ GAIMARD- Pixabay


어깨를 콕콕 쪼아댄다. 살을 파고든 뾰족한 부리는 빛의 속도로 달아나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다음의 빛이 내 어깨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정확한 좌표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누구의 조언을 들었을까. 피할 수 없다. '하늘 지붕' 아래 있는 한, 지난여름이 말끔하게 지워진 어깨를 다시 내줘야 한다. 그 대가로 눈부신 찬란함을 미간에 새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이 여름에서 다른 계절로 갈 수 있는 환승 티켓!

빛에 그을린 그림자가 골목 안에서 서성인다. 발소리가 자잘하게 땅을 스치며 적막을 깨운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끌고 달팽이처럼 집으로 사라지고, 담장의 균형을 지키는 고양이 혼자 발바닥을 핥는다. 여름이 무르익었다. 이른 아침부터 아, 하며 입 벌리던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끈끈한 인연을 찾아 벌들이 윙윙 길을 헤맨다. 담장 위 고양이는 핥던 발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언어로 여름을 할퀴지만 그래도 피하긴 힘들다.

편의점 파라솔이 흔들린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오토바이가 요란하게 달리고 아이가 엄마 등에서 잠투정을 한다. 모두가 여름을 상대로 몸서리치는 중이다. 살을 파고든 뾰족한 부리에 깜짝 놀라 그림자를 거두고 골목으로 하나둘 사라지는 사람들. 오늘도 어둠을 기다린다. 따가운 어깨를 식힐 수 있는 밤은 여름 지우개. 발끝에 어둠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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