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른다. 방금 어둠 속에서 하차한 나는 계단을 올라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길게 뻗은 몇 개의 계단을 만나게 된다. ‘나가는 곳’ 노란 문구가 보이자 높은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족히 서른 칸이 넘어 보인다. 45도의 각도는 나를 높은 곳으로 옮겨줄 것이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에 줄지어 올라간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계단을 밟고 싶다. 주름진 길에 대하여 사색의 시간을 음미하고 싶어졌다. 에스컬레이터 줄에서 빠져나와 계단에 발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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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들이 지하를 판 깊이만큼 계단을 올라야 어둠에 다시 승차하지 않는다. 이곳의 단면도를 상상하면 제일 먼저 개미집이 떠오른다. 게으른 사람들이 콘크리트 틈새를 오갈 수 있도록 개미집을 모방했을 것이다. 계단의 수만큼 무릎을 접었다 펴면 최소한의 부지런함으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지루하다. 무게를 발 하나하나에 옮기는 일은 고단한 작업이다.
누군가 날 내려다본다. 가쁜 숨소리를 들었을까, 그는 곧 사라지고 난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다 오르니 얼마간의 평지가 이어졌다. 한참 뒤에서 걸었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덕분에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난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에서 다급함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등을 앞질러 가는 일에는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계단이 이어진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그나마 중간중간 평지가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계단 앞에 섰다. 앞서가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지고, 뒤에서 오던 사람만이 에스컬레이터에 매달려 올라간다. 난 이번에도 계단을 오른다. 바보같이,라는 비웃음이 한 여자의 눈빛에서 새어 나왔다. 그녀의 뒷모습을 무관심으로 밀어냈더니 계단 오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바보같이 왜 계단일까. 아니 계단이 왜 바보일까. 계단을 오르며 생각해보니, 이것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로 퉁쳤기 때문이다. 이 일은 스니커즈를 신을까, 샌들을 신을까 고민하는 일과 같다. 더 쉽게는 자장면과 짬뽕 사이의 간격과 같은 일이다. 이런 것들은 취향의 문제로 간주하면서, 높은 곳을 향한다거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왜 정의나 규정된 잣대로 저울질 되어야 할까.
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계단을 오르는 시간은 계단을 오르기 위해 존재하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결코 계단의 오름을 경험하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힐끔 내려다본 그들의 눈빛이 내 눈엔 안됐고 슬펐다. 이쯤 되면 누가 바보일까……. 잠시 어둠을 공유했던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걷는 나는 밝은 바깥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오며 가며 만날 수 있겠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가 오히려 예의로 둔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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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자 또 평지가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걸 보니 이제 바깥이 얼마 안 남았나 보다.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이 보이고 멀리서 빵 굽는 냄새가 난다. 딱딱한 의자에 등산복 차림의 남녀가 배낭을 발밑에 내려놓고 앉아 있다. 그들이 가야 할 산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어서 한없이 올라가야 하는 계단의 기울기만 존재한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 산으로 모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남은 계단을 오르는 일에 생각을 모으기로 했다.
저 높은 곳을 오르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바깥과 가까운 계단은 또각또각 또는 따각따각 발소리가 제대로 증폭되지 못해 타박타박 하나로 귀결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 미세한 차이는 시인에게나 특별하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쓸데없는 관심이 쓸데없는 충고를 부르지 못하도록 조용히 계단을 오를 뿐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마지막 계단엔 사람들의 걸음이 엉켜있다. 올라가는 사람 앞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려오는 사람 앞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어긋남은 잠시 모호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질서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빠르게 정렬된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높은 계단 끝에 파란 하늘이 있고, 사람들 다리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내려오고 있다. 몇 개의 계단만 밟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난 그 선택을 잠시 미루고 벽에 기대어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잠시 통화하는 사람들이 고인 물처럼 모여 벽에 기대어 있다. 등으로 오싹한 냉기가 밀려온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세상의 온도가 이렇게 냉정했었나. 저 계단 위에만 오르면 파란 하늘이 있는데 말이다.
빛이 닿은 계단은 먼지를 감추며 발자국을 삼키고 있다. 여러 개의 발자국이 쌓였지만 그것의 두께는 오직 한 장이다. 감추고 삼켰다면 발자국과 먼지는 구별하기 힘들다. 발자국은 먼지로, 그 먼지 위에는 다시 발자국이, 둘의 이름은 하나로 족하다. ‘먼지 발자국’. 결국 그거 아닌가. 발자국을 먼지로 만드는 비극을 회색 계단이 교묘히 속이고, 매번 사람들로 하여금 발자국을 찍게 함으로써 시지프스를 체험하게 만드는, 계단은 이런 중요한 사실을 묵인하고 있다. 먼지와 발자국의 효용성을 무시하고 개별적으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냉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그 일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생각 끝에 벽에 체온을 보태기로 했다. 미지근한 등이 거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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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빛은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다. 냉정할 것만 같던 세상에 연민이 느껴졌다. 물론 배려로 해석한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시인 흉내를 내볼까 한다. 계단은 하나 둘 힘들게 올라가는 어린아이에게 운동화 밑창을 밀어주는 일에 열정을 다한다. 세상 밖으로 밀려난 돈 없는 아무개에게는 비를 피해 구걸할 수 있는 거대한 비석이 된다. 허름한 외투에 계단의 먼지와 발자국의 흔적이 역력하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면서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곳, 종로3가역 1번 출구 계단은 돈 없는 아무개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그곳에서 세상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것이다.
계단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모든 죄를 사하여 달라는 메시지를, 머리를 조아리는 일로 대체했을 것이다. 세상 밖으로 밀려난 돈 없는 아무개에게는 처자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정신 차리고 보니 계단 위였을 것이고, 에스컬레이터를 넘보지 않은 죄가 혹독한 추위를 몸으로 견디라 강요했을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가 설정한 구두 수선공 미하일이 지금 계단 위에서 웅크리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쓸데없는 관심이 쓸데없는 충고를 부르지 못하도록 조용히 바라본다. 그에게도 계단은 냉정했을 것이고 얼마간의 체온을 보태야 하는 대상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겠지. 꿈에도 그럴 줄은 몰랐겠지. 차가운 대리석 계단에 엎드려 바구니 안으로 떨어지는 동전 소리를 셀 줄은 몰랐겠지.
막 정차한 열차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때에도 지하에서 올라오는 그들보다 조금 위에 있다는 안도감에 삐딱한 생각을 습관처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주저함도 없이 몇 개의 계단을 생략한 채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올라와 더 밝은 세상으로 사라져버린다. 어른의 손이 아이의 손목을 잡으면 계단은 아이의 운동화 밑창을 정성껏 밀어준다. 돈 없는 아무개 앞으로 과자 봉지를 꼭 잡은 어린아이가 지나간다. 신기하듯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계단을 느리게 빠져나가는 것을 그는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에게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발바닥을 가볍게 밀어줄 계단은 어디에 있을까. 그 아이의 손에 쥐어질 과자 봉지는 어디에서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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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밀려난 돈 없는 아무개가 지금 계단 위에 있다면, 그와 같은 공간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 또한 세상 밖으로 밀려난 사람이다. 바보같이 밀려나다니 세상이 준 특권 에스컬레이터를 밀어내다니, 돈 없는 아무개는 이런 비밀을 알지 못한다.
딱딱한 지팡이의 규칙적인 리듬이 계단의 등을 콕콕 찌른다. 잘 다듬은 나무 한 자루가 노인의 걸음을 끌고 올라온다. 계단의 경사만큼이나 굽은 노인의 허리에서 닳아버린 세월이 우는 중이다. 하나 오르고 둘 쉬고, 하나 오르고 셋 쉬고 노인은 계단을 오르기 전보다 계단의 수만큼 늙었지만 역시 이 미세한 차이는 시인에게나 특별하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쓸데없는 관심이 쓸데없는 충고를 부르지 못하도록 입 다물고 똑바로 계단을 올라야 한다.
딱딱한 지팡이가 미끄러질까 긴장한 눈치다. 흔들리는 노인의 발목을 지탱해야 하는 계단은 노인의 구두가 오래 머물도록 붙잡고 있다. 그래서 노인의 걸음은 아이보다 더딜 수밖에 없고, 하나 오르면 둘 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발의 의지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해석을 개의치 않는, 발을 쥐고 펴는 계단의 정성에 있다. 누군가의 밥벌이가 벌어지고 노인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계단엔 어제의 취객이 두고 간 설움이 한 장으로 요약되어 있다. 미친놈, 욕을 하면서도 대걸레로 그것을 쓸어내는 우리의 질긴 어머니가 그곳에 있다. 그렇게 먼지를 감추고 발자국을 삼키고 밑창을 밀어주는 계단은 검은 껌딱지의 납작한 향기만을 자랑으로 기억한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은 설령 피하고 싶어도 결국 한 지점에서는 반드시 같은 높이를 공유해야 한다. 피아노 건반이라면 같은 음을 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운 좋게 눈 마주치는 일을 피했어도 결국 무언의 마주침이 계단 하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람을 일렁이며 내려온다. 한 여자가 돈 없는 아무개 앞에서 가방을 열고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계단을 오르는 아주머니도 주머니에서 천 원 한 장을 꺼낸다. 서로 알지 못한 그녀들은 목적지도 다르지만 어쩐지 마음이 계단 한곳에서 만난 것 같다. 등이 굽은 아무개는 겸허한 언어 대신 계단에 코끝을 박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할 뿐이다. 이런 광경은 화폭에는 담을 수 있지만 소설 속이라면 언어가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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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저 높은 곳만 오르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계단 끝에는 파란 하늘은 보이지 않고 검은 빌딩의 그림자가 길게 내려오고 있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올라가고 한 방향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사람 앞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올라가는 사람 앞으로 내려오는 사람도 없다. 벽에서 등을 떼고 계단을 오른다. 취객의 흔적은 범죄라도 되었는지 계단에서 그날이 사라졌다.
세상에서 밀려났던 돈 없는 아무개는 온데간데없고, 사채를 부추기는 전단지 한 장만 검은 그림자에 눌려있다.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던 여자들이,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올라가던 어린아이가, 부러지지 않는 비싼 지팡이에 기댄 노인들이 손목을 잡은 손들이 마스크로 표정을 지운 채 계단을 오르고 있다. 또각또각 또는 따각따각 소리가 제대로 증폭되지 못한 채 타박타박 소리 하나로 귀결되는 곳에서 난 혼자 서있다. 그날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은 정말 나 하나뿐일까. 쓸데없이, 여전히 바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