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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Feb 21. 2021

엄마랑 제주도에서

문을 열고 여행으로 들어가다





여행, 문이 열리다



동백 포레스트  ⓒ마혜경



  작년 연말에 시작된 제주살이를 마치고 일상에 돌아온 후 은근슬쩍 준비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시 제주에'라는 희망이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와 가슴에서 맴돌자 꿈에서 바닷가를 서성이는 모습이 자주 그려졌다. 질문을 안으로 던져봤다. '희망'은 왜 막연하기만 할까. 아니 왜 멀리 서있어야 할까. 그랬더니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



활짝 동백꽃  ⓒ마혜경






뭐랄까,
희망은...



  희망'은 부푼 풍선이 멀리 달아나기 전에 그 끈을 조금 내 앞으로 당기는 태도에서 시작되며, 그 일은 내가 지금 바로 당장 실천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가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터득하기 위해 취한 것이라곤 안으로 활시위를 당긴 행위 하나다. 간단하다 못해 너무 간소하다. 이렇게 작은 행동이 생각의 문을 넓혔다. 이유는 모르겠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더 늙기 전에'가 아닌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라고 말하며 넌지시 여행을 제안했다. 신기하게도 엄마 목소리는 '젊음'이라는 말에 닿았는지 청량했으며, 도무지 그릴 수 없는 미소가 웃음과 말 사이를 밝게 칠했다. 이렇게 준비한 여행이 기다리는 동안 행복을 선물했다. 가져갈 것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의논하며 떠나기 전부터 여행의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았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마혜경





바라보다


  명절 반납 후 엄마랑 오래 여행하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거울 대신 엄마를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샤워를 마친 엄마의 머리는 금세라도 싸구려 염색약이 떨어질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조명을 받으면 말이 달라진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은 방금 파도가 스친 바닷가 검은 돌처럼 밝게 빛났다. 약간 엉킨 머리카락 사이로 욕심을 지운 바람들이 사이좋게 드나들 수 있어 안심이 되기까지.

  클렌징에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눈썹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소개로 저렴하게 문신한 눈썹은 엄마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로 '멋있게 살자'를 다짐하듯 단호하게 한 획으로 새겨진 눈썹이 엄마의 표정과 이미지를 주관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그동안 지갑 여는 일을 겁내던 엄마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살 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쓸 땐 쓰고 아낄 땐 아끼는 엄마의 정체성은 얼굴의 가장 높은 곳, 검은 눈썹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래의 나를 만나다  ⓒ마혜경



  팔다리가 빠져나온 셔츠와 바지는 주름을 가득 안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바코드처럼 박혀 그 옷을 입는다면 엄마의 몸 어디선가 삑삑 뼈마디를 읽어낼 것만 같다. 서울에서라면 고동색 셔츠에 고동색 바지가 칙칙하게 느껴지겠지만 제주도 바다와 들판은 색깔을 차별하지 않아 어떤 컬러가 와도 발랄함으로 처리될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자유롭게 준비했는지 엄마의 패션감각은 탁월하다.

  엄마의 손가락은 가지런하게 뻗지 못한다. 검지 하나가 바닥을 긁듯 약간 굽어있다. 요 근래 작은 통증이 있어 침을 맞지만 삶의 표면을 깊이감 있게 짚는 느낌이 들어 이제 그만 우울하기로 했다. 그 정도쯤이야 팔다리 불편한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행운인가.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여행도 올 수 있지 않았나.






왜일까...



내가 엄마를 지긋이 바라보는 이유가 뭘까. '바라본다'에는 기본적으로 의지가 담겨있지만, 정직하게 설명하자면 내 의지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본능 또는 이미 약속된 계약처럼 입력과 출력이 실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_라_보_다'라는 행위의 정의는 패스, 이제 그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뭘까...

'생각'의 모양은 삽을 닮았는지 깊이 파다 보니 얼추 답이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재와 미래의 교차에서 오는 호기심이었다. 난 엄마를 통해 미래의 나를 바라본 것이다. 영화 예고편처럼 엄마의 어떤 모습은 설레고, 어떤 것은 생각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령 커피를 안 마시는 엄마가 카페 테이블에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오늘 만든 추억을 일기처럼 쭈욱 써 내려갈 땐 무척 설렌다.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적당히 굽은 검지는 이럴 때 제격이다. 멋스럽고 작가다운 포즈가 자동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엄마를 만나다  ⓒ마혜경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가만 보니 엄마도 날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날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미래를 답습한 것과는 반대로 엄만 나를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게 가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끔씩 "나도 너 나이엔 그랬어. 그땐 그랬지"라는 말들로 이미 한참 떠난 추억들을 끌고 와 주변을 그리움으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엄만 날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후회했을 것이다. 좀 더 해볼걸, 하고 말이다. 그 시절엔 모두가 고생했겠지만 특히 엄마의 고생은 어린 나도 느낄 정도였으니 엄마의 과거가 아름다울 거라는 상상은 미안한 일이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가를 순 없다. 단지 순간적인 감정들이 좋고 나쁨 사이로 오갈 뿐이다. 결국 과거가 된 날들은 그렇게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엄마를 통해 본 미래의 내 모습은 강력하게 거부한 몇 개의 모습을 제외하곤 결국 또 그렇게 운명 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건 안 돼. 절대로, 라는 말로 온몸에 힘주고 고집 피울 일이 아니다. 지금을 즐겨야 하는 이유를 엄마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한 번 더 되새긴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보는 여행이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마혜경



  깊은 바다에서 전복을 캐는 해녀의 목숨은 하루에도 열두 번 오르락내리락...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을 지켜주는 건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더 좋고 비싼 테왁도 많지만 이렇게 얇은 스티로폼 몇 장을 둥글게 오려 겹친 후 흔하디 흔한 양파망으로 돌돌 감싼 후 바닥에 굴러다니는 끈으로 동여매면 그만인 것이다. 이것이 누군가의 소중한 엄마, 하루치 목숨을 건져 올린다고 생각하니 고귀하다. 목숨이 가벼워서가 아니다. 세상의 비밀은 높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 발밑을 살펴보는 행위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여행일 테고.


  이렇게 정리해보니 나와 엄마 사이는 잴 수 없는 간격으로 겹쳐진 하나였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기 위해 엄마를 보듯, 현재의 엄마가 과거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나를 본다. 서로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담은 두 사람이 집을 떠나 현재에 머문다면 이미 두 사람은 하나의 사람인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차곡차곡 담겨있는 '현재의 한 사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시간이 갈수록 중독성 강한 노래로 녹음되나 보다. 언제든 꺼내어 재생 버튼을 누른다면 엄마와 난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끌고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이다.





긴긴 시간을 '여행'이라는 색실로 엮었으니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줘야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엄마랑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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