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혜경 Oct 08. 2020

갸르릉 테라피

외롭거나 심술 날 땐 갸르르릉 날아가요



얼마 전 산책하다가 고양이 소리를 들었다. 풀 숲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소리. 정작 고양이는 멀리 있는데 고양이 소리가 걸어온다. 서성이지 않고 귀에 고스란히 들어오지만 내키지 않는다. 고개를 흔들어 소리를 털어낸  다시 걸었다. 강아지라면 몰라도 고양이라면 관심 밖이다.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지만 코로나 때문에 무조건 피해야 할 것 같았다.


ⓒ마혜경


바퀴째였을까. 다시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고양이가 다가온다. 이상하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녀석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종아리에 뺨을 비빈다. 간지러운 걸까. 아니면 아는 사람과 착각한 걸까. 순간 얼음이 되었다.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쪼그려 앉아 만질 수도  없는 그림이 그려졌다.  마디로 야릇한 기분.


흰색 바탕에  베이지와 진한 갈색 무늬가 등에  어지럽게 퍼져있다. 아니다, 베이지와 진한 갈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배와 다리에 엉성하게 자리 잡고 있다. 좀 색다른 표현을 하자면 말이다. 구김 없이 좌우로 뻗은 수염은 길고양이 특유의 의기양양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갑자기 정이 들긴 어려운 법이다.


고양이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할 때 커졌다 작아지는 검은 눈동자도 그렇고 검은 눈동자 가장자리의 노란색 라인도 그렇다. 고양이 첫인상이 날카롭고 예리한 이유가 바로 눈동자 때문이다. 갈고리를 닮아서 무엇이든 걸고 일어설 수 있는 뾰족한 발톱, 눈동자와 발톱 때문에  고양이가 싫다. 아니 무섭다.




야아 옹 야 옹~

이 언어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야옹'과 '야아옹' 사이에는
얼마나 다른 이야기가 있지?
'냐오옹'과 '니야오옹'을 혼동하면
어떤 오해가 생길까?




본능적으로 영상을 찍고 싶었다. 녀석은 한 장의 사진처럼 움직이지 않고 나를 주시하고 있다. 움직이라고, 이 자식아! 알아들었는지 발로 얼굴을 닦는다. 정지 화면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핸드폰만 들고 있는 내가 고양이 입장에서는 시답지 않게 보였는지 곧 몸을 돌려 나무 뒤로 달아났다. 녀석도 참 절묘하네. 이젠 달아나도 소용없지 이미 동영상에 담았거든. 얼마나 찍었나 폰을 보니 이거 원, 못 해 먹겠다. 동영상 모드가 아닌 사진 모드가 켜져 있었다. 


ⓒ 마혜경

아, 바보같이... 사진이고 영상이고 뭐고 그냥 고양이나 탐색할 걸. 허탈하게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다시 그 자리를 지날 즈음, 내 실수를 눈치라도 챘는지 녀석은 다시 와서 그 자리에 앉아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더니 나를 보며 야아 오옹 ~ "나도 바빠. 이번엔 제대로 찍어봐."라는 뜻인지 잠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욕심은 이미 멀리 사라졌다. 그래서 이번엔 눈으로만 찰칵! 







갸르릉 갸르릉




ⓒ 마혜경




순간에 너무 큰 욕심을 내면 순간은 달아나고 만다. 아름다울수록 욕심을 버리고 소리까지 기억에 담는 버릇을 갖자. 이것이 그날 묘 선생한테 배운 한 수! 고양이에게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이래서 많나 보다. 옆에서 '갸르릉' 숨소리만 들어도 비타민 한 알을 삼킨 기분. 햇살도 고양이 털만큼 부드러운 오늘, 모두 아이의 투레질처럼 갸르릉 웃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