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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Sep 21. 2020

문득, 가을

가을, 가을이다


문득, 가을



밤이 낮의 길이를 조금씩 가져갈 무렵, 귀뚜라미가 어둠을 파먹기 시작했다. 봄, 아니 여름인가 했더니 벌써 가을이다. 요즘은 시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속도보다 왠지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 강하다. 코로나 때문에 단순하게 패턴화 되어서 일까. 잠에서 깨자마자 조심해야 하고 잠들 때까지 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일상이 하루를 채워간다. 그러나 계절만큼은 잡음에 끌려가지 않고 정확한 간격으로 눈금 긋는 일에 부지런하다.

ⓒ마혜경


가을은 자신이 놓일 시간에 제때 찾아왔다. 언제부터인지 매미가 정겹게 울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바다처럼 파랗게 멀어지고 있다. 조용히 다가온 가을은 무엇을 닦았길래 이렇게 깨끗할까. 무엇을 지웠길래 높은 하늘 아래 하얀 지우개 가루가 뭉게뭉게 뭉쳐있을까.

ⓒ마혜경





가을의 솔직함은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연함에 있을 것이다. 잎과 잔가지를 떨구고도 주위에 연연하지 않으며 고개를 들고 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다. 굽으면 굽은 대로 부러지면 부러진 대로 본래의 시선을 간직한 나무는 가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낼 수 있는 시간. 매미나 나무의 언어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리낌 없이 드러낼 줄 아는 잔잔함은 부럽고 또 부럽다.

ⓒ마혜경


매미는 혼자 울지 않는다. 몇 개의 소리가 모여야 숲이 가을을 부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나무는 혼자 나서지 않는다. 바람이 부드럽게 지날 수 있도록 움켜잡지 않는다. 각자 제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가을을 맞이한다. 이 모든 것에 내 덕이 크다고 생색내는 일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시끄럽게 넘어질 뿐이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우리는,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 말이다.

ⓒ마혜경



그런 가을이 창가에 와있다. 제한된 것들이 난무한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평이 아닌, 태연함이다. 가을이 그랬듯이 두꺼운 프레임을 내려놓고 억지로 돌렸던 쳇바퀴도 잠시 멈춰 세운다. 우리에게 가을은, 주머니의 먼지를 털어내고 빈 공간을 만드는 시간이다. 욕심과 액세서리 따위는 지워버리고 오롯이 맑고 가벼운 맨몸으로 묵묵히 사랑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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