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내린다' 비나 눈이 아닌 커피가 '내린다'는생각을 하니 생소하다. 일정한 줄기로떨어지는 커피가 컵 안의 벽을 잡고 올라온다. 커피는 바닥이 되고 바닥이 된 커피는 키가 점점 자란다. 컵 사이즈에 알맞게 커피가 채워지니컵의 모양만 한 향이 고개를 든다. 오늘은 어떤 향일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수만큼,오늘의 기분만큼. 그래 그럴 거야. 그만큼 향도 다양하겠지. 고민을 내려놓자 문득 '그윽함'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깊이에 넓이 조금, 무엇보다 오래 지속하려는 끈기가 '그윽함'의 고집이니까, 커피를 비우기 전에 향이 먼저 달아날 걱정이 없어서좋다.
컵을 바라보니이상한 생각이 든다. 세상에 발설하지 못한 생각들이 컵 위로 몰려든다는생각. 재잘재잘 테두리를 따라 동그랗게 매달린 언어들이어제의 미련과 오늘의 고민을 의논하며 나란히 돌고 있는 것 같다. 어지러운 생각들을 하나 둘 꺼내본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걸까.고만고만한 것들을줄 세워보니 별것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걱정하기보단 차라리 죄다 꺼내 놓고 노려보는 게 답이라면 답이다. 생각을 멈추고컵 안을 들여다본다. 밤이 드리워진 모습이 보이고 그 옆으로 정적이 흐르듯 잔잔하다. 그런데 너무 가까웠을까.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만 표정을 빠트리고 말았다. 컵 안의 그것과 눈이 마주친다. 그것은 다행히 무게가 없어 허우적대거나 가라앉지 않았다. 난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할 뿐.
표정이 커피 위에 떠있다. 정확히 말하면 표정보다 눈빛. 미간이라도 찡그려볼까. 카페인에 취했는지그것은 의지가 없어 보인다. 아, 표정을 빠뜨리다니. 그동안 난 얼마나 많은 표정을 흘리고 다닌 걸까. 컵을 기울일 때마다 아니 들여다 보기만 해도 표정을 빠뜨릴 텐데세상은 왜 자꾸 아래로만 흘러가는지.
눈빛과 표정이 없어도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하나의 빛이 일률적으로 주변을 품고 있는 창가, 그곳이라면 그것의 행방을 추궁받지 않을 것이다. 비가 잠시 외출한 사이, 운 좋게도 이맘 때면 교회 십자가 너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왔을 테니, 그 빛이라면 표정 없이도난 빛날 수 있다.
창가로 간다. 무표정한 모습과 주석을 달지 못한 이야기를 매달고 창가로 간다. 세상의 칭찬이언제부터 침묵으로 빛나고 있었을까. 창가는 고요그 자체다. 그러나 고요할수록 틈이 있기 마련, 머릿속에뾰족한 기계음이 지나간다. 잠시 두통을 감수한다. 소설가에게선물받은 애정템, 그 컵에 커피를담아 창가에 서서 뭉툭한 표정을지어본다. 난 소설은 못 쓰지만 책 속의 표정은 잘 따라할 수 있기에. 몸이 따뜻해진다.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컵은 처음부터 자신의 체온을 주장하지 않아서착하다. 온기를 나눌 줄 아는, 그래서 무엇을 담아내는 것들이 나는 참 좋다. 나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창밖은 커피를 마신 사람과 마시지 않은 사람이 걸어간다. 다만 그것을 묻지 않는 자들의 게으름이 묻지 않는 일에 부지런할 뿐이다. 컵을 두 손으로 감쌀때창밖의 사람들은 걸어가고, 컵의 온기는 적당히 내려앉아 손안에 퍼진다. 한 걸음씩 발을 옮기자 커피 향도 한 걸음씩 쫓아온다. 바깥의 사람들은 어떤 커피를 마셨을까. 어깨에 닿아 부서진 향기가 손목을 타고 팔꿈치를 지난다. 다시 어깨에 닿아 부서지더니 내 안에 스며든다. 이래서내가 '그윽함'이라 했지. 왜 그윽함이겠어. 그래서 표정을 빠뜨린 거고.사람들은 서로가 스치길 조심스러워 하지만 그들이 보유한 향은 스치다 하나가 되는 세상. 이 아침의 커피 향은 그윽함의 절정을 찍고 있다.
어떻게 발걸음을 옮기든 향기는 길을 잃지 않는다. 당연한 이름이 잘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차분한 표정이 올라온다. 커피를 마신다. 혀 위에 고인 것은 커피일까, 눈빛일까. 아니면 표정일까. 의식하려 하자 커피가 사라진다. 떠난 기차를 바라보듯 컵 안을 바라본다. 맛이 생각나지 않는다. 반이나 줄었는데 그반만큼의 맛은 어디 간 걸까. 다시 마셔본다. 순간의 맛을 기록해보자.맛에도 껍데기가 있는지 씁쓸한 맛이 벗겨지니 부드러운 알맹이맛이 기록되었다.그러나 순간은 영원하지 않는 법. 기록이 머리에만 둥둥 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