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혜경 Sep 30. 2022

정말 달라졌나요

너 말이야.


진도에 내려온지도 벌써 2주가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했다. 내려오는 날짜가 서로 달라 먼저 터를 잡은 나는 이틀을 혼자 지내며 적응하기 시작했다. 숙소는 마을 입구 골목으로 들어와 서너 채의 한옥을 지나면 정자 바로 옆이다. 빨강, 주황, 파랑 지붕 사이로 줄기처럼 뻗어있는 골목은 아직도 가보지 못한 길이 많다. 마을이 어찌나 고요한지 그나마 얼마 안 계시는 어르신들은 아침 일찍 호미를 들고 논으로 바다로 일 하러 가시고 골목에서 거닐던 고양이와 나만 빈둥빈둥 햇살을 뜯어먹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를 닮은 벌레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아마 귓가에 외로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이틀 후 차례차례 내려온 시인들은 각자 책상 위에 노트북과 책을 올려놓고 서랍을 채웠다. 낯설고 먼 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다니 색다른 감동이다. 소박한 밥상 위에서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지난 이야기나 순간의 느낌을 주고받으며 어둠이 별을 빛내듯 좁은 방이 우정을 빛낼 수 있도록 아늑한 온기를 품었다. 각자 얇은 매트를 반듯하게 깔고 머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두고 모두 잠꼬대 없이 잠들었다. 아침이면 눈 뜨는 사람의 인기척이 알람이 되어 모두 바닷가로 향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눈부신 하루를 열었고 논길을 따라 돌아올 때는 비탈길에서 먹을 수 있는 잎사귀를 뜯었다. 손끝에 연둣빛 물이 잔뜩 들었다.


작고 얕은 맛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고 혀에게 의미를 묻자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맛이 느껴졌다. 바람과 공기와 미소가 조화로운 맛을 요리했는지 맛에도 알갱이가 있는 듯했다. 한 알 한 알 느껴지다니. 어느 날 저녁에는 생일파티가 한창이었다. 동네만 한 바퀴 돌면 뭐든 가능하다. 머위잎 위에 들에서 따온 꽃을 얹었더니 멋진 테이블이 세팅되었다. 파운드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비싼 선물도 화려한 음식도 없었지만 모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느 시인의 생일 파티



글을 쓰다가 머리가 답답하면 우리는 문을 활짝 열고 골목으로 나갔다. 정자에 앉아서 천정에 달라붙은 말벌을 구경했고 풀이 무성한 마당을 대문 사이로 바라봤다. 걸으면서 문패를 소리 내어 읽었고 한동안 오래 웃었다. 산호야, 춘실아!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이름들을 불러보면서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두 친구가 옆골목에서 달려와 숨바꼭질을 하자조를 것만 같았다.


이렇게 일주일 가량 같이 보냈는데 이제는 모두 떠났다. 책상이 비워지고 반듯하게 접은 이불이 벽 옆에 높이 쌓였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노래하고... 나는 헤어짐에 대하여 아직도 마스터하려면 멀었나 보다. 주위가 조용하다는 문장이 싫었다. 아무튼 그들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집까지 배달되길 바란다.



혼자 머물며
생긴 습관


우리는 늘 혼자라네



5 : 00  

꾸물대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일어난다. 눈을 감고 이를 닦으며 남은 잠을 내쫓는다. 커피를 준비한다. 이어폰을 꽂고 책상 앞에 앉아서 어제 읽었던 책을 마저 읽는다.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거나 그동안 써놓은 詩를 수정하거나 새로 쓴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방해꾼 핸드폰은 멀리 둔다.


6 : 50

노트북을 덮고 운동복을 입는다.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챙겨서 바다로 향한다. 물 빠진 바다는 분위기 있다. 떠밀려온 조개껍데기를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듣는다. 오늘 할 일을 생각한다. 하기 싫은 일 중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몇 개는 바다에 두고 온다. 태양을 바라보며 웃는다. 등을 따스하게 밀어주는 햇살의 응원을 받으며 돌아온다. 오는 길에 어르신이 보이면 버릇 없게 보일 수도 있으니 즉시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한다. 아침 산책은 한 시간이면 족하다.


8 : 00

샤워를 하고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재료 본연의 맛을 읽기 위해 오래 씹는다. 물을 마시고 과일을 먹는다. 주방을 치우고 따뜻한 차 한 잔 준비하면 이것으로 아침을 여는 준비가 마무리 된다. 책상 앞으로 가기 전에 잠시 바깥을 바라본다. 몇 개의 그림자를 구경하고 흔들리는 나무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비로소 의자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정지화면이라고 오해할 것 같아 사이사이 일어나 스트레칭한다.  
중간중간 커피는 무한 제공!



 18 : 00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게 먹는다. 밖으로 나와 골목을 살핀다. 할머니들이 눈에 띄면 아침에 인사했어도 다시 인사를 하고 잠깐 맞장구를 친다. 바짝 마른 빨래를 걷어 온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한다. 아침에 못 채운 만보를 채운다. 낮에 잘라둔 사과 반쪽을 깎아 먹고, 새우깡이 보이면 한 주먹 먹는다. 일찍 샤워를 하고 차가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린다.



이어폰을 꽂고 낮에 한 일을 이어서 한다. 해야 할 일에 더 비중을 둔다.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선사한다. 질보다 양, 물은 한가득!



24 : 15

일기를 쓰고 지난 일기 몇 개를 읽는다. 조금 성장한 나를 발견하고 살짝 웃는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이불을 깔고 불을 끄고 눕는다. 기억에 남는 톡들을 다시 읽고 꿈속으로 들어간다. 굿잠!






일상이 습관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중간 중간 딴짓을 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귀찮다는 생각을 무시하고 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이곳을 떠날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다시 또 내려오겠지만 머무는 곳이 어디든 부지런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 하나만 지키자. 해서 뭐가 달라지나, 라는 안일함과 시간이 없어서, 라는 핑계는 지우기로. 아예 죽이는 걸로.


아침에 만난 내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