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하룻밤
컹컹
골목에 들어서자 낡은 문틈으로 사악한 개 한 마리가 잇몸을 드러낸다. 귀를 칼처럼 세우고 나에게 통성명을 요구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가 짖으면 뛰는 버릇이 있다. 다리 네 개 달린 짐승도 질서 있게 잘만 달리는데 내 두 다리는 무슨 이유인지 꼬여서 넘어지거나 허둥대기 일쑤였다. 뜀박질이 개의 성질을 건드린 날이면 바지 끝자락이 뜯기거나 슬리퍼가 벗겨졌다. 어른이 되면서 알았다. 맹견일수록 악인 대하듯 해야 한다는 것을. 꾹 참고 무시하면 오히려 안전하다는 것을. 발소리를 죽이며 늙은 개에게서 벗어나자 듣던 대로 막다른 집이 보였다. 물론 커다란 매화나무도. 휴, 한숨을 몰아쉬고 걸으며 손가락으로 벽에 긴 줄을 긋는다. 하얀 페인트가 묻어났다. 아직 스스로 벽이 되지 못한 컬러, 손가락 하나로 얼마든지 꼬실 수 있는 상태다. 왠지 골목 끝에 매달린 이 집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이다.
문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더니, 언뜻 봐도 입구가 훤하다. 내가 온다고 미리 문을 열었을까. 매화나무 줄기가 드문드문 보이고 가느다란 가지는 담장을 넘어 하늘하늘 춤춘다. 하지만 다가가서야 알았다. 애초에 문이 없다는 것을. 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잠시 서 있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액션을 취할 수 없다니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나는 초인종 누르기를 좋아한다. 단추를 닮은 버튼 위에 검지를 살짝 올린 후 지그시 누르면 내가 어떤 공간과 연결된 기분이 들어 좋다. 이 행위는 내가 그쪽 세상으로 건너가도 괜찮은지를 경건하게 묻는 의식과 같다. 이곳과 건너편을 잇는 보이지 않는 다리, 즉 인연의 끈을 초인종 벨 소리가 대신해 준다고 믿곤 했다. 문이 없어도 얼마든지 초인종을 달 수 있는데 그것을 사은품쯤으로 취급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좋아하는 과정이 생략되었으니 담담하게 발을 들이는 일만 남았다. 이 경우 들어가면서 인기척을 내는 게 일반적인 예의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본 ‘실례합니다’보다 친근한 표현이 떠올랐다
들어가도 될까요
대답이 없다. 마당 한쪽엔 파란색 장화가 꼬챙이에 거꾸로 꽂혀있고 현관엔 정적이 묻어있다. 불투명한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다 그만 관두기로 했다. 어떤 눈싸움에도 이길 자신 있지만 먹먹함에 물들고 싶지 않아서다. 디르륵,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간다. 현관에 붙어있던 고요함이 인기척에 놀라 달아난다. 등 돌려 문을 닫으려는데 저 멀리 허공 가장자리부터 어둑어둑해진다. 어둠이 달려올까 재빨리 문을 닫는다.
시골집이 그렇듯 바깥에 비해 실내는 어두웠다. TV 혼자 거실을 채우고 있다. 화면의 빛이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고,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방바닥 위에서 파도를 친다. 거실이 주기적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진다. 나를 초대한 그녀는 침침함 속에서 그보다 더 짙은 자신의 그림자를 등으로 누른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으응, 어깨로부터 뭉개진 그림자가 잠시 벽에서 떨어졌다 다시 붙는다. 나는 그녀의 음성보다 몸짓을 통해 어서 와,라는 인사로 이해했다. 불을 켜려고 벽을 살펴도 스위치가 보이지 않는다. 화면에서 손을 뻗은 빛이 바닥을 이리저리 닦는 중이다.
TV는 바다로 꽉 차있다. 어촌에 간 여자 리포터가 갓 잡은 문어를 들고 하앙하앙 좋아라 한다. 시청자 여러분, 이거 보세요. 제 얼굴을 다 가렸어요. 엄청 큽니다. 여자는 문어 머리를 자기 얼굴에 대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깔깔 웃는다. 내가 보기엔 문어 뒤로 한쪽 광대뼈를 포함해 이마 반, 눈썹 하나, 눈 하나, 콧구멍 하나, 입술 반, 턱 반쪽이 보였으니 정확히 따지면 문어는 여자의 얼굴 반만 했다. 그렇다 보니 여자의 얼굴이 문어보다 커도 한참 크다. 하앙하앙 좋아라 할 주체는 여자가 아니고 문어가 맞다. 그러나 자막까지 나서서 ‘성인 머리보다도 큰’이라고 처리한 점, 심히 부담스럽다. 이런 일에 왜 예민할까 생각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얼굴 사이즈에 민감하다. 봐주기식 표현을 바로잡고 싶어서 문어는 정말 억울하겠어요,라고 말했는데 방안의 그녀는 들은 척 만 척 흐허허, 웃기만 했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졌는지 알 수 없었다.
별안간 화면이 환해지면서 공간이 밝아지는 순간이 생겼다. 그때를 이용해 숨은그림찾기 하듯 스위치를 찾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찾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스위치는 사람이 서서 손을 뻗을 때 팔꿈치 정도의 높이에 있는 게 일반적이다. 찾을 것도 없이 문 손잡이 높이쯤에 스위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바닥에서 반 뼘 정도의 높이에 스위치가 달려있다. 엎드리거나 쪼그려 앉아야 불을 켜고 끌 수 있다. 이곳이 어두웠던 이유가 스위치 위치 때문일까... 무릎을 꿇거나 접어야 밝힐 수 있는. 스위치를 누른다. 초인종의 아쉬움을 스위치로 보상받는다. 형광등이 반짝 눈을 뜨자 주변이 동시에 들어왔지만 내가 다른 세상에 왔다는 느낌보다 현실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녀 등 뒤의 뭉툭한 그림자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그 아래로 펼쳐진 의외의 모습 하나만 빼고는 환한 분위기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바닥에 끼니가 널브러져 있다. 막 냉장고에서 꺼냈는지 냄비에 물방울이 맺혔다. 콩나물 반 물 반이 전부인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그녀를 향해 볼품없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녀의 마을은 문만 열면 대파 밭이다. 눈 감고 뽑아도 잡초보다 대파가 잡힐 지경이다. 맛은 그렇다 치고 송송 썰어 넣으면 구색이라도 맞출 텐데 희멀건 콩나물냉국이 어쩐지 그녀의 표정처럼 심심해 보였다. 내가 집요하게 응시하거나 말거나 양반다리에서 오른쪽 무릎 하나를 세운 그녀는 한 손에 받치고 있던 그릇에서 밥 한 숟가락을 떠 냄비 안으로 비스듬히 넣는다. 밥알 사이로 투명한 국물이 천천히 스며든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이 모여 그녀의 목숨을 연장한다. 너두 밥묵어, 그녀가 말했다. 흰 밥알을 밀고 나온 소리는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평소 그 단어에 신경 쓰는 버릇이 있는지 ‘밥'이라고 말할 때 유난히 입술이 동그랗게 모아졌다. 차가운 국물이 입안의 말들을 얼렸는지 나머지 말들이 바깥으로 내던져질 때마다 네모난 모양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같이
난 오늘 하룻밤만 자면 그만이다. 사과 반쪽과 두유로 저녁을 끝내고 샤워까지 하고 온 터라 자연스럽게 식사를 거절한 후 냄비를 냉장고에 넣는다. 밥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를 들고 싱크대로 간다.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헤어짐이 간소하다. 방금 급조한 주문을 외우며 주방세제 뚜껑을 펑, 열었다. 비눗방울이 날렸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이 마을의 정신을 자랑하는 것 같다. 설거지라고 하기엔 초라해서 오히려 물이 아까울 정도다. 선반의 그릇들은 그녀와 함께 늙었다. 끼니엔 무관심 살림엔 결벽, 이라는 표어라도 내건 모양인지 윤이 났다, 문득 그녀가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반질반질한 프라이팬 안에서 내 얼굴이 흔들렸다. 언제부터 이 안에 있었니, 너 언제부터 이 집에 살았니. 질문이 바닥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나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래, 미안. 여기서 계산기 놀이는 금물. 그녀의 모습을 하나하나 저울질한다는 건 나쁜 짓이지. 마음속으로 사과한 후 등 돌려 다시 그녀를 바라본다.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그녀는 화사한 조명 아래에서 선명하게 웃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만약 자기 몸집보다 큰 돌을 옮기는 개미를 보았다면, 노예가 따로 없네,라고 할 게 아니라 개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끊어진 거미줄에 아슬아슬 매달린 거미를 보았다면 자기 덫에 빠지다니,라고 할 게 아니라 거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개미가 거미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필요와 심정을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방 안이 어두운 것도, 스위치가 아래에 있는 것도, 바닥에서 밥을 먹는 것도 그녀 나름의 필요와 심정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지난여름 글을 쓰려고 진도에 내려갔을 때 그녀는 나의 첫 말벗이 되었다. 낯선 골목 한가운데 머문 지 열흘이 조금 되었을 때였다. 볕 좋은 정자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녀가 언제 왔는지 마치 나와 한 시간 이상 대화를 한 사람처럼 앞뒤 자르고 “나가 초등핵교 댕겼는디 그게 지금 대핵교맨치로 높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재미있는 소설책을 덮게 했고 내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앉게 만들었다. 그녀는 말할 때마다 먼 산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옆 마을에서 시집온 이풍자라며 여든셋이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무척 외롭다는 걸 느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혼자 머물고 그녀도 혼자여서 동지애를 느꼈는지 모른다.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같이 자기로 한 약속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녀의 방문을 열자 낡은 사물들의 냄새가 코끝을 건드린다. 왼쪽 침대 위로 가렌더가 걸려있는데 사랑합니다,라는 글자가 양쪽에 빨간 하트를 매단 채 그네처럼 붙어있다. 그 위에는 전원일기에서나 볼 수 있는 액자 네다섯 개가 줄지어 걸려있다. 눈매만 봐도 누가 아들이고 딸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나는 바닥에 요를 길게 깔고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뿌연 전구 안에는 지난여름의 모기와 이름 모를 벌레들이 먼지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다. 마치 이 집의 기억이 실타래처럼 엉켜 그녀가 누울 때마다 상기시키려고 괴롭히는 것 같다. 조명을 청소하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녀 나름대로의 삶이라 등을 바닥에 더 바짝 붙이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우리는 눈을 감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서 애써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분명 그녀도 젊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열세 살을 지나 스물일곱을 건너 오십을, 칠십을 그렇게 걸었을 것이다. 우리는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누웠지만 눈을 감으며 생각하니 그녀가 십만 년 전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벌써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풍자씨의 목소리가 연기처럼 멀어진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떠오르다 가라앉고 깊이 잠이 든다. 곧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