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작가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 <우연한 빵집>은 세월호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준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남겨진 자들은 길을 헤매거나 서성인다. 세월호 사건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생생한 이유는 대부분 꿈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을 당했다는 것과 원인과 대처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우연한 빵집>이 그날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중이다. 우리의 망각은 잠시 멈추기를 바란다.
우연한 빵집 / 김혜연
無와 有의 향연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불안정한 상태다. 그들은 길을 걷다가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 그들이 도달한 장소는 이기호의 빵집. '빵'이라는 글자만 간판에 새겨진 그곳은 이기호가 아버지에게서 넘겨받은 가게다. 이기호는 아버지 방식 그대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빵을 만들고 파는 가게에 이름은 없고 '빵'이라는 간판만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기호의 '빵'은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 '빵'이라는 단어에는 수식어가 지목했을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피수식어를 자처하지 않는다.이미 언어 이상의 역할을 지닌 채빵의 보편성을 능가하고 있다.
더 아시아엔
하경은 군대에서 자살한 오빠를, 진아와 태환 그리고 윤지 엄마는 세월호 사건으로 떠난 윤지를, 소연은 약혼남 태환을 기억하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이들은 모두 길 위의 사람들이다. 길에 새겨진 이름들이 그날의 사연을 가지고 한곳으로 모인다.
사회는 슬퍼하거나 외로워하는 사람들을 나몰라라 하며 귀찮아한다. 그리고 군중은 고독한 대상을 밖으로 몰아낸다. 자본주의의 속도를 역행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방해꾼으로 치부되며 희생양을 강요당한다. 쫓겨난 사람들은 시작과 끝이 고통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다행인지 이들의 여정에서 순례를 엿볼 수 있다. 작품 속 그들은 우연히 발견된 빵집의 문을, 우연히 열게 되고,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그곳은 '우연'이 연속되면서 흩어진 인물들을 하나의 우연으로 맺어준다.
이름(無)이 없는 빵집에 이름(有)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진 이름(無)을 가지고 모여든다
작품 속에서 '無'는 '有'를 부르고, 그'有'는 또 다른 '無'를 담고 있다. 이 세상에 있음과 없음은 반대 개념으로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있고 없음은 하나의 선처럼 연결되어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현상 밖의 세계를 가리키면서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 되는 이유도 안과 밖, 있음과 없음이 따로가 아닌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데아에 원인을 제공하고 현상 세계에 실재할 수 있는 결과를 마련할 수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이기호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이기호의 없음이 다른 있음으로 채워지는 순간, 사라졌던 이름도 하나의 추억으로 되돌아온다.그리고 이름의 있고 없음은 서로의 빈 공간과 틈새를 향해 스며든다. 이 작품에서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이기호는 어떤 인물일까.
작가 지망생 이기호는 펜보다 빵에 익숙하다. 손 조작으로 하는 행위는 글과 음식으로 형상화되면서 혐오와 위안으로 분리된다. 그는 자신의 글을 혐오하면서 빵을 반죽한다. 자신의 작품을 책꽂이에 거꾸로 꽂아두는 행위는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반대로 갓 구운 빵들을 진열대에 정갈하게 진열하는데, 이 행위는 자기부정보다는 자기 인정에 가깝다. 이기호에게 있어서 바깥의 이기호가 안의 이기호를 부정하는 방법은 책장을 덮듯 철저하게 자신을 덮어두는 것 하나뿐이다. 이름이 없는 빵집도 무명작가 이기호를 대변한다. 공간의 무의미는 이기호의 무명과 대치하면서 서로 엄숙하게 숨어있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이 빈 곳이 무언가로 가득하다. 그곳을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일까.
푸드 테라피
캉파뉴는 장발장이 훔쳤던 빵으로 유명하다. 장발장은 캉파뉴를 훔친 후 19년 옥살이를 한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캉파뉴는 세상의 허기를 잠재우기 위해서 국경과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 한 조각조차 못 먹는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망언을 했다. 훗날 이 망언은 그를 저주하는 세력이 지어낸 풍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이 아니다. 빵은 인간에게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기호의 빵집에는 다양한 빵이 있다. 그는 달콤하고 화려한 빵보다 특히 캉파뉴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빵의 기본인 캉파뉴는 이기호의 손에서 습작하듯 만들어진다. 그가 쓰지 못했던 문장처럼 빵에 새겨진 의미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 그것은 일종의 침묵 테라피,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마주 보며 말없이 음식을 먹다 보면 무언의 대화가 오가고 상처가 자연 치유된다. 잃어버린언어를 테라피 하는 공간, 이기호의 빵과 빵집이 그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오마모리
유예(猶豫)를 유예하다
'유예'는 일을 실행하기 전 날짜나 시간을 미루거나 늦춘다는 뜻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태환은 윤지와 길을 걸으며 시디플레이어로 '9와 숫자들'의 노래, 유예(猶豫)를 즐겨 들었다. 태환에게 유예란 윤지와의 관계에 행운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의미한다. 부적으로 간직한 오마모리를 윤지가 태환에게 건네주었을 때에도 태환은 그 오마모리의 행운이 유예의 힘을 받아 불행이 다가오는 시기를 미루거나 늦추길 희망했다. 태환이 생각하는 유예는 끝은 있으되 마주하기는 두려운 스스로의 나약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인물들은 이기호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다가오지 않도록 유예의 방어벽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약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세월호 사건과 군인의 사망 소식은 소화하기 힘든 역사다. 그들의 유예는 유예되지 않은 채, 왜 곤경과 고독으로 기억될까. 행복과 사랑은 불안과 두려움을 유예하면서 유예의 유예를 거듭할 뿐이다. 우리가 슬픔과불행을 이겨내는 방법은 본능적으로 망각에 기대는 것이다. 그리고 사소하게 때로는 단순하게 고립과 악몽을 유예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