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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Jan 31. 2020

'리얼'에 삼가 애도를 표하다

죽은 리얼을 추모하며


  리얼(real)이란, '진짜의, 현실적인, 실제의, 실재하는'을 의미한다. 즉, 리얼은 '현재 실재하고 있는 진짜의 OO'라는 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지만 '진짜, 진정한'으로 한정되면서 리얼은 엄격한 기준을 갖게 된다. 리얼의 범위는 까다롭고 명확하다. 'real'에서 파생된 'really'와 'reality'도 가상이 아닌 현존하는 '진짜의'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무리 'fake' 속에 숨겨도 리얼은 본래의 속성을 가지고 제 발로 걸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리얼의 경계가 느슨해졌다. 리얼 real에서 변화된 레알 real은 오히려 진짜를 향해 삿대질 중이다. 주로 청년 또는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레알은 리얼의 진정성을 배제한 채 가벼운 대화에 출몰해 유머러스한 순간에 던져진다. 기존의 리얼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데 주력했다면, 레알은 감탄과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美와 재력의 정도가 진짜에 얼마나 미치는가는 두 번째고 '우와 예쁘다고?' 또는 '오 갑부야?'라는 일순간의 감탄에 신조어처럼 소비된다. 스페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따온 '레알'은 리얼과 같은 영문 기호로 표기되지만 서로 다른 포지션에서 포착된다. 인기 부사의 대표를 자처한 레알은 리얼의 어깨에 가뿐히 올라타 리얼을 익살스럽게 대행하고 있다.


  단지 리얼과 레알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표(글자)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진짜'를 고집하던 기의(의미)에서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 '진짜'를 선별할 수 있는 까다로운 감각, 더 나아가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리얼은 레알의 등장으로 상태가 리얼하지 못하다.






  웃고 떠드는 동안 우리는 또 중요한 것을 밑지는 값에 넘긴 듯하다. 그래서 생긴 리얼에 대한 또 하나의 의문!



궁금하면 들어보라

유쾌하진 않지만 그러나 솔_깃_한
민낯을 곁눈질로 엿_보_는,
그것의 리얼함을 대_놓_고






  '리얼'하면 생각나는 것이 요즘 핫이슈 리얼돌이다. 리얼돌이란 인간의 체형을 그대로 본뜬 특수 인형을 말한다. 리얼돌에서 '리얼'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형이란, 헝겊이나 플라스틱, 나무, 종이 , 흙 등으로 사람의 모습을 조그맣게 만든 물건'을 말한다. 현재는 사람 외에도 동물 등 다양한 인형이 존재한다. 사람을 닮은 인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람을 본뜬 물건'은 '가짜 인간'이다. 인형을 '가짜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낭비다. 그래서 그냥 인형이라고 통칭한다. 그렇다면 리얼돌, 즉 '진짜 같은 가짜 인간'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왜 우리의 이념을 흔들고 있을까.


  모든 인형은 어떤 대상(진짜)을 표방한 가짜다. 우리는 강아지 체형을 그대로 본뜬 강아지 인형을 '리얼 강아지 인형'이라 부르지 않는다. 조커를 본뜬 인형을 '리얼 조커 인형'이라 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이든 인형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대리물, 그러므로 그 자체에 '리얼'이라는 수식은 역시 낭비다. '인형'은 잘못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 체형을 그대로 본뜬 인형을 '리_얼_돌'로 부를 이유도 없지 않을까?



리얼이 수식하는 대상은 사람이다
그것도 살_아_있_는
꼬집어 말하면 여_자

아니,

女_性


리얼돌 제작 과정 / 중앙일보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려면 인간의 욕구/충동과 모의해야 한다. 리얼돌은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로 제작되지만, 여성성을 표방한 인형이 인기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인기는 사회적 이슈가 되기 쉽다. 페미니즘이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했고 윤리와 도덕이 손가락질하면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실리콘과 우레탄 고무의 조합은 인간의 피부를 능가한다. 부드러운 피부는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화장도 가능해서 리얼돌의 단점을 찾기가 장점보다 더 어렵다. 진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력은 가짜에게 리얼이라는 라벨을 붙여준다.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가 있는 것처럼,  사람보다 더 진짜 같은 인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상품 등록이 가능하고 성인에 한해 판매망이 확장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냐 물을 때  "예, 알겠습니다." 고분고분 답해야 하는지 다수의 사람들은 이 문제와 충돌하고 있다.






  개인의 성적 결정권 행사에 간섭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래서 리얼돌은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리얼돌을 생산하는 공장은 네 군데라고 한다. 여성 단체의 항의에 리얼돌 제작사 측은 상품에 여성인권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항변한다.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시대, 지하철 탈 때가 제일 큰 고민인 시대, 여자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믿는 시대, 성의 사각지대를 좁혀야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시대, 일명 펜스 룰이 최선사회, 우리는 아니 남성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리얼돌은 정당하다는 논리.

나쁘진 않다. 그 이유라면.


그러나 조건이 있다.



'똑같은 얼굴로 제작 불가능'이라는
약속이 지켜진다면.

본인의 얼굴이 리얼돌로 제작될까 두려워
못생겨야 안전하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지 않는다면,

리얼이 리얼함을 이유로
악용되거나 유린되지 않는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도덕과 윤리에 타락하기 쉽다. 하나의 턱을 넘으면 또 하나의 문턱이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다. 과학과 기술은 문턱을 먹이 삼아 전진하는 속성이 있다.


  그것은 건강한 문턱을 지나야 한다.

본래의 취지를 잊고, '리얼'이라는 문패를 방패 삼아

'좀 더 리얼', '리얼의 리얼의 리얼'로

과장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면 안 된다.



  리얼은 진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를 대변하는 이다. 은근슬쩍 진짜를 넘어설 때 리얼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인형이 본래 인형의 역할을 벗어나 인간의 역할을 대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가짜는 가짜로서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표해야 한다.


가짜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가짜는 진짜를 탐하지 않아야 한다.


욕심만으로 진짜가 되지 않는다.



  모자라야 리얼이다. 넘어서면 리얼이 아니다. 그러나 리얼리즘 21세기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 슬픔 속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만의 몫이다. 방관은 직무유기다. 진짜가 복제되는 세상, 슬픔의 주체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직한 리얼을 고대하며,


한동안 우리를 놀라게 한

'도 넘은 리얼'에 대해 삼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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