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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Feb 21. 2020

페이퍼를 위한 경배

기억을 기록하다



기록하다



  종이는 나무를 주재료로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안에 들어오는 종이는 구하기는 쉽지만, 만드는 과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AD 105년 중국 후한(後漢) 채륜(蔡倫)에 의해 발명된 종이는, 나무 등의 섬유 식물에서 펄프(pulp)라는 것을 뽑아내야 만들 수 있다. 이때 여러 목재가 사용되지만, 그중에서도 셀룰로스가 50% 넘는 침엽수를 최상으로 꼽는다.


  적당한 목재를 고른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잘게 부수고 고온에서 오랜 시간 쪄내는 일이다.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되면 표백 처리 과정에 따라 크래프트(craft) 펄프, 쇄목(碎木) 펄프 등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다. 삼림자원이 넉넉한 우리나라에서 90% 이상수입에 의존하는 이유는 가지고 있는 목재들이 종이의 재료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숲이 많다고 무조건 최대 생산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까다로운 선별과 처리과정 등 머나먼 여정을 거쳐야 종이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역시 드물다.


펄프를 뽑을 목재



  종이는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기록하는 행위이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보면 인간의 기록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페이퍼(paper) 어원이 수생식물 파피루스(papyrus)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도 종이와 기록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파피루스 ‘아니’에 담긴 ‘사자의 서’ 중 심장의 심판 장면                     출처 : The Egyptiana Emporium


기원전 1650년~기원전 1550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피루스. 발견자의 이름을 딴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로 불린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나라도 예부터 돌이나 나무껍질, 가죽, 그리고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록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종이는 과학 발달하고 기록이 정교해지면서 인간과 오랜 역사를 함께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물되었다.




노트북과 USB

  스피드, 스마트한 사회로 접어들면서 종이의 역할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종이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다. 과거보다 기록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종이보다 PC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다. 이제 기록의 힘은 종이의 유일함이 아니며, 절대적인 것은 더더욱 아닌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종이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삶에 다가올까. 조금은 암울한 이야기를 해보자.








  비싼 몸값, 기록의 절대 우의를 차지했던 종이는 점점 위태로운 시기를 만나게 다. 종이책 앞에 e-Book이 나타나고, 블록체인이 등장하고, 거의 모든 자격이 모바일 상에서 재구성된다. 겉장부터 눌러쓰던 노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구기고 찢고 태우고, 가볍게 쓰레기통으로 던지며, 발로 밟는 일은 이제 놀이가 될 정도이니, 귀한 종이의 역사를 회상하면 역시 뜨끔한 순간이다.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웠을까. 종이는 갈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물리적인 힘과 독한 약품에 시달려야 했던 종이는, 얇고 예리하게 날을 세우고, 자신의 기록 정신을 강력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기록이랍시고 우리에게 내민 것들 어이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박박 찢어대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종이의 엄포에 한숨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성적표를 받고 공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의 최선은 종이만 만나면 언제나 부족하게 기록된다.  카드 명세서는 꼭꼭 숨겨놓은 욕망을 잘도 포착해 거금의 기록을 세운다. 결제일만 되면 누구나 후회와 공포로 가득하다. 범칙금 고지서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음을 법의 이름으로 기록한다. 설명할 수 없지만 동의할 수 없는 고지서가 한두 장이 아니다. 고지서가 발급되면 그런가 보다 하고 지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종이는 객관성에 자신의 권력을 살포시 얹어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찢거나 태워도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종이의 권력 말이다.


  시련은 갈수록 늘어난다. 블록체인이 등장하는 듯하더니 상용화되지 못했으며, 아직도 최상위는 돈이 차지하고 있다. 원가는 동전이 높지만, 사람들은 돈이라면 지극히 종이돈을 욕망한다. 시끄러운 동전보다 빳빳하게 셀 수 있는 지폐(紙幣)가 최고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잘 아는 사실이다. 신에게 돈으로 믿음을 사는 사람도 있고, 명예를 사거나 사랑을 얻는 사람들도 다. 이 모든 일은 동전이 아닌 종이돈의 위력으로 보이며 '보이지 않는 손'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종이 몇 장과 정치를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잉여’와 '편리'를 추구한 결과가 돈뿐일까. 문신하듯 도장 하나로 부부의 인연이 갈라지는 일을 종이는 표정 없이 수행하고 있다. 매너인 양 씁쓸함을 달래주는 위자료는 흐르던 눈물을 마르게 하는 미덕을 겸비한 지 오래다.  사람의 긴 인생이 사망진단서라는 단순한 서식에 담겨 서류철에 보관되기도 하고 계약서가 없으면 누구도 집주인이 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종이 없이 모바일 상에서도 가능하지만 특히 종이는 이런 일에 위력을 과시하는 걸 선호하는 듯하다.

종이는 가장 날카로운 기록을 고집하며, 우리가 한 눈 팔면 손 이상의 것이 베인다는 사실을 무언 중에 말하고 있다.

종이의 효력은 강력하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듯 요즘 날 선 모습을 취하고 있다.


날 선 종이에 베다


  천편일률적인 해석 뒤엔 언제나 그 반대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내가 그 상황에 칩거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종이의 출생과 역사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다양한 기능에 대해여 이야기했다. 솔직히 약간 어둡고 고답적인 시선으로 종이를 바라본 셈이다. 좀 더 고백하면 종이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죄를 범주화하는데 고집을 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을 수 없는 인연의 이유는 무수히 많다.


  역시 보잘것없는 기록에 대한 절실함 때문이다.

스피드, 스마트하지 못한 글들을 종이 위에 잘 뉘이고, 재우고, 깨우기를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펜 끝으로 제압했지만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고상하게 누워있다가도

허리를 꼿꼿이 세워 '이 따위의 글' 운운하며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바보와 천재 사이를 오가는 일이

나마 내가 종이를 존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무가 가지를 뻗어가듯,

자음과 모음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걸어가는 것이다.

나무와 종이에 무늬를 수놓는 것이다.

는 방식에 따라 기록의 무늬가 정해지는 것이다.




페이퍼를 위하여, 경배


  이제 악몽에서 깨어나 오늘 남길 기록을 고민 중이다.

목재에서 펄프를 뽑듯 최종 기록을 모색 중이다.


돈과

성적표와

사망진단서의 추모가 아닌


나무와 파피루스와 들판을 닮은

드넓은 종이를  만나기를


기우제 방식으로

경배하는 중이다.






그림 | 안충기 기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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