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혜경 Oct 14. 2020

말이 추억이 되려면

가벼운 말이 깊이 박힌다

  


  코로나가 터지고 얼마 안 돼서 브런치에 '무르시족에게 배우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무르시족 여인들은 재앙이 입을 통해 들어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입술에 접시를 끼워 입과 말을 조심한다. 그들에게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오직 '침묵' 하나다. 기침과 재채기가 우리의 관할  일이라면 침묵은 얼마든지 주관할 수 있는 손바닥 안의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말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입으로 재앙이 들어온다고 믿는 무르시족 접시여인  

  


  말은 바이러스 이상으로 많은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완성되지 않은 생각을 매달고 질주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반성이 우리의 종아리를 이따금 아프게 때리는 것이다. 후회와 반성이 범람해도 기하지 않고 조심하는  말이다. 누구나 말을 조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가장 중요한 건 때와 장소, 나이와 본분에 맞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날엔 밤새 후회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미  흘러간 말이지만 가슴에 남은 먹구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 때문에 지인과 거리를 둔 일이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말처럼, 거리를 두다 보니 안 본 지도 꽤 됐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친한 샘들과의 여행에서 말 몇 마디에 분위기가 다운되어 다음 날 아침만 먹고 바로 해산한 일이다. (잠깐! 오해는 금물. 하찮은 말 한마디가  아니다. 이미 오래 축적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도 좋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말이 그림 같은 여행을 만든다  ⓒ마혜경

  

  평소에도 말을 기분 상하게 했던 어떤 한 사람 때문인데 그날은 뭐가 꼬였는지 숙소를 준비한 사람한테도 저녁을 산 나한테도 빈정대는 말이 귀와 가슴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보였던 그동안의 말 행적을 스피드하게 스캔해 보았다. 순간 이런 사람과의 여행은 한 마디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 날의 여행이 생각지 않게 짧게 재단된 것이다. 그 뒤로 연락을 안 했지만 그쪽에서도 눈치를 챘는지 일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결핍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질투와 시기에서 출발한 말은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도 쉽게 들키고 만다. 누가 잘 되는 일(꼴?) 보기 힘든 사람은 다 된 밥에 재를 잘 뿌린다. 그래서 마음에 , 박힌 상처는 주워 담기 어렵다.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쿨하지 못하냐, 농담 삼아  말에 왜 넘어지는지 모르겠다'라고 이해를 강요하지만 이런 태도는 이기적이고 무지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쌍방이 즐거워야 농담이다. 쿨하다는 기준도 이쪽에서 공감해야 성립된다.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줘야 한다는 건 너무 억지다. 왜냐하면 누구나 꾹꾹 누르고 있는 감정들이 있는 법이다.


꾹 누르고 있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마혜경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상대의 표정과 대답은 자신의 말 성적표라 할 수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은 말할 때 깊이 생각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이 그렇지 못한(개떡 같은?)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잘 준비한 여행이 깨지고 더 긴 인연으로 자라지 못한 채 단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말들은 왜 가볍게 나오는 걸까.



  모든 불협화음의 중심엔 말이 있고, 말의 중심엔 상대를 휘두르려는 욕망 '투사'가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투사는 '자신의 희망을 타인에게서 추구하려는 심리'를 말한다. 뭐든 상대가 따라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함부로 하는 태도와 충고를 부른다.  투사는 충고와 같아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종종 남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고 그동안 쌓아 온 인연들이 쓰레기통에 마구 버려지는 것이다. 누군가의 배려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지적을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 자랑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인연에 금이 가면 깨지기 쉽다  ⓒ마혜경



  말은 그 사람의 수준을 반영한다. 다짜고짜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은 아직 불을 제어할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고, 뭐든 부정적으로 보거나 빈정대는 사람은 상대를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그릇못된다 뜻이다. 단지 이런 모자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소리와 제스처에 공을 들일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모양새가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들키기 딱 좋게 엉성하다는 것이다. 데없이 큰 목소리로 나서거나 뭐든 다 아는 척하거나 제스처가 거대하다면 거의 백발백중이다.


  얼마 전 추석이 지났다. 명절 때마다 뉴스에서 빼놓지 않고 다루는 것이 있다. 단란한 가족을 인터뷰하는 영상이다. 시골 담벼락 옆으로 자식들의 차가 주차되었고 열린 트렁크에 감이며 고구마 등을 싣는 손길은 손주를 안고 있는 늙은 부모를 훈훈하게 만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가족의 모습이  많다. 올 추석에도 강원도에서 일가족이 다퉈 폭행으로 불거진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그 일이 말 한마디에서 출발했음을 알고 있다. 정성이 오가는 밥상 위에서 거친 말들이 충돌하면 사연보다 사건이 일어나기 쉽다. 오랜만에 자식 얼굴을 구경한 부모가 무슨 죄가 있길래 씁쓸한 뒷모습을 맛봐야 할까. 오래된 인연도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말을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가족은 같은 언어로 밥을 먹는다  ⓒ마혜경

  


  코로나로 모두 예민하다. 소상공인들은 월세를 못 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누가 봐도 부자처럼 보이지만 주인도 대출 이자가 밀려 드러누웠다. 지하철에선 마스크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고, 선별 진료소에선 시간이 지체되어 짜증이 늘어난다. 누구 하나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래도 먼저 손을 내미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이 얼마나 따뜻한지 멀리서도 빛이 난다. 그런 말들은 추억 앨범에 꽂히게 되는데, 이를 테면 별게 아니다.

#그때참좋았어

#먹자

#할수있어

#괜찮아

#고맙습니다

#감동이야

#수고했어

#사랑해


그리고


#널믿어



오늘 딱 하루만 이런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오늘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당신의 말버릇'에 대한 시스템 점검이 있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수고했어요, 제법 따뜻한 말!  ⓒ마혜경













    


매거진의 이전글 영혼을 빌려 준 친구들, 쓰담쓰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