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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Jan 14. 2021

소설 복용법

어떻게 드시고 있나요




소설을 읽다  ⓒ마혜경




소설, 어떻게 복용하나요?



읽는 자의 몫이다. 어떻게 읽고 소화하든 옳다. 그래서 그 일에 토를 다는 일은 익스큐즈미! 한 사람의 생이 그것을 관통하는 일은 깨달음과 해답을 얻는 과정이다. 만약 같은 호흡을 경험했다면 더 이상 남의 활자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이 그렇다.

  

소설이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작가가 본인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꾸며낸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은 이규보의 '백운 소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시작부터 패관문학(稗官文學)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인식되면서,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 현실성이 떨어진 이야기, 즉 '허구'에 찍힌 방점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치부되는 경향이 컸다.


이야기는 '일어난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서술한 것이다. 이 말은 과거와 미래로 구분되면서 이미 일어났다면 '사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장했다면 '허구'라고 한다. '사실'보다 하위 취급을 받는 '허구'는 소설의 위상을 깎는 것도 모자라 읽으나마나한 이야기로 둔갑해 풍문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손가락질 뒤에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이불속에 숨어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는 목격담과 함께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 열정 덕분인지 다행히 소설은 제대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 어떤 울림이 있어서일까.



어떤 흔들림을 느끼다  ⓒ마혜경



소설의 매력은 어떻게든 위로받는다는 사실과 상상하기 어려운 삶의 유형을 짧은 시간 안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불안은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대신한다. 거울 속이라면 어떤 골치도 적당히 앓다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기에 사람들은 점점 유연해지고 단정해진다.

소설 애호가라면 이런 점을 잘 활용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걸맞은 인물을 골라 동일시를 즐길 줄 안다. 이때 생기는 공감은 균열된 정서를 차분하게 다독거린다. 그날그날에 어울리는 소설은 치유의 언어가 되어 문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스토리가 과거의 상자 속으로 집약되었다가 어느 날 상자 안에서 툭, 하고 터져 나올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소설은 당신으로 하여금 무릎을 치는 행위를 유도할 것이다. 아, 이래서 소설을 읽는구나, 하고 말이다.






  


기차가 외로움을 끌고 역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한 여성이  머리를 흩날리며 기차에 오른다.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던 그녀인데 이상하게도 한 남자와의 눈맞춤으로 무너져버린다. 사랑은 뿌리내릴 곳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몰랐던 걸까. 강한 이성을 지녔던 안나카레니나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를 구걸하지 않는다. 사랑 앞에 당당함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사랑의 모양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 제일 먼저 그녀가 올라탄 객차 안을 떠올릴 것이고,  분위기에 매료되었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공모를 자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념은 오래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이해하다 빠져나오는 게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행위나 상황을 곧이곧대로 맹신하면 안 된다는 진실을 소설에 깊이 빠져들수록 알게 된다. 


한 사람의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이지, 뭐든 믿고 정당화하는 일은 소설을 무례하게 대하는 일이다. 어느 날 문득 소설의 한 부분을 떠올릴 때가 있다. 만약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한 입 입에 넣는 순간이라면 <너무 한낮의 연애>의 양희가 생각날 것이고,  홍차와  마들렌이 아니더라도 커피에 마카롱을 곁들이는 순간이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을 떠올릴 것이다.



기억이 추억이 되다  ⓒ마혜경



소설은 우리의 기억을 조금 부드럽게 반죽하는 정도의 아주 소소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삶을 통째로 흔들거나 정신없이 폭풍을 일으키는 소설보다 잔잔하게 다가오는 소설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굳어버린 표정이 빛을 머금거나 갑갑한 일상에 숨통이 트일 때면 소설의 덕을 오롯이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만큼 소설은 삶을 유연하게도 단순하게도 정렬할 줄 안다.


세상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누구나 소설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좋아할 의무도 없다. 오히려 소설을 거북해하거나 남의 이야기로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에게 있어서 소설만큼 지루하고 끔찍한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한가한 타인의 이야기 또는 공감이 결여된 스토리가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일이다.


소설을 만나는 일은 판도라 상자를 여는 일처럼 고통이 수반된다. 보나 마나 행운보다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거란 불안이 운명의 장난처럼 모험을 걸어온다. 무턱대고 열어 본 상자는 책임을 물을 것이고 사사건건 이유를 캐묻고, 무딘 칼로 사건을 재단하려는 노력을 주인공 못지않게 강요할 것이다. 이런 피로가 쌓이면 독자는 괴로움에 지쳐 선물이 아닌 재앙으로 소설을 기억하게 된다. 감정의 선이 여려 옆에서 누가 손수건만 들어도 따라 우는 사람들이 그렇다.


자신의 무게에 집중하느라 '별별 세상 문제'에 크게 욕심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정한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뒤처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샛길로 빠지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걸음에 집중하는 사람들, 그들은 소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묵묵히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는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소설을 지나치는 일은 문학적으로 큰 손실이다. 그렇다면 그 손실을 막기 위해 문학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문득, 책  ⓒ마혜경




이유 없이 함께 수장당한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은 멋이 없다. 엿보기로 시작한 일에 불행이 오래 이식된다면 독자는 등을 돌릴 것이다. 너무 친절한 이야기도 독자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뻔한 프레임은 독자를 우롱하는 일을 넘어 작가 스스로에게도 활자를 낭비하는 행위이다. 다만 소설이 지켜야 할 약속은 한 사람의 정서를 정교하게 노크할, 노련한 손놀림뿐이다. 마구 두드리는 것 말고 심플하게 잔잔한 정경처럼 단 한 사람의 가슴을 향한 노크가 바로 소설이 사람에게 가닿는 길이다. 그때 생기는 일이 바로......



정_리_되_다



감정의 선이 가지런하다  ⓒ마혜경



카타르시스 katharsis, 그리스어로 정화(淨化)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봤을 때 슬픔이 해소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 현상을 마음의 상처가 외부로 나오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순기능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소설이 우리 마음에 내린 처방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받아 복용하면 그만이다.


모든 감정엔 농도가 있다. 불행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작품을 선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감정이나 기억이 짓무르거나 썩어가는 느낌이라면 그 작품과 자신은 너무 이른 만남이었거나 영영 만나면 안 되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될 수 있는 대로 비극을 앓지 않기 위함이다. 비극을 앓을 필요는 없다. 다만 알 필요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습관적으로 예쁘기만 한 행복, 정형화된 사랑, 해피엔딩만 추구하는 일은 위험하다. 자신의 감정 깊이에 맞게 처방을 잘 내려주는 소설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그 눈물을 닦을 수 있다. 이제 잘 돌아가기 위해 어디쯤에서 내게 어울리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것을 살피기에 적당한 길이 바로 소설이다. 비극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진열된 장르, 얼마나 친절하고 리얼한 지... 재차 강조하건대, 무조건 앓을 필요는 없다. 다만 알 필요가 있을 뿐이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게 있다. 작가만의 고유성, 어쩌면 작품은 작가를 대변하는 일에 부지런할지도 모른다. 작가를 들여다보는 일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답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스토리의 유희를 독점할 권리는 독자에게 있다. 몇 가지만 잊지않고 기억한다면 말이다.



스스로 길이 되다  ⓒ마혜경



프레임에 매몰되지 말 것,

그 무엇도 맹신하지 말 것,

마지막 장을 읽었다면 곧 이별할 것,

그러나

언제든 곱씹을 것!



소설 복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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