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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Aug 16. 2024

막을 수 없는 흐름






*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빌리버튼)'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요!
















무슨 소리를 하고 그 집을 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말도 안되는 고백이라고 해야할지, 놀림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소리를 뒤로 하고, 데려다 주겠다는 진주의 손을 억지로 거절하고 뛰쳐 나왔다. 마지막 쯤엔 그냥 놔두라고 거의 화를 냈던 것 같다. 찬바람이 달아오른 볼에 닿을 때마다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진주의 차를 타고 순식간에 올라왔던 그 언덕이 내려갈 땐 너무나 길고 막막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겨울의 밤은 너무 고요했다. 휘잉 하는 바람 소리만 내 곁을 스쳤다.

나는 충동적으로 전화기를 꺼내 윤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 밤처럼 윤주의 목소리가 나에게 너무 필요했다. 다급한 마음처럼 걸음이 빨라졌다. 허겁지겁 그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음이 시작되자 쿵쿵거리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왜 이렇게 나쁜짓을 한 어린애 같은 기분일까?

나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윤주의 마음도, 진주의 마음도.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고 두근대기도 했다. 나에게도 드디어 아무 걱정없이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뭔가가 시작되는 것이 좋기도 했다. 그런데 왜.


뚜르르 -

뚜르르 -

뚜르르 -


애타는 내 마음 과는 다르게 윤주는 금방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빨리, 빨리, 빨리. 나는 빨리 진정하고 싶었다. 나에게 익숙한 것 속으로 들어가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이상하지? 정작 그와 만나던 그 시기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불안하고 피곤했는데.


"여보세요?"


윤주였다.

나는 하아, 하고 소리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하고 언제든 전화를 할 수 있었던 그 시절로.


"여보세요?"


"나야."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리고 후-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언덕의 절반쯤 내려와 있었다.


"......어. 무슨 일이야?"


윤주의 목소리가 묘하게 낯설었다. 무슨 일이냐니. 그건 너무 이상한 말이잖아. 당연히 그도 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편안해져야 하는 건데, 전혀 편하게 들리질 않았다.


"커피, 그 때 마시자고 한 커피 마실 수 있어? 지금."


내 목소리가 다급하게 튀어 나왔다. 그가 지금 여기에 나를 버리고 가버릴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이미 나를 한번 버렸는데도 말이다.


"......"


수화기 넘어로 난감해 하는 윤주의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나지막히 들리는 무거운 그의 숨소리가 내 귀에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그 뒤로 잔잔한 음악이 깔려 있었다.


"아니, 오늘은 안될 것 같아. 미안해. 내가 내일 전화할게."


거절하는 윤주의 목소리 뒤로 '지금 가야 돼요?'라고 조심스레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주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나는 여기 저기에, 우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헤어졌다고 했지만 진짜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럴 줄은 미처 몰랐다. 이게 헤어진 연인 사이에 있는 너무 흔한 감정이라고 해도, 너무 흔해서 우스워보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윤주와 헤어졌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다녔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났던 13년 간 우리는 진심으로 한번도 헤어진 적이 없다. 서로 다툰 적이 있기도, 서로에게 시들해져 연락을 뜸하게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서로에게 아무도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윤주의 헤어짐에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지만 진짜로는 그 말을 믿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윤주에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 대신 그의 옆에서 지금 가야하냐고 묻는 여자는 아무도 아닐지 모른다. 나는 또 혼자 난리 법석을 떨며 스스로 울적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하지만 느끼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내 특유의 감이, 나를 지금까지 살게하고 또 괴롭히던 예민한 감각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입을 가리던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서른 다섯이나 먹은 여자가 실연에 이렇게나 충격을 받는다는 게 우스워보이겠지만 윤주는 내게 첫번째 '선택'을 가져다 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본 것도, 누군가를 선택해 본것도 처음이었다. 나에겐 언제나 무언가가 주어졌고, 주로 원치 않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책없는 엄마도, 줄줄이 딸린 동생들도, 끊질긴 가난도, 그에 따른 불운들도.

하지만 소중한 줄 몰랐다. 새삼 지금와서 고백하자면 그랬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도 몰랐다. 소중한 것을 제대로 알아 보지 못하는 사람. 잃어버린 후에나 후회하는 사람.

그러나 맹세컨대 다른 사람 만큼은 했다. 다른 이들이 사랑하는 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아끼는 만큼은, 소중히 여기는 만큼은 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온전히 가지려면 죽을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제서야, 우리가 헤어진지 반년이 훌쩍 넘어서야 나는 그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됐다.








"아니 그렇잖아. 배불러서 못 먹겠다니까 뭘 더 시켜."


신경질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귓속에 찌르듯 들어왔다. 상담이 끝난 카드를 모아 정리하던 나는 눈을 들어 카운터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내 앞에 앉아 인사를 하던 상담자도, 카페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장 언니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이글이글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입술은 살짝 살짝 경련이 일어난 듯 약하게 실룩거렸다.


"1인 1메뉴 주문이어서 다른 분들도 그렇게 주문하셨거든요오."


언니가 말 끝을 늘리며 어떻게든 친절한 목소리를 꾸며내는 것 같았다. 여자의 일행들은 우린 커피 한 잔 다 못마셔, 라던가 방금 밥을 먹고 와서 들어갈대도 없어 좀 봐줘 같은 말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다음에 또 올테니까 그냥 그렇게 해줘. 나눠먹게 종이 컵 두개만 같이 줘요."


여자는 계산대 옆에 쌓여있는 테이크 아웃 컵으로 손을 뻗었다. 언니가 그 손을 탁 막으며 말했다.


"테이크 아웃 잔은 1개에 500원씩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커피 사 먹는데?"


"1인 1메뉴가 아니시잖아요. 꼭 음료가 아니어고 디저트여도 되니까 1인 1메뉴 주문 부탁 드려요."


"아니 우리 밥 먹고 왔어.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 들어."


여자는 정말 답답하다는 듯 짜증을 내더니 다시 애교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또 올게. 나 요기 근처 살어. 단골할게. 어?"


나는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카운터 뒤쪽 주방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서 카드 단말기가 돌아가는 소리, 영수증이 드르륵 하고 인쇄되는 소리가 났다. 사장 언니가 홀 쪽을 등지고 주방 쪽으로 휙 돌아서는데 입가에 있던 억지 미소가 순식간에 지워지고 미간이 확 구겨졌다.


"언니, 제가 음료 만드는 거 할게요. 잠시 앉아 계세요."


나는 언니 등을 밀며 안 쪽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의 머리 위로 뜨거운 김이 훅훅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진짜 너무 짜증나. 가게에 덕지 덕지 붙여 놨잖아. 1인 1메뉴라고. 먹을 거 파는데 와서 배부르다고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소리는 줄였지만 분통이 터지는 목소리였다. 몇 개월 카페에 있다보니 그런 손님들이 꽤 많았다. 4명이 와서 커피를 3잔만 시킨다거나, 여분의 컵을 달라고 하고 여러 잔으로 나눠 마신다거나 하는 손님들은 가게 안팎으로 붙여놓은 '1인 1메뉴 주문입니다'라는 문구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가끔은 텀블러에 커피를 싸와서 나눠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 걸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언니는 그걸 정말 못 견뎌했다.

언젠가 물어봤는데 처음에는 '1인1음료 주문'이라고 메뉴판에 작게 써놓았었는데 모두에게 음료수를 주문하라는 건 또 너무 정이 없는 것 같아서 꼭 커피를 안 마셔도 좋으니 디저트든 뭐든 이곳에 온 손님이라면 주문을 해주십사하며 '1인 1메뉴 주문'이라는 원칙을 정했다고 했다.


"나는 이게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주문을 한다는 건 내가 여길 만들고 쓸고 닦고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땐 따뜻하게 밝혀놓고 매일 문을 열어 두는 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거든. 내 공간을 이용하고 존중한다는 의미가 주문 아니야? 근데 그냥 이용하게 해달라는 건 나를 무시하는 거지 뭐야?"


그 얘길 하며 그녀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치기까지 했었다. 그게 나름 그녀에겐 분노버튼 같은 거였다. 그걸 알고나서는 그런 일들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그녀를 진정시키고 대신 음료를 만들고 서빙까지 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포커페이스로 그들에게 친절히 음료를 내어주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님들과 싸움이라도 난다면 곤란하니까. 보통은 손님들에게 친절한 그녀였지만 가끔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앞뒤 재지 않고 들이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주문을 하면서부터 내내 그녀에게 반말을 하던 초로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음료를 서빙 하던 순간까지도 '어, 고마워'라며 그녀의 화를 돋우었다. 결국 음료를 테이블에 얌전히 내려놓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근데 왜 자꾸 반말이야?'라고 해버렸다. 그 할아버지는 당황한듯 어버버거렸고 함께 왔던 동행들은 '반말 했어요?'라며 함께 당황했다. 실시간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언니의 분노버튼이 눌리는지를 잘 살피다가 눌려버리기 전에 그녀를 상황으로부터 조금 떼어 놓는 역할을 하게 됐다. 누가 시켜서라기 보다는 그녀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화는 꽤 오랜동안 모이고 눌려 응축된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 무서웠고 발파 버튼이 눌리기 전에 그녀를 그 상황으로부터 조금 멀리 두는 게 평화로운 내 일상을 지키는 일 같아 보였다. 요 근래 들어 그 분노의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걱정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음료를 만들고 빠르게 홀로 나갔다. 커피를 가져간 그 손님들의 테이블 위에는 찐고구마며 옥수수 같은 간식거리가 잔뜩 펼쳐져있었다.


"어......손님, 죄송하지만 외부음식 반입금지여서요, 가져오신 음식은 넣어두셨다가 나중에 드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커피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나는 혹시나 언니가 이 테이블의 상황을 알게될까봐, 그래서 결국 내 선에서 그녀의 분노를 막지못하고 터져버릴까봐 무서워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즐겁게 간식을 나눠 먹던 여자들은 질린다는 듯 말했다.


"아니, 여기는 뭐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아? 우리가 뭐 조금 싸 온거 앉아서 먹을데가 없어서 온 건데. 여기는 손님들한테 왜 이렇게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그래? 조용히 먹고 갈테니까 좀 둬요 좀."


"나가실 때 먹고 난 쓰레기는 가져가 주세요."


여자는 나를 흘겨보더니 금방 내가 거기에 없다는 듯 휙 돌아서 일행들끼리의 수다에 빠졌다. 이상한 손님들 사이에서 내가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한 숨을 들리지 않게 속으로 하아 내려 쉬고 돌아섰는데 카운터에서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이 쪽을 째려보고 있는 사장 언니가 보였다.







마감 청소도 다 끝낸 카페는 하루 종일 틀어 놓던 음악도, 불도 다 꺼져 고요했다. 오직 타로를 보는 내 테이블에만 전구색 핀 조명만 하나 비추고 있었다.


"누구나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 누구나,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좋아할만한 곳 말야."


언니가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아휴, 하는 한숨이 따라 왔다. 결국 그 아줌마들은 자리에 다 먹고 난 옥수수 꼬다리와 끈적한 고구마 껍데기를 수북히 올려 놓은 채 떠났다. 언니는 속으로 분을 삼키며 테이블을 박박 닦더니 영업이 끝나면 타로카드 좀 봐주겠냐며 나를 붙잡았다. 그 덕분에 나는 늦은 저녁까지 퇴근하지 못했지만 타로상담 시간이 끝난 후에는 카페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며 기다렸다. 답답해 보이는 그녀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곤란할 때 선뜻 내 손을 잡아준 사람에게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근데 지금은 그것 때문에 내가 너무 안 행복해."


나는 슬퍼졌다. 행복한 마음으로, 자기가 행복한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일이 그녀에게 이렇게 되돌아온 것이 나까지 슬프게 했다. 한편으로는 행복한 것이 있고 그것을 나누고 싶기까지 했던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나에겐 취향이라는 게 있을까?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는, 권하고 싶은 게 있나?

그날 밤, 진주의 집을 떠나 부른 배와 지친 몸을 이끌고 나의 작은 방으로 돌아 와 누웠을 때 윤주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렇게 끊어서 미안하다며, 무슨 일이 있냐며.

내가 좋아서 선택했던 것 중 거의 유일한 것이 윤주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고 긴 길, 고요한 그 밤 내가 정말 윤주를 사랑했었나를 고민했다. 내가 좋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것 중 가장 반짝이고 또 가장 건강한 것이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남자로서 내 마음을 흔들고 여자로서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유일한 빛이었기 때문에.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동경하고 또 그 옆에 서고 싶어서 사랑한다고 믿은 건 아닐까.

이제와서,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그 시작점을 의심한다는 게 어리석은 것을 알고 있다. 지금와서 그게 사랑이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미 다 끝나버렸는데. 나는 이런 미련이 엄마를 닮은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는 너무 다르다고, 우린 정말 닮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엇던 엄마의 미련을 내가 닮은 것이라면 말이 된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네가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술기운 덕인지, 밤의 기운 덕인지 나는 나답지 않게 꽤 솔직히 대답했다. 손에 전화기는 들고 있었지만 눈은 감은 채였다. 이 전화가 끝나면 바로 잠이 들 것 같았다. 피곤했고,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윤주는 할 할이 없는 건지 할 수가 없는 건지 바로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


"......"


손에 들고 있는 전화기가 무겁고 귓가가 뜨끈해져 왔다. 먼저 끊어야할지 더 기다려야 할지 고민이 됐다.


"......몸은?"


이윽고 윤주가 말했다.


"괜찮아."


조심스럽게 내쉬는 윤주의 긴 숨 소리가 들렸다.


"고마웠어."


내가 말했다. 이렇게 잠이 들듯말듯 내 의식이 흐려지고 있는 때가 아니면 그에게 솔직한 감사 인사도 잘 못할 것 같았다. 으레 그렇듯 가까울 수록 고맙다, 미안하단 소리가 잘 안나오니 잠결에라도 해야했다.


"나도 고마웠어."


윤주가 말했다.


"뭐가?"


"나한테 전화해줘서."


이제 정말 잠이 들것 같았다.


"그리고 미안했어. 내가 먼저 지쳐서 미안해. 내가 너의 또 다른 아픔이 된 거 진심으로 미안해. 그럴 마음은 아니었어."


윤주가 그 뒤에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갔지만 나는 더이상 대꾸 하지는 못했다.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 곧 깨어나게 될테지만, 난 잠결에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렷한 정신으로 그의 감사와 사과를 들었다면 나는 정말 너무 괴로웠을 것이다. 반년이 넘도록 유예했던 상실이 밀린 연체금처럼 무섭게 달려왔다. 모른 척했지만 알고 있었던, 언젠가는 겪을 거라 얼핏 짐작만 했던 그 빚이 우르르 몰려오는 그 상황을 잠으로 회피할 수 있음이 다행이었다. 일어나면 모든 것이 바뀌어 있겠지만.




The Wheel of Fortune(운명의 수례바퀴): 모든 것은 섭리대로 진행된다. 피할 수는 없으니 자신을 강화하고 단련시킬 기회로 보고 준비하면 된다. 다이나믹한 연애, 또는 손익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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