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Flowers_아네모네/스카비오사/치자열매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11월은 본격적으로 가을이 지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이고 해도 눈에 띄게 짧아진다. 계절적으로 보면 약간은 애매한 달이다. 하지만 꽃시장의 11월은 잠시 '안녕'하고 헤어졌던 겨울 꽃들이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달이다. 따뜻한 기운과 함께 사라졌던 겨울, 초 봄의 꽃들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와락 쏟아져나오기 시작하고, 플로리스트들은 반가움에 매번 시장에 갈때마다 신이난다. 오랫동안 못본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바로 작년 11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이라는 에세이에 대한 컨셉을 떠올리고 쓰기 시작했는데 일년이 지나고 다시 만난 11월은 겨우 1년이지만 지난해의 11월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
지난해 11월까지는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나는 무엇을 했나, 계획했던 것들은 다 했나', 에 대한 소회와 후회, 아쉬움 같은 매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에 젖어들었다면 올해의 11월은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나만 올해를 그냥 흐지부지 보낸 게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생각보다 연말마다 잠기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덜어진 것 같은 기분이지만 말이다. 나만 망한 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다 올해는 망했다는 걸 아니까, 오히려 그건 괜찮다는 기분이랄까? 얄궃다.
연초 야심차게 세웠던 거의 모든 계획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염병 덕에 모두 다 어그러졌다. 급히 새로운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대부분이 단기적인 것들이었고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은 세우나 마나한 게 되었다.
그 와중에 변함이 없는 건 매 계절 꽃시장에서 만나는 꽃들이었다. "오, 너 돌아왔구나"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는 그 꽃들만은 전지구적인 환란 앞에서도 변함 없이 화사하고 당당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경기침체 때문인지 꽃수요는 점점 줄어든다고 하고, 늘 어렵던 화원들이나 원예농가들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농림수산부와 aT 에프스퀘어에서는 얼마전부터 계절마다 '계절 꽃'이라는 것을 선정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교육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올해 11월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 제의를 받았다. 플로리스트들이 보는 월간지에 실린 내 작품 사진을 프로젝트 담당자가 우연히 보고 마음에 들어한 덕이었다. 그렇게 올해 세운 모든 계획들이 어그러져 혼란스러운 가운데, 단 한달전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위해 나는 11월 한달을 부지런히 꽃 생각을 하고, 시도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겨울의 계절꽃으로 선정된 것이 바로 아네모네와 스카비오사이다. 나에게 올 11월은 아네모네와 스카비오사의 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 다 매우 수줍고 섬세한 느낌의 꽃인데, 아네모네는 앙 다문 꽃봉오리를 서서히 펼치며 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천진한 꽃이고 스카비오사는 여리여리한 줄기에 여성스러운 플레어 스커트가 물결치는 듯 사랑스러운 꽃잎을 가진 꽃이다.
특히 아네모네는 그 특유의 검은 꽃술 때문에 매력적인 꽃인데, 레드, 화이트, 퍼플, 바이올렛, 블루 등 강렬한 컬커를 가지고 있고 컬러의 강렬함 대비 너무나 연약한 얼굴을 하고 있어 볼 때마다 놀랍고 설레는 꽃이다. 나에게 아네모네는 아직 멀고 먼 봄의 예고편 같은 꽃이다.
그리고 11월 한 달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또 좋아했던 그린소재를 꼽자면 치자였다. 꽃이 아니라 열매(종자)가 맺힌 상태의 나무였다. 노르스름한 열매는 시간이 지날 수록 선명한 주황색으로 바뀌는데 실수로 밟았더니 치자의 노오란 물이 묻어나왔다. 기회가 있다면 천연 염색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잎은 거의 없지만 오동통하고 아름다운 주황 열매는 쓸쓸한 겨울 어레인지먼트에 적당한 여백과 적당한 화사함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또 하나, 좋아하는 소재가 늘어났다.
몇년 후, 올해가 어떻게 기억이 될지 전혀 모르겠다. 나 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듯이 우리는 그냥 매일 살아갈 뿐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이리저리 무엇엔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매해 좋아하는 꽃이 새로 생기고, 몰랐던 꽃을 알게 되고, 알고 있었던 꽃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반가움을 느끼면서 나는 흔들리기는 하되, 쓰러지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농림부와 aT 에프스퀘어의 꽃문화 플랫폼 계절꽃 프로젝트로 선정된 '스카비오사'로 만드는 간단한 어레인지먼트 사진이다. 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꽃꽂이를 생각하다가 시험관과 시험관대(시험관랙)을 떠올렸다. 시험관대에는 시험관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여러개 있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위치에 시험관을 꽂을 수 있다. 그리고 시험관은 좁고 길기 때문에 꽃을 많이 꽂는 것보다 라인이 예쁜 꽃 한 두 송이만 꽂는 것이 훨씬 분위기 있어 보인다. 잘라서 꽂기만 하면 되니 꽃꽂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따라할 수 있다. 게다가 시험관은 꽃병과 비교하면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인터넷의 과학용구 파는 몰에서 쉽게 구할 수도 있다.
*만드는 방법은 꽃문화 플랫폼 인스타그램을 참고 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flower_culture_platform/)
겨울 계절꽃으로 선정된 또 하나의 꽃, 아네모네이다. 역시 꽃문화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었고 시험관 어레인지먼트보다는 어려울 수 있지만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디자인을 구상했다. 특히 꽃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플로랄폼(오아시스)으로 꽃꽂이를 시작하지 않을 수 있도록 노플로랄폼으로 디자인을 만들었다.
화려한 색이 많은 아네모네는 적은 양의 꽃으로도 공간을 금방 화사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빨간색 아네모네는 연말 연시 파티 플라워로도 손색이 없다. 딱 크리스마스 색이니까. 다만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시기이므로 홈파티나 나홀로 파티라도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아네모네, 치자가지, 유포르피아 세가지 종류의 꽃만 사용했다.
*만드는 방법은 꽃문화 플랫폼 인스타그램을 참고 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flower_culture_platform/)
여러 종류의 아네모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네모네의 컬러는 화이트이다. 블래과 화이트의 대비를 좋아한다. 하지만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는 아주 강렬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컬러나 여러 종류의 꽃을 섞는 것 보다 그 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심플하게 구성하는 것이 좋다. 심플한 구성을 위해 컬러를 제한하고 침봉 하나만을 사용하여 어레인지 했다. 함께 사용한 아미초가 펑펑 터지는 폭죽처럼 보이길 바라면서.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보기]
[브런치 북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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