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문제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by 문혜정 maya








친절의 문제










바로 직전까지 이 글의 주제를 '예의'로 할 것인가, '친절'로 할 것인가 결정하지 못해 고민해 빠졌었다. 그리고 거의 '예의의 문제'로 마음을 정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친절의 문제'로 수정했다.

예의와 친절.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의 단어이다.

요새 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기 위한 첫 단계로 어학사전에 나오는 단어의 뜻과 정의를 다시 한번 찾아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사전의 정의처럼 말끔하게 정리되어 머리속에 착착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옹알이를 시작할 때부터 부모님과 친구와 선생님들을 통해 실제 사용하며 사용 예시를 '느낌적인 느낌'으로 학습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도 찾아보면 내가 이해했던 것과 사뭇 다른 경우들이 있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 있고, 맞다고 생각하며 사용했던 것들이 틀린 것들도 있다. 구전으로 배우는 모국어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럼 친절하게 그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부터 써 보도록 하겠다.



[예의 禮儀]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서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
[친절 親切]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둘 다 무언가 '느낌적'으로는 나의 감정 상태보다 타인의 감정과 상태를 더욱 배려하여 행동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미지상으로는 나긋나긋하고 순종적인, '착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예의가 말 그대로 겉으로 보여지는 것, 마음을 표현하는 적당한 말투나 몸가짐과 같은 행동의 형식을 사회적, 문화적으로 정해놓고 그것을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친절은 서로 간의 표현 양식을 정해놓고 따르지는 않아도 마음의 어떤 것이 조금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는 어른을 보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이다. 아무리 마음과 눈빛으로 존경을 표현하고 지나가더라도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사를 할 때 미소를 곁들이는 것은 친절이라고 할 수 있다. 미소가 없어도 90도로 인사를 하면 예의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180도 폴더 인사를 해도 얼굴에 미소가 없다면 매우 예의 있는 사람이라 생각될 순 있지만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예의와 친절 모두 어떤 행동들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예의를 표현하는데에는 '형식'이 감정보다 중요하다면 친절은 형식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예의는 반복된 학습과 훈련으로 얼마든지 내재화하고 표현할 수 있지만 친절은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시킬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가 최종적으로 예의에서 친절의 문제가 되었다.




나는 친절한 사람인가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그들의 결론은 아마 여러갈래로 갈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들의 첫문장, 또는 그들의 태도는 100% 예측할 수 있다.

"음....글쎄..."

나의 지인들은 한번에 '예, 아니오'로 대답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길 것이다. 일단 '친절'의 정의를 한번 가볍게 떠올려 볼 것이고, 그들이 겪었던 나를 떠올리며 내가 그들에게 친절했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자신을 제외한 또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떠올리며 전체적으로 나를 친절의 카테고리에 넣을지 말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질 것이다.

일단 두번째 관문까지는 문제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표현 형식이야 어쨌든 친절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고, 부탁이 있다면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거절은 잘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친절에 후한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그들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을 것이다. '나한테는 친절한 사람이 맞는데, 옆에서 볼 때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잘 모르겠어.' 라고. 그러니 이걸 친절하다고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나의 친절은 예의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는 않다. 친절의 발동이 조금 더 까다롭다.



나의 괴로움은 내가 카페의 사장이라는데서 출발한다. 나는 동네 골목 안에서 작은 카페를 하고 있다. 손님이 들어올 때는 '어서오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음료를 내어줄 땐 '맛있게 드세요', 나갈 때는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내가 정한 우리 카페의 인사 형식(예의)이다. 얼굴에 미소를 띄기도 하지만 보통은 기본적인 정도의, 내가 화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에서 알맞는 표정과 목소리를 사용한다. 그 외의 것들은 손님의 요청에 의해 제공하고, 움직인다.

손님이 늘 북적이는 인기 카페는 아니지만 단골 손님이 아예 없지도 않다. 어제 본 손님은 내일, 혹은 모레, 적어도 일주일에 두번은 늘 본다. 하지만 얼굴이 익숙한 단골 손님에게 굳이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낸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묻지는 않는다. 손님으로서 그런 공간에 머무를 때 나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거나,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관찰하고 있다가 눈치껏 내가 필요할 것 같은 걸 가져다 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손님이었을 때 적당하다 생각된 정도의 관심과 예의를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로봇이 아니므로 당연히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손님도 있고, 지나가며 눈인사를 나누는 손님도 있다. 물론 모든 손님들과 그런 관계가 된 건 아니다. 그런 사이가 되려면 적어도 우리 사이에 얼굴을 서로 익힐만큼의 시간은 흐른 후여야 하고, 늘 습관처럼 주문하던 음료 대신 새로운 음료에 도전하기 위해 나의 의견을 묻는다던가, 엄마와 함께 유모차를 타고 오던 아기가 어느 날부터 말문이 트이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던가 하는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쌓여야한다. 나에겐 누군가에게 정해진 예의 이상의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필요한 기본 요건들이 있다.

동네의 자영업자니까 저들과 친해져야지, 먼저 친근하게 굴어서 빨리 가까워져야지!라고 생각하며 행동한 적은 한번도 없다. 물론 그래야 한다는 충고는 자주 듣는다. 예의없이 구는 손님을 만나도 나는 참고 더욱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손님들은 교육이 되지 않는다. 가르치려 하지말고 그냥 눈 딱 감고 해달라는대로 해주고 보내라.
진상으로 구는 사람들에게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서비스 하나 더 줘라.
싫은 사람에게도 웃어보여라. 언젠가는 네 진심을 알거다.
그게 동네장사다.


문제는,

나에겐 그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예의있게 행동할 수는 있었지만 마음에 없는 친절을 베풀 수는 없다. 친절을 연기로 한다는 게 나에겐 괴로운 일이었다. 어려운 게 아니라 괴로웠다. 내가 카페를 하는 것은 물론 경제활동을 위해서지만 경제활동을 '동네 카페'로 하게 된 것은 나를 위해서였다. 굳이 경제활동만을 위해서라면 다른 돈벌이 수단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내 공간을 만들고, 꾸리고, 이 곳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니 이곳에는 여기에 있는 것이 좋은 사람들, 과도한 관심과 케어가 없어도 편안한 사람들(오히려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 나의 커피와 빵과 꽃이 좋은 사람들, 가만히 왔다가 조용히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와주길 바랬다. 요약하면, 나 같은 애들을 위해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 같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다니. 대체 뭐가 먼저여야 하는 걸까?



오픈 초반에는 어떻게든 나를 누르고 예의와 친절을 함께 내 놓으려고 노력했다. 좋은 손님도 많았고,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손님도 역시나 많았다.

예를 들면,

옆 편의점에서 맥주캔을 사와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 사이에서 몰래 맥주를 홀짝이던 중년의 손님(개업 초기였는데 정말 충격을 받았다), 옆 카페의 커피는 2500원인데 여긴 왜 3000원이냐고 따지던 손님(왜 500원 더 싼 그곳으로 가지 않았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말문이 막혔다), 배가 부른데 여기는 커피를 너무 많이 주니까 둘이 나눠 먹겠다며 한 잔의 커피를 시킨 뒤 싸온 간식을 나누어 먹던 손님(음료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였나요), 내가 뜨거운 음료를 시킨 건 맞지만 한 여름인데 왜 아이스를 주지 않았냐고 화를 내던 손님(겨울에 아이스를 시키시면 제가 알아서 뜨거운 것으로 드리면 되나요), 카페 앞에 주차했다가 주차위반 딱지 나왔다고 대신 내달라고 한 손님(꽤 여럿이었는데 그 중에는 언제왔었는지, 차를 세웠는지도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다)들은 개업 초기에 만났고 나를 당황시켰던 사람들이었다.

돈을 던지듯 준다거나, 주문하자마자 왜 안나오냐고 짜증을 낸다거나, 사람 수대로 주문을 하지 않는다거나,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빨대를 뭉텅이로 가져간다거나, 신발을 신고 의자 위에 올라간다거나,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는다거나,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본다거나 하는 일은 뭐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어서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가세요'를 잊지 않고 했다. 친절까지는 아니지만 예의는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분노가 점점 턱 끝까지 차오르던 어느 날이었다.

초로의 노인 세명이 들어왔다. 그 중 한명이 계산대로 와 말했다.

"커피 세 잔."

"아메리카노 맞으세요?"

"응."

".......뜨거운 걸로 드릴까요, 차가운 걸로 드릴까요?"

"뜨거운 거."

"......"

나보다 분명히 나이가 많고, 어른이지만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고,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데 왜 이렇게 말을 하지?

기분이 너무 나빴다. 나는 우리 카페에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나이와 상관 없이 존대말을 한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어린 아기에게도 말이다. 적어도 친분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서로의 동의가 없다면 나이와는 상관 없이 존대를 하는 것이 기본값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값을 치르고 그의 주문을 만드는 동안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반말을 하더라도 존대를 섞어 쓴다. 그런 말 버릇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말 버릇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 말을 놓았다.

꾹 참고 그의 음료를 가지고 테이블로 갔다. 나는 나에게 온 '손님'에게는 당연히 대접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료가 나오면 직접 들고 가서 서빙을 한다. 그게 나에겐 손님 대접의 예의였다.

테이블에 찻쟁반을 놓으며 언제나처럼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며 돌아서는데 그의 대답이 귀에 콱 와서 박혔다.

"으응~"

그 소리를 듣는데 돌아서 가려던 발걸음이 딱 멈춰버렸다. 마음 속에 아주 간신히 남아 있던 예의의 가느다란 끈이 툭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몸을 돌려 말했다.

"우리 오늘 초면인데 반말은 좀 그렇네?"

막 찻잔을 들던 세명이 멈칫했다. 사과를 듣자고 꺼낸 얘기는 아니었고 상대방도 딱히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것 같아서 더 말을 섞지 않고 돌아왔다. 당연하겠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냥 나를 뒤로 하고 수근대는 소리만 들렸다.

"신부님 저이한테 반말하셨어요?"

"아, 예, 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참아요."

"누구 누구는 길에서 싸움이 붙었대요."

"젊은 사람들 조심해야 돼요 신부님."

놀랍게도 그는 성직자였고 더 놀랍게도 그들은 나를 불한당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손님에게 대놓고 대든 나는 카운터 뒤에서 손을 부들대며 쿵쾅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싸움을 하기 위해서,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의 없음에 예의 없음으로 맞장구를 쳐주었을 뿐인데 왜 참지않고 싸움을 거는 조심해야할 젊은이가 되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참았어야 했을까? 그냥 그러려니 했어야 했을까? 그들은 잠깐 당황했겠지만 나는 그 날 내내 화가나고 괴로웠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들었다는 것에,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똑같이 예의없이 굴었다는 것에(그래도 그들이 나갈 땐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긴 했다),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것에, 예의가 예의로 돌아오지 않는 것에.



그런 몇번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에겐 예의만이 간신히 남게되었다. 친절은 거의 사라졌다. 아직 같은 곳에서 같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은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내가 언제 행복한지, 언제 행복하지 않은지를 떠올리고 복기하면서 결국은 언제나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한 순간은 희귀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찾아 제거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고 나에게서 친절이, 그리고 뒤이어 예의가 사라지던 그때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친절이 남지 않은 예의를 간신히 붙들고 있을 때 행복하지 않았다. 동네 장사니 자영업이니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없는데 그런척 하는 것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가기로 했다. 맞는 사람들은 오고, 아니면 말기.








나는 친절한 편이다. 예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꽤 친절한 편이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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