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 9월 Flowers

9월 Flowers_메리골드/오렌지 백합/백일홍

by 문혜정 maya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9월_September Flowers

메리골드/오렌지 백합/백일홍 & Flowers















강렬한 원색 계열의 꽃을 많이 사용하는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시작되는 무렵이면 주황빛 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갈색 빛깔의 낙엽 컬러는 아직 조금 이르고, 샛빨갛고 샛노란 컬러를 쓰기에 태양은 이제 조금 기세가 꺾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기만 해도 톡톡 튀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오렌지색 컬러의 꽃들은 초가을과 무척 잘 어울리는데, 그 중에서도 메리골드는 침침한 눈이 다 환해질 만큼의 생생함을 뿜어낸다.

얼굴이 작은 미니 메리골드도 있지만 보통 흔히 만나는 메리골드는 풍성한 프릴의 꽃잎을 겹겹히 두른 폭신한 것들인데 하나의 튼실한 대에 너댓송이의 큰 오렌지색 꽃망울들이 시원시원하게 피어 있다.






메리골드는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제 계절에 잘 만나기만 한다면 가격대도 저렴하고 수명도 꽤 길다. 컬러가 선명하기 때문에 드라이를 해도 부피만 줄어들 뿐 컬러가 아주 흉측하게 변하지는 않는다(어떤 꽃들은 말랐을 때 아주 미운 색이 나기도 한다). 메리골드 꽃차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루테인이 풍부해서 말린 꽃잎을 차로 우려 먹기도 하는 메리골드는 관상용 뿐 아니라 약재나 허브로도 익숙한 꽃이다. 그만큼 향기도 매우 강해서 꽃을 다듬다 보면 그 향기에 취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리골드의 향은 꽃 자체보다 잎에서 더 강하게 난다. 그래서 메리골드의 진한 향을 느끼고 싶다면 꽃에 코를 묻는 것이 아니라 줄기에 달려있는 이파리를 떼어내 손으로 진이겨 보는 것이 좋다.

보통 절화상태의 메리골드 잎은 금새 마르거나 진물러버려서 꽃집이나 꽃시장에서 데려온 후에는 대부분 깨끗하게 떼어내주어야 하기때문에 이런 행위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이 꽃을 정리하는 가장 첫번째 사람이 가장 진한 메리골드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9월의 꽃으로 정한 것은 오렌지색 백합이다. 백합은 구근 식물이기 때문에 봄에도 만날 수 있지만 가을에 만나는 오렌지색의 백합은 딱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백합이라는 이름처럼 보통은 흰색이 많지만 환타처럼 선명한 오렌지 색의 백합은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보는 순간 빨려들어갈 듯 홀리게 된다. 하지만 정원이나 화단이 아닌 집안에서 감상한다면 꽃술을 핀셋으로 하나씩 따주는 게 좋다. 개화가 시작되면 라면스프와 비슷한 컬러의 끈적한 꽃가루가 떨어지는데 절화상태라면 굳이 수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꽃가루 알러지를 일으키거나 옷을 더럽힐 수 있는 꽃술은 제거 대상이다. 보통 절화 상태의 백합은 개화가 되기 전, 꽃봉오리 상태로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매일 지켜 보고 있다가 봉오리가 톡 터지듯 벌어지면 제거해 준다.







백합 역시 꽃향기가 진한 꽃에 속한다. 내가 어릴 때는 백합을 밀폐된 공간에 두고 잠을 자면 질식해서 죽는다는 황당한 루머같은 것들이 돌았었는데 당연히 사실무근이다. 마치 선풍기를 얼굴로 향해 켜고 잠을 자면 숨이 막혀 죽는다는 루머와도 같이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춘기 때엔 꽤 소녀스럽고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련한 운명을 가진 여주인공이 선택할 것 같은 자살 방법같아서. 마치....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처럼?

진한 백합향이 죽을만큼 좋을 순 있다. 그만큼 백합은 청순하면서도 화려하고, 홀리는 느낌이 있는 꽃이다.







색은 화려하지만 소박한 느낌을 주는 꽃도 있다. 강한 가을 햇볕 아래 씩씩하게 달려가는 시골 소녀 같은 백일홍이다. 백일동안 지지않고 간다는 뜻의 백일홍은 조금 묘한 꽃이다. 정원이나 들판에서는 백일을 갈지 모르겠으나 절화상태에서는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다. 컨디셔닝도 잘 되지 않아서 까다로운 성미를 잘못 맞추면 하루만에도 시들어버리곤 한다. 게다가 줄기는 안쪽이 텅 빈 빨대같아서 조금만 힘을 주면 톡 꺾여버린다. 어쩌다 이름이 백일홍이 되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까탈스러운 꽃도,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예쁘면 그만."

백일홍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얌전하지 못한 선명한 컬러에 잔털이 난 거칠한 줄기, 수분감이 많지 않은 작은 꽃잎은 주근깨 가득한 가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골 소녀같은 느낌이다. 숙녀같고, 새침떼기같고, 조신하면서도 팜므파탈같은 꽃들이 즐비한 화려한 꽃의 세계에서 백일홍의 이런 매력은 꽤 독특한 편이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꽤 조심스레 다뤄줘야 하는 꽃이지만 말괄량이 같은 꽃을 보고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드디어,

길고 견디기 힘들던 여름이 지나간다. 아침 저녁은 꽤 쌀쌀해졌고 백주의 태양 역시 빛은 눈부시지만 살갗에 와 닿는 따가움의 정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여름 더위와 장마에 힘겨워하던 꽃들에게도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9월의 꽃들은 8월의 꽃들보다 조금 더 힘있고, 수명도 길다. 같은 종류의 꽃을 사도 그렇다. 사시사철 모두 꽃을 즐기기 적당한 이유가 있지만 가을의 꽃은 봄과, 여름의 시련을 견디고 결실을 맺은 것들이기 때문에 집안에 들이고 즐길만 하다. 그 진한 향기도 즐길거리의 하나에 속한다.










Flower 1.


길가의 화단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메리골드로 만든 어레인지먼트.

테라코타 화분을 활용하여 마치 화분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비슷한 컬러의 헬리옵시스와 기생초, 그리고 조금 시들한 와이어 클레마티스까지 곁들여서. 이 안에서 천천히 피고, 지고, 또 말라가길 바라며 만들었다. 흙으로 만든 테라코타와 메리골드는 정말 딱 맞는 가을 궁합을 가진 것들처럼 보였다.






Flower 2.


색상환에서 완벽히 반대쪽에 위치한 두 색, 주황색과 파란색만을 활용한 어레인지먼트이다.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보색은 참 다루기 어려운 컬러 중 하나다. 누구보다 눈에 잘 띄게 만들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일 촌스러운 배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용담초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보석같은 용담초의 푸른색이 호박보석같은 백합을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라는. 다 만들고 나서 꼭 보석으로 가득찬 보석함을 열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Flower 3.


꽃은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 같은 것이 없지만, 이 꽃들은 더욱 특별했다. 우연히 씨드폴크의 가드너님과 인연을 맺어 초가을을 한껏 머금은 씨드폴크 정원의 꽃들을 활용해 즉흥적으로 만들었던 어레인지먼트였기 때문이다. 정원의 꽃들을 이것 저것 싹뚝 싹뚝 잘라 손이 가는대로 이렇게 저렇게 꽂는다는 건 참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계단 위쪽에 있는 것이 나의 것, 아래쪽에 놓인 것이 그녀의 것이다. 나는 가을의 컬러를 표현하는데 집중했고,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하나 하나 일궈낸 정원을 작은 대접 안에 축소, 요약하여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같은 정원의 꽃을 꺾어다 꽂아도 표현할 수 있는 색과 형태와 느낌은 이렇게나 다르다. 꽃이 이렇게나 흥미로운 것이다.

(정원에서 웃고 떠들며 만드는 과정은 마야플로르 인스타그램의 IGTV피드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보기]

Prologue_꽃도 흔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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