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어느 날 갑자기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꽤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자아'를 '실현'한다? 자아를 실현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아니, 자아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자아가 (무언가를) 실현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자아는 (무언가를) 실현한다는 건가?
'자아실현'은 어려운 단어지만 생각보다 자주 쓰는 말이다. 이상적인 인생이란, 그리고 그런 인생의 목표란 자아실현에 있다고 하는 것은 흔하지만 모범답안처럼 들린다. 그냥 깊은 생각 없이 찍어도 맞을 만한, 대표적인 윤리나 도덕 문제의 주관식 답안으로 어울리는 단어다. 어디 하나 껄끄러울 것 없이 매끄럽게 들어맞는 정답.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참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치있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 모든 질문에 '자아실현'이라는 네 글자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더할나위 없이 '괜찮은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해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좋다. 지금까지처럼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는 것으로 이 문제를 시작해 보자.
자아실현 self-realization, 自我實現
하나의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던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자아 실현이란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아의 본질이란 드러나있거나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깊숙한 곳에 파묻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자아는 무엇이간디?
자아 ego 自我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자아란 인간 정신의 주관자라는 뜻인것 같다. 나는 육신, 육체와 같이 물질직인 부분을 제외한, 나의 모든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다만 의아했던 것은 자아실현의 자아는 'self'로 표현된 반면 자아 그 자체에서는 'ego'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자로 보았을 때 '자아실현'과 '자아'에 사용된 자아는 같은 단어지만 self와 ego는 딱 봐도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self와 ego를 찾아보면 자기와 자아라고 별도로 번역된다. 인터넷을 조금 검색해보면 'self'와 'ego'는 스스로 인식하느냐의 문제로 분류하는 것 같다. ego는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자신, self는 인식하지는 못해도 본질적인 자신까지를 포함한다고 한다(이것 또한 어떤 학문적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제일 검색이 많이 되는 종교학적 정의를 기준으로 삼았다). 둘 다 자기자신이지만 self가 조금 더 큰 범위의 나이고 ego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발견한 내가 알고 있는 나까지를 말하는 듯 하다.
다시 돌아가서, 자아실현에서의 자아가 self라고 하니 self의 개념을 넣고 생각하자면 내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나의 어딘가에 박혀있는 나 자신을 찾아내어 완전히 이해하고 잠재적인 능력을 완벽히 실행해 내고자 하는 것이 자아실현 같다(깔끔한 네 글자의 정답 속에 이렇게 복잡하고 한마디로 알아듣기 어려운 뜻이 숨어 있다니 시작부터 조금 질리는 기분이긴하다).
그럼 다시 질문.
나는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의 구석 구석을 찾아내어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가진 모든 잠재력과 능력을 실현시키고 싶은가?
그것이 정말 인생의 궁극적 목표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있고 행복한 삶일까?
일단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의 문제.
나는 가끔은 내가 괜찮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가끔은 너무 싫고, 또 가끔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인지하고있는 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여러가지다. 단순히 괜찮다가 나빴다가 예뻤다가 미웠다가 하는 호감과 비호감의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기 보다, 내가 생각보다 여러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다가 지겨웠다가 혼란스러웠다가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내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나 자신,ego에 대해서만이다. 그런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내 속에) 내가 많고, 그것을 도장 깨기 하듯 찾아내는 것이 자아실현이라니. 세상에. 나는 이미 아는 애들만으로도 너무 힘든데. 그 애들을 적절히 불러내고 활용하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번잡스럽고 또 가끔은 고통스러운데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더 찾아내어 거두어야 한다니. 이게 정말 참되고 가치있는 삶으로 가는 길이 맞나? 아니, 내 인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 맞나......?
단지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번뇌가 가득해지는 건 또 처음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의미 있음'과 '행복'이 이퀄(equal) 관계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미를 찾는 것이 언제나 행복함을 안겨 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건 또 다른 고뇌와 고민과 좌절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자아실현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두어야 할까?
그렇다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가장 잘 하는지 모른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꽤 끔찍한 일일 것 같았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삶. 혹은 나라는 사람의 바운더리를, 한계를 모른 채, 나는 4D의 존재인데 2D의 세상에서만 살아가는 게 행복할까?
'나'의 경계를 알려면 한계치에 도전해야한다.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은 좌절에 맞닥뜨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삶의 방향은 무한대에 가깝게 쪼개져 있으므로 각각의 경계를 모두 두드려 본다는 것은 무한대에 가까운 좌절을 맛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치 로또처럼, 당첨 번호는 존재하되 내가 찍은 이 번호가 당첨번호인지는 모른 채 매주 복권을 사는 사람처럼 설렘과 실망을 당첨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
당장 다음주에 당첨될 수도 있고, 죽기 직전 될 수도 있으며 일생 한번도 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세번쯤 2등에 당첨된 뒤 일등이 될 수도, 사는 족족 일등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상한 로또 같은 것에 나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언젠가는 당첨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으로 매주 이 복권을 사야할까, 한 3등 정도는 당첨된 것 같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일등에 당첨될 때까지만 도전해보기로 해야할까?
자아실현과 행복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내가 더 행복할지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솔직히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계를 알아야만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고통을 수반할 수 있는)노력과 인내를 통해 그 한계지점을 넓힐 수 있는데 일단 이 모든 것은 확률게임이다. (고통이 수반된) 노력과 인내의 정도 또한 확실하지 않다. 일단 시도해 봐야 알 수 있고, 일단 해 봐야 맞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판단의 결과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죽을 때 까지는.
물론 약속되지는 않았으나 결과의 달콤함은 과정에서 겪은 모든 종류의 괴로움을 다 한번에 타파해버릴 수 있을만큼 크다. 마치 도박이나 복권당첨에 대한 설명 같기도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것을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데 있어 그 누구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거나 쓸데없다고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응원과 지지, 존경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가능성이 크다고 표현한 것은 아닌 경우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괴로움과 외로움은 나의 몫. 그 과정과 결과도 나의 몫. 그러니 이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여 하는가, 아닌가.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소설 데미안 중에서)
나는 나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부분은 사유를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으나 이 주제는 답을 얻지 못하고 질문으로만 남게 될 유일한 주제가 될 것 같다.
나의 세상을 넓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