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Essay_ 죄책감 없는 풍족함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10월은 아직 무언가 자라는 달이면서, 그와 동시에 수확을 하는 달이다. 결실을 맺기 전과 결실을 수확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그런 달. 듣기만 해도 환상적이다.
꽃을 키우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주말농장은 지긋지긋한 여름을 지나며 완전히 끝장이 났다. 한창이던 무더위와 끝이 없을 것 같던 장맛비, 씩씩하고 억센 여름 모기는 나와 농장사이에 보이지 않는 결계라도 되는 것처럼 굳건했다. 나는 에어컨이 없는 바깥 세상과는 거의 3개월간이나 이별을 했고 여름의 결계가 걷힌 주말농장에는 내가 심은 작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말라 죽거나, 태풍에 쓸려 죽었다.
그래도 나는 10월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을 찾았고 늘 손에 무언가를 쥐고 돌아왔다. 엄마는 어제는 뭘 했냐는 질문에 ‘주말농장엘 갔어'라고 대답할 때마다 ‘꽃도 하나도 없던데 뭐하러 갔냐'며 의아해 했다.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내 차의 뒷자리에는 늘 큰 플라스틱 리빙 박스 하나가 실려 있는데 주말농장에 가면 그 박스는 물통이 된다. 너무 많이 담으면 과속방지턱을 넘다가 물 벼락을 맞을 수 있으니 찰랑찰랑 얕게 받아 뒷자리에 실어 놓고, 나는 꽃가위 하나를 챙겨 텃밭 근처 개울로 나간다. 여리 여리 연두색이던 강아지풀에 연한 갈색빛이 돌아 탄탄해 보이고, 줄기가 엉키고 설킨 계란 꽃과, 누군가 몰래 심어놓고 버려둔 돼지 감자도 내 키보다 크게 자라 탐스러운 샛노랑 꽃이 피어있다.
나는 이 중 아무것도 내 손으로 키우지 않았지만 죄책감없이 그들을 내것으로 거두기로 결심한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이 혹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채 그렇게 피었다가 소리 없이 져버릴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화사한 모습이었으므로 죄책감은 더더욱 옅어졌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값어치를 홀로 알아본 값으로 나는 잡초들을 잔뜩 선물 받았다. 실제로 준 이는 없지만 일단 나는 받았다. 그에 대한 값은 주말농장에 방치된 똥개들에게 오며 가며 개껌을 두개씩 상납한 것으로 치면 된다고 혼자 생각했다.
아직 목줄을 달지 않은 철없는 검은 강아지 하나가 찰캉찰캉 가위질을 하는 내 주변을 꼬리치며 맴돈다. 봄의 한없이 가볍고 산뜻한 기분과는 다르지만, 발이 바닥을 딛고 있는 안정감이 가득하다. 밖으로 나가면 나에게 무언가 주어진다. 나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은 찌는 여름 내내 일을 해서 나에게 안겨 준다.
그래서 10월에는 노력없이 주어진 모든 것을 누려야 한다.
여름에는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어 보았으니 가을에는 감정을 누리는데 부지런해져 봐야 한다. 부지런한 개미가 쟁여 놓은 겨울 식량을 함께 나눠먹는 베짱이처럼 부지런히 만들어진 햇살을 그냥 죄책감 없이 누려야 한다.
무언가 이래도 되나?싶은 죄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고개를 들어 이렇게 높았나 싶은 하늘을 보고, 고개를 돌려 붉고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한 가로수를 보면 된다. 아무런 고민과 걱정없이 눈 앞에 펼쳐진 선명한 색과 말끔한 공기와 활기찬 볕을 느끼고 즐기고, 기억하려 노력해야한다. 이건 게으름을 부리거나 가을이나 타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감정 저축이다. 긍정적인 감정도 가능할 때 많이 모아 두어야 필요할 때 기억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꺼내어 쓸 수 있다.
곧 있으면 뜨끈한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누워 귤이나 까 먹는 게 유일한 낙이 되는 겨울이 온다. 우리는 또 마음 속 기분과는 상관 없이 날씨에 의해 우중충해지는 몇 개월을 살 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부지런히 걸으며 광합성을 하고, 바닥에 짓이겨진 은행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도 보고, 읽지 않을 책을 사러 서점에 들러야 한다. 그게 바로 10월에 부지런히 느껴야할 감정의 풍족함이다.
날이 적당해지면 마음도 적당해진다. 연말 연초의 허둥지둥 끝내고 시작하는 것에 오락가락하던 모습과,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붕 떠 있던 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여름을 지나 드디어 적당한 마음으로 평온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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