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나는 자유를 아주 좋아한다. 자유로움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너무 달콤한 단어이다. 자유.
누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자유는 너무 달콤하고도 강력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받으면 종종 방향을 알 수 없게 튀기도 한다. 내가 자유의 반발력을 처음 느꼈던 건 어릴적 엄마와의 대화에서였다.
"너 아직도 자니? 공부해야지. 다음주에 시험이라며"
주말 늦은 아침,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벌컥 열며 침대에 누워서 빈둥거리는 나에게 엄마가 지나가는 소리로 이야기 한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수학문제나 좀 풀어볼까 했던 나는 갑자기 욱하는 뭔가가 내 횡경막을 트램폴린처럼 통!차고 튕겨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인상을 팍 찌뿌리고 소리친다.
"안해!"
그리고 이런 경험은 세대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가지고 있다. 시험공부는 '설거지', '금연', '다이어트', '저축', '동생 돌보기' 같은 것으로 치환되지만 그 핵심에 위치하는 반발심과 요상한 방향으로 튀는 반항은 모두 비슷하게 느껴봤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하려던 에너지가 누군가의 손길에 닿아 반대방향으로 튀어나가는 것 말이다. 속으로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하려고 했는데!'
순수하고 강력한 에너지는 당연히 그 주인만이 다룰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이 가진 자유는 너무나 순수하고 강력해서 누군가의 터치나 간섭이 닿으면 그 즉시 변이를 일으킨다. 대체로 화나 분노로 승화되어 표출된다.
그래서 나는 학창시절에는 화가 많은 편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없는 나의 자유에 손 대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나에 대해 무엇하나 정확히 아는 것도 없는 자들이 나와는 상관 없는 규율과 규제 속에 나를 억눌러 담으려 했다. 단전 밑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티 나지 않는 쪽으로 뿜어내며 버텼는데(사춘기 시절의 주요 피해자는 엄마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앞으로는 아무도 나에게 '머리를 묶어라', '바지 길이를 이 정도로 입어라', '신발은 흰운동화만 신어라'같은 바보같은 지시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을 때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른이 이렇게 좋은데, 대체 왜?
머리를 풀어헤친다고 공부를 안할 거라 생각하다니. 아니면 머리를 단정히 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할 거라 생각하다니. 도대체 어른의 머리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으며 지능은 정상인건지가 늘 의문이었다. 머리를 풀지 못하게 하면 그냥 질끈 동여매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할 거라고 믿다니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고생들은 어떤 식으로 질끈 동여매야 가장 예쁜 머리가 될 것인지 연구하는데 그 남는 시간을 썼다. 그냥 풀어헤친 것보다 그 쪽이 더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에 쉬는 시간 교실 뒤 거울 앞에는 각종 빗과 휴대용 고데기를 든 아이들이 넘쳐났고 좀 더 적극적인 아이들은 방학 때 밝은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개학에 맞춰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한다고 더 바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자유를 훼손하는 어른들의 병신같은 시도에 대해 아주 냉소적으로 비웃었다. 아하하. 바보같은 어른들. 자유는 그렇게 막아지는 것이 아닌데.
고등학교 시절 내가 머리를 꾸미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공부를 하는데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당장 누릴 수 있는 두발의 자유보다 근미래에 좋은 대학에서 누리는 자유가 나에겐 더 큰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엄한 선생님들이 머리를 잡아 당기고 벌점을 주는 것이 무서웠기 떄문이 아니라 내 욕망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 에너지의 방향을 수정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모든 에너지는 보존된다. 그래서 우주가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자유의 에너지는 막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쪽의(주로 부정적인) 에너지로 재구성될 뿐이다.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자유로움을 막는 모든 시도와 사람을 극렬하게 싫어했다. 나는 알아서 잘 할 수 있는데 왜 내가 그럴 수 있는 아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내것이었던 것을 압류한단 말인가?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나의 자유로운 의지와 선택를 위탁해야 하는 불합리한 시기를 지난 후로는 협의 되지 않은 자유의 억압에서 최대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나 스스로 '자유'라는 것의 정의와 기준을 분명히 세워야했다. 비슷한 듯 보여도 자유와 방종은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나 상태를 말하지만 자유에는 기준이 있고, 방종에는 기준이 없다. 가장 광범위하고도 기본적인 기준은 '법'이다. 문명화된 인간 사회에서의 자유는 인간이 만들고 합의한 법제도 아래에서 보장을 받는다. 살인, 절도, 사기와 같은 범법행위는 자유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외에도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거나 제한하는 행동 역시 자유로 보장받지 못한다. 세상에 완벽히 홀로 떨어져 살지 않는 개인의 자유는 또 다른 개인의 자유와 늘 상충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준이 필요하다.
그럼 법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거나 법의 영역에까지 미치치 못하는 사소하고 자그마한 자유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최소한의, 보수적인 자유의 보장범위를 넘어선 생활적이고 일상적인 자유말이다. 개인간의 밀접한 관계에서 서로 추구하는 자유의 교집합이 충돌한다면?
나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좋아한다. 살면서 닥치는 인간 관계 문제의 70%이상은 ''역지사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측은지심'까지 얹으면 문제 해결능력은 85% 정도까지 올라간다(물론 실험실에서 증명된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닥친 문제와 어려움을 나의 것으로 치환해 생각해 보면 이해든, 용서든, 혹은 도움이든 주고받기가 수월해진다. 상대방을 '나'라고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연민의 마음도 커진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가장 너그럽고 안쓰러움을 느끼는 법이다. 감정의 개입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보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 영역에도 역지사지를 대입하기로 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이 나에게 행해도 좋을 정도가 기준이 되었다. 내가 타인을 대할 때도 그가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기준이 된다. 쌍욕을 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 그가 나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참는다. 욕을 퍼붓고 싶은 나의 자유가 조금 훼손 되었지만 역지사지와 측은지심이 해결해 주었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갑작스럽게 쌍욕을 했다면? 내가 타인을 대할 때 그가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을 가한 것이 되므로 나의 역지사지 활동은 잠시 멈춘다. 내가 받고싶지 않은 것을 그가 행했다는 것은 나의 자유와 배려가 침범 받은 것이기 때문에 참지 않는다(그게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사람은 참으면 된다. 그건 그의 기준이니까). 반대로 내가 무리하게 차선변경을 하다가 뒷차를 보지 못해 사고가 날뻔했다. 그래서 뒷차가 나를 따라오며 경적을 울리고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한다면? 내가 뒷차의 입장이라도 화가났을테니 참고 사과를 해야한다. 뒷차의 입장에 닥쳐도 언제나 온화하게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화를 내도 된다.
이 기준은 매우 심플하지만 꽤 분명하고 만족도가 높았다. 응용의 범위도 넓고 활용하는 것도 용이했다. 언제나 '나'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생각보다 공평해질 수 있었고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내가 받고자하는 대로 타인을 대접하고, 내가 받고싶지 않은 대접은 하지 않는다. 얼마나 공평한가? 타인의 삶에 쓸데없는 참견도, 오지랖도 부릴 필요가 없다. 나도 그건 원치 않으니까.
하지만 이 완전무결한 것처럼 보이는 법칙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 사람의 상황에 나를 치환하여 대입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그때의 분노는 역지사지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배가 되었던 것 같다. 한때는 무척 가깝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 법칙에 의해 완전히 끊어진 인간관계도 있다. 그 시간이 길 수록, 함께한 즐거움이 클수록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지만 내 결정의 가장 근원에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하나, '나의 행복'이었다.
산다는 건 항상 자신만의 기준을 찾고 그 안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유롭게 사는 내가 행복했고, 그 행복의 균형을 깨뜨리는 관계와 사람이 불편했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균형을 되찾기 위해 선택을 내려야 했다. 괴로움을 감수하고 그 관계를 안고 가며 새로운 행복의 균형을 찾느냐, 아니면 관계를 덜어내는 고통을 감수하고 내가 맞춰놓은 행복의 균형을 유지하느냐.
보통의 경우 나는 전자를 시도하다가 되지 않으면 후자로 결론을 맺곤했다. 마음의 흐름은 내 마음이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빠르게 무 자르듯 금방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하지 않은 부분, 나를 옮아매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거나 시간을 두더라도 아예 잘라냈다.
이 글을 읽으며 그런 관계들을 정리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지금 후회가 남는지?'를 가장 궁금해 할 것 같다. 결론으로 향했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질문에 대한 결론만 말하자면 '아니요.'다. 당연히 과정의 중간에는 어렵고, 아프고,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되지 않을까하는 고뇌를 몇번이나 반복했지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던 먼지가 다 가라앉고 난 뒤, 어지럽던 흙탕물이 가라앉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은 기준으로 행동하고 결정할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할 뿐이다. 역지사지와, 측은지심까지 동원한 이해의 폭으로도 담지 못한 모든 것은 흘러보내도 좋다. 시간이든, 추억이든, 기회든,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무엇이든. 그걸 담지 못하는 작은 내 그릇이 비난받을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나의 모든 것을 비우고 버려도 나 자신만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면 다시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다시 시작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든 내가 '나'일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도록 할 것,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내 자유가 소중한 만큼 상대의 자유도 존중할 것, 그러나 내가 소중히 여긴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끊어버릴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그건 잘못이 아니다. 선택일 뿐. 그에 따르는 결과만 책임지면 된다. 나를 가장 중요하게 두고 내린 결정은 절대 잘못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려도 그것이 가장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