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놀기의 즐거움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by 문혜정 maya









혼자 놀기의 즐거움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되고도 20여년이 흐른 지금, 더이상 집돌이와 집순이는 독특한 종이 아니게 되었다. 놀이터가 집 밖에 있던 어린시절과는 다르게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궁무진하게 새로운 놀이를 발견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누군가와의 '친목'의 관계가 주는 감정적 보상보다 그것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 소모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굳이 나를 상처내면서까지 누군가와 놀고싶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 참 이상하지.

다들 친구 다 필요 없어, 졸업하면 끝이야. 직장동료와 친할 필요 없어, 직장은 일하는 곳이야. 애인에 목맬 필요 없어, 헤어지면 끝이야. 라며 타인과의 관계유지에 크게 마음 쓸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선팔했어요, 맞팔해주세요'라는 SNS댓글을 주고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이직을 희망하며 소개팅 앱은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프로필로 가득하다.



왜?
왜 다들 누군가를 안다는 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게 피곤하다면서도
그 굴레 안에서 괴로워 하는 거지?


알고 지낸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 기간 대비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던 친구와 우연히 어딘가를 함께 갔다가 한 차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던 날이었다. 한적한 밤. 꽤 긴 귀가길이어서였는지 이런 저런 감상적, 감성적인 이야기가 오가다가 소울 메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 나는 그게 참 피곤해. "

" 뭐가? "

" 이 사람이 나와 비슷하다,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빠져들고, 또 엄청 가까워졌는데, 아닐 때. '아, 얘도 아니구나'싶으면 슬프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게 피곤하고 그래. 내 소울 메이트는 어디에 있는 거냐고. "

" 왜 소울 메이트가 필요한데? "

" 몰라. 마음을 터놓고 지낼 소울 메이트가 있었으면 하지 않나?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맞다고 하지 왜 소울메이트가 필요하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데 넌 참 이상하다. "

나는 인생의 소울메이트를 기대하는 그녀가 더 이상했는데 그녀는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하는 내가 더 이상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집순이로 오랫동안 지내온 나로서는 '완벽한 소울메이트'라는 것은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허구, 또는 이상향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릴 적엔 친한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우리는 평생 친구. 제일 친한 1번 친구'라고 속닥거리며 비밀같지도 않은 비밀을 나누고 나보다 더 친한 친구가 생긴 것 같을 땐 속상해하며 누가 네 베프냐고 확인하기도 하면서 내 옆에 누군가를 붙들어 매 본원적 감정의 결핍을 해결하려 하기도 했지만 그 감정의 유래가 외부가 아닌 내부적이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부터는 제일 친한 친구찾기, 또는 제일 친한 친구 순위를 매기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

외로움은 밖에서 안으로 나를 공격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생겨나 밖으로 퍼지는 감정이다. 그러니 밖에서, 타인의 손에서, 타인의 감정으로 해결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도, 형제도, 배우자나 연인도, 동료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 한명의 인간이 하나의 영혼을 둘로 나누어 갖는 것은 불가능할테니 소울메이트 역시 허상에 가까운 개념이다. 나누어 갖는 게 아니라 같은 영혼을 가진 것이라고 가정해도 이상하다. 왜 내가 둘이야? 내 영혼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인데.

그런 생각을 하자, 외로움의 문제가 꽤 가벼워졌다. 좀 더 정확히는 무거웠기 때문에 가벼워졌다. 어떻게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니 아예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건 그냥 나라는 존재의 일부였다. 해결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진하게 그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혼자여서 외로운 게 아니라 내 안의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운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친구와는 만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의 소울 메이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더이상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화를 나눴던 그 밤 이후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그 후로도 몇년 간 꽤 가까이 지냈지만 하루 아침에 유대관계는 끊어졌고, 후유증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과 즐거웠던 추억들은 오래된 앨범 속의 사진들처럼 그렇게 남아있다. 그것을 떠올리는 게 그다지 괴롭지 않다. 그냥 그 순간들이 즐거웠고, 그만큼 즐겼으니 됐다고 느낀다.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들에 묶여서 앞으로 즐겁지 않을 누군가에게 집착하고 싶지 않다. '우리 그땐 즐거웠잖아' '우리 이렇게 끝내버리기엔 지난 추억들이 아깝잖아' 라는 미련이 얼마나 큰 인생의 낭비란 말인가.



소울메이트를 찾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새드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내 소울의 메이트는 나다. 또 다른 영혼이 아니라. 그 영혼의 주체이자 주인인 내가 그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떤 영혼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달래줄 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도,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은 문제가 아니다. 내 영혼과 대화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일뿐. 나는 내 영혼의 첫번째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것이다. 다른 누구의 외로움을 가장 먼저 알아보거나 달래주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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