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기의 즐거움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by 문혜정 maya











꿈꾸기의 즐거움











흔히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보다 흔하다.

꿈은 생각보다 인생을 쓸데없고 부지런히 살아야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변치않는 꿈을 가지고 있다던가, 어느 날 우연히 인생일대의 꿈이 생겼다는 사람은 로또 당첨자만큼이나 행운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거나, 있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며 마음에 묻어둔다.

있긴 하지만 묻어두는 건 나의 행복론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용기'를 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여기서는 논외의 문제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직 자신의 꿈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도 모르겠는 사람들. 이 글이 그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 자신이 잊지 않기를 바라며 쓴다.



아주 어릴적, 누군가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엄마가 대답을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였을 때, 나는 꿈이 다섯개에서 열개정도를 왔다갔다 했다.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단골로 등장했던 꿈은 주로 학교 선생님, 무용가, 화가, 치과 의사,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변호사, 엄마(어디서 배웠는지 현모양처라는 고전적인 단어를 쓰기도 했다)였다. 조금 더 커서는 패션 디자이너나 소설가, 피케스케이팅 선수 같은 것들이 추가되기도 했다.

대부분 '직업', 또는 '직종'의 하나였고 주로 내가 그 당시 배우던 취미들, 다니던 학원들, 읽는 책, 만나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내가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세상의 경계가 내 '꿈'의 경계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아이 같지만 그때는 새롭게 접하는 모든 것이 내 미래의 꿈이 되곤 했다. 무게감이라곤 하나도 없이 깃털처럼 가벼웠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바뀌던 꿈들이었다.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어볼 때마다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대답하다보면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들어가거나 어제까지 있었던 것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꿈들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명사'였다는 것이다.

명사.

명사형의 꿈은 아주 깔끔한 형태로 정리가 가능하다. 누군가 질문을 했을 때, 혹은 정리를 시켰을 때 동사라도 명사형으로 답하면 말끔하고 깔끔하게 대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있다.



예를 들어 볼까?


샘플 1.


'넌 꿈이 뭐니?'
- 저는 공무원이요.
'아 그래. 공시 준비는 하고 있고?'
- 네, 학원 다니다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인강만 듣지만 내년 응시를 목표로 준비중이에요.
'요즘 공시 경쟁률이 세다던데, 직렬 같은 건 생각해 봤어?'
- 네. 안그래도 경쟁률 분석해서 대충 생각해 놓은 건 있어요.



샘플 2.


'넌 꿈이 뭐니?'
- 저는 빈부격차나 사회 계층에 따라 소외되는 사람 없이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제가 그 일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수입은 안정적이고요. 수입이나 노후가 안정적이어야 타인을 도울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해야할 것 같아서 지금은 학교 휴학하고 인강들으면서 여러분야를 공부하고 있어요. 영어부터 국사까지.
'무슨 소리야. 취업준비 해야지. 할 거 없으면 공무원 준비나 해.'



다들 눈치챘겠지만 샘플 1과 2의 '꿈'은 모두 '공무원'이라는 직업이다. 다만 샘플 1에서는 직업명을 그대로 썼고, 샘플 2에서는 직업명 자체보다 그들이 하는 일이나 그 일을 통해 직업인으로서 얻게 될 보람이나 이익에 대해 풀어서 써 봤다. 명사가 아닌 동사나 형용사로 꿈을 설명하면 훨씬 다양한 관점을 적용하여 샘플 3, 4, 5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샘플 2의 꿈은 '공무원'을 생각하며 풀어썼지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또 다른 직업이 될 수도 있다. 꿈의 수단을 공무원으로 결과 맺느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꿈을 갖는 사람은 없다. 일단 꿈을 가질 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다. 그게 '정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한 꿈, 혹은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꿈을 갖고 싶어하거나 가지려고 한다.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일단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게 좋아보이기도 하고, 그래야 인생이 명확해질 것 같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그럴싸해 보일 것 같기도 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 생각에는, 결국 귀차니즘이 가장 큰 이유다. 간단하게는 자신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그 꿈을 설명하는 것의 귀찮음인데, 그것이 귀찮은 이유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이미 존재하는 명사 이외의 말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그건, 결론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귀찮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면 머리속에서 스스로 정리가 되고 정립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꿈이 있다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하고, 어떤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방향'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어떤 경우에는 괴롭기까지 하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모를 때, 내가 꿈꾸는 내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 사이의 괴리가 클 때 그 괴로움도 함께 커진다. 생각해야할 거리가 많아질 수록 처리하거나 해결해야할 일이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괴로움은 아주 쉽게 '귀찮음'이라는 감정과 달라붙어 퉁쳐진다.

귀찮다. 괴로움의 과정을 인내하고, 체화하고 그 안에서 어떤 결과나 방향을 도출해 내는 것이. 이게 내가 생각한, 꿈이 명사형에서 쉽게 발전하지 않는 이유다.



'꿈'이라는 건 단 하나의 글자로 되어 있지만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은 그것을 설정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명사는 결과물을 나타낸다. 명사가 되려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무엇이어야 하고, 그 가장 쉬운 형태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쉽게 '명사로 된 직업'의 형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인생이 끝나기 훨씬 전에 꿈을 이뤄버리면 삶은 재미가 없어진다. 직업은 나의 전성기와 함께 해야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직업이 꿈이 되어버리면, 그리고 그 꿈을 이뤄버리고나면 우리는 살아야하는 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이상 이룰 것이 없어진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고 난 후의 삶은 이어갈 이유를 잃게 된다.

나는 꿈이라는 글자 안에 많은 것을 담아둘 수록 인생은 다채롭고 흥미롭게 된다고 믿는다. 꿈이라는 건 이상향 같은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일생을 두고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 큰 방향 안에서는 변화와 변경이 자유로울 수 있다. 방향만 맞다면 그 안의 작은 계획들은 언제고 수정하고 덧붙여져도 '틀린 것'이 아니게 된다. 조금 비겁해 보일 수는 있지만 노력을 하다 하다 그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없지는 않게 된다. 나는 꿈의 방향으로 다가가고 있었으니까.



명사의 꿈을 집어던지고 나서 나는 더욱 자유로워졌다. 몇번이고 새로 고치고 원하는 것을 넣고 빼고 할 수 있게 되니 꿈 꾸는 것이, 그 복잡하고 단순하지 않은 과정들이 다 재미있어졌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꿈이 되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고민과, 지금 당장 결과를 알 수 없는 시도들이 다 내 꿈의 일부분이다.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볼때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어떤 꿈을 말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꿈은 과정이기 때문에 단계별로, 카테고리별로 세분화하여 나누어졌고, 당장 닿을 수 없는 것이어서 훨씬 더 '꿈'에 가까워졌다. 그것을 살아서 다 이룰 수 있겠느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언제까지 살고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나는 살아생전 모든 것을 이루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만의 꽃을, 내 스타일의 꽃을 하는 플로리스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꽃을 찾고 싶은 플로리스트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 것이고,
언젠가는 내가 만든 정원에서, 내가 키운 꽃으로 나만의 꽃 세계를 넓히고 발전 시킬 것이다.
죽을 때까지 꽃에 대한 글을 쓰고, 내가 만든 꽃의 사진을 찍는 작가가 되어 꽃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꽃을 보고, 나의 정원을 보고, 나의 글과 사진을 보게 될 것이고 나라는 플로리스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감사함을, 그것을 지키기 위한 고민을,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꿈은,

내가 행복한 것들을 배우고, 실행 하고, 그것을 나누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위의 과정들은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그리고 만나기를 희망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다.

마지막까지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그런 꿈을 고민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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