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조별과제'라는 것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라떼의 공부란 개인적인 것, 외우는 것, 혼자서 터득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대학시절엔 몇몇 과목에서 조별 과제를 요청 받았지만 주로 친한 친구들과 같은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고, 자료를 준비하는 사람, 레포트를 쓰는 사람, 발표하는 사람의 역할은 각자의 취향 껏 나눠가질 수 있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낯을 무척 가리는 나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너는 무엇을 하고, 나는 무엇을 하고, 네가 제대로 못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고, 나는 무슨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거나 서로에게 부담지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내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어렵고 낯을 가리는 이유는 이런 불편한 상황들 때문이었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 역할을 정한다는 것, 그 범위를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경우 어떤 식으로 제재를 가해야한다는 걸 정하는 건 나에게 '불편'한 일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한 일.
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인가?
내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더 많은 책임을 지더라도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
아니면 책임질만큼의 역할은 얻고싶지 않은 걸까?
나는 어떨땐 꽤나 리더처럼 굴지만 어떨땐 세상 최고의 아웃사이더 같기도 했다. 내 안에는 엑셀과 브레이크가 둘 다 있지만 내가 언제 엑셀을 누르고 언제 브레이크를 밟는지 스스로 파악이 안되었기 때문에 적절한 운행에 애를 먹었다.
대체 언제 낯을 가리고, 언제 가리지 않는 거지?
그때는 그걸 '낯을 가린다'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주로 관계에 있어서 이런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나의 이런 이중적인면이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중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엑셀과 브레이크는 고장이 났거나, 불규칙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주체적인 인간과 능동적인 인간을 동시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두 가지 성질은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몰랐다. 사람은 주체적이지만 능동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능동적이지만 주체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둘은 다른 의미였다. 그 두 단어를 영어 사전으로 확인해 보고나서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주체적= independent
능동적=active
나는 주체적이지만 그다지 능동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역할을 가지고 충분히 책임을 다할 마음과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쟁취하듯 낚아채는 타입은 아니었다. 묵묵히 제 일을 다하는 것은 괜찮지만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여기 나 좀 봐주세요! 이런 것을 하고 싶어요! 이런 것을 하고 있어요!라고 드러내는 것에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도 불편해 했다.
휴학을 하고 어떤 보험 회사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그 부서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에게 일을 시킬 수 있었고 나는 주로 누군가 내게 일을 시켜줄 때까지 대기를 하고 있다가 일이 떨어지면 그 일을 처리했다. 정기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내 몫의 일도 있었지만 겨우 문서 정리, 파일 정리, 결산 정리 같은 것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널널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있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너무 바빠서 나에게 시간을 들여서 가르쳐야 하는 일은 인수인계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내 사수의 역할은 그 팀의 막내인 신입사원이었다. 신입이었지만 그도 꽤 바빴다. 해외영업팀이었기 때문에 출근 후 대부분의 시간에 전화통을 붙잡고 영어로 국제전화를 불나게 하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달의 결산도 끝나고, 무슨 대리가 시킨 영문 서류 타이핑도 끝나고, 사무실 뒤켠에 산같이 쌓여있는 계약서 파일 라벨링도 끝나고, 나는 더이상 할일이 없어서 가지고 온 일본어 교재를 보고 있었다. 옆 부서를 돌고 오던 해외영업팀장님은 그 팀 제일 끝자리 책상에 앉아 연습문제를 풀고 있던 나를 보더니 "아, 일본어 공부해요? 오늘 할일은 끝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네. 다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내 등 뒤에 있던 신입사원이 안절부절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아르바이트님 일 좀 주세요. 다들 바쁜데 심심하게 계시네."
팀장은 우스갯소리인지 질책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흘리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뒤 내 담당 신입사원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잠깐 나와보라고 했다. 그를 따라 나갔더니 화를 꾹 누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일을 시키는 것만 해요? 알아서 찾아서 해야죠. 나도 내 할일은 찾아서 하고 있어요. 언제까지 시키는 일만 할 거에요?"
나는 말문이 딱 막혀버렸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기분이 이런건가 싶었다. 내 평생 내가 내 역할을 게을리한다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곳에서 내가 그렇게나 혐오하던 맹충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일을 시키는 것만 하나? 알아서 찾아 해야하지. 아무리 알바라도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눈치껏 필요한 일은 해야 하는 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긴 억대의 보험 계약이 오가는 해외영업팀이었고 뭐 하나라도 잘못 손댔다가 작은 실수라도 나면 큰 사고가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들 예민했고 나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키지 않아도 매일 출근길에 문서수발실을 들러 각종 신문과 우편물을 가지고 올라와 바쁜 직원들의 책상에 수신된 우편물과 서류들을 올려놓아 주었고, 몇년간 방치되듯 쌓여있는 수백개의 계약서에 라벨을 새로 만들고 인쇄해 붙였다. 아무도 내게 라벨 폼을 주지 않았다. 그냥, 새로 라벨을 붙여야 해요, 라고만 했을 뿐.
다들 너무 바빠서 일을 가르쳐 줄 여유조차 없어 보이길래 내가 배운 업무는 그날 그날 정리해서 화면까지 캡쳐하며 업무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었다. 내가 그만두고 난 뒤 들어오는 사람은 따로 일을 붙잡고 가르치치 않아도 그 자료를 보고 할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뻘쭘함을 참고 '뭐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라고 한명 한명에게 물어보러 다녔고 없다길래 더 뻘쭘하게 자리로 돌아와 앉아 내 공부를 했다. 나는 어디에서 더 내가 할 일을 찾았어야 했을까? 눈치껏 팀장 앞에서는 바쁘게 일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정도 눈치가 없었던 게 문제였을까?
억울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그에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아주 은근하게 자기 팀장에게 (나 때문에) 혼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매우 열이 받아 보였다. 23살짜리 대학 휴학생인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 때문에. 나를 질책하며 한 이야기는 아마도 그가 초신입시절 사수에게서 자주 듣던 얘기였을 것이다.
나는 휴학 기간 내내가 아니라, 어학연수를 떠나기전 시간이 좀 떴던 4~5개월 간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마지막 날 송별회 같은 것을 하면서 술을 진탕 마신 그 신입사원이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미워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냐?"
내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항상 그때 그 아르바이트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까지 했던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많은 아르바이트비를 받았고 가장 번듯한 사무실에서 가장 편하게 일했던 곳이지만 가장 즐겁지 않았던 알바였고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었던 알바였다. 그리고 더 답답한 건 여전히 내가 그곳에서 어떤 일을 알아서 찾아서 했어야 했을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에게 '렛미인 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을.
왠지 원래 있는 것 같은 그럴싸한 이름이지만 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렛미인 증후군'이란, 누군가 나에게 그 조직과 그룹에서의 역할을 정해주어야만 동기화가 되는 나의 특수성을 말한다. 2008년에 나온 스웨덴 영화 'Let me in'에서 따다 붙였다. 늘 혼자 노는 외로운 소년과 옆집으로 이사온 뱀파이어 소녀가 주인공이다. 뱀파이어는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올 수가 없다. 그걸 무시하고 들어갈 경우 온 몸에서 피를 내 뿜는다. 그녀를 온전히 집으로 들이는 방법은 정식으로 '초대'하는 것 뿐이다. 소년은 처음 소녀를 집으로 들일 때 별 생각없이(초대 없이) 그녀를 끌어들였고, 소녀(뱀파이어)는 피를 철철 흘린다. 그리고 깜짝 놀란 소년이 정식으로 너를 초대한다고 이야기 하자 소녀의 피가 멈춘다.
그 때 그 아르바이트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나는 정식으로 초대 받지 않은 곳에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무엇이며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곳은 굳이 찾아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보이고 앞으로 좋아질 것처럼 보여도 피한다. 그리고 내 역할이 불분명한 자리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게 될 경우 '내가 여기서 어떤 것을 했으면 하는지 말해주세요.'라고 언급을 한다. 좀 더 분명히 하고 싶을 땐 "내 역할을 정해 주세요."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정식으로 초대를 해 달라고(Let me in) 하는 것이다. 언제나 이 방법이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책임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무기력해졌던 그 때와 비교해 보면 나름의 해결방법을 찾는 것 같다. 그렇게 능동성이 부족한 나의 문제는 주체적인 결론을 맺었다.
그때 그 신입사원은 지금 그때의 팀장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별 문제없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시키지 않아도 제 할일 과 제 할 몫을 찾아서 해 냈다면 말이다. 그는 아마 그때의 나를, 그리고 나에게 했던 그 바보같은 조언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한다면 그때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질테니 말이다.
하지만 기억한다면, 그리고 만의 하나 아주 실낱같고 기가막힌 우연으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부디 지금은 깨달았길.
나는 네가 나를 미워해서 그랬는지 아닌지 몰라. 사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무 관심없었어. 어떤 사람은 그런식으로 활성화(activation) 되지 않아. 지금은 그걸 아는 팀장이 되어 사람들을 부리고 있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