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문제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론

by 문혜정 maya








취향의 문제







어떤 사람은 취향이 매우 세부적이고 체계적인반면 어떤 사람은 취향이랄 것도 없을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취향이 없는 사람들이 이른바 '선택장애'라는 출신이 불분명한 단어를 자기비하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나는 선택장애가 있어서 바로 못 골라."

카페의 카운터에 서서 손님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으면 멋쩍게 웃으며 이미 자신의 음료를 고르고 뒤로 물러난 친구를 돌아보며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함참을 뚫어져라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고, 음...음....하는 괴로운 신음소리도 내고, 한 없이 주문을 기다리는 나에게 사과도 한다. "제가 선택 장애가 좀 있어서요."라는 말을 곁들여서. 자신의 장애를 고백하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시나 멋쩍게 웃으며 '에에"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하며 대기하는 것 뿐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추천 메뉴가 있나요?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라며 선택의 문제를 나에게 돌리기도 한다. 그 덕에 머뭇거리며 고민에 빠지는 건 이번에는 내가 된다. 하지만 오해 말길. 나는 취향이 꽤 분명한 사람 중 하나에 속하니까. 내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을 타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 혹은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문의하는 것.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타타타 가사 중에서)


내가 무척 어릴 때 나온 노래지만 나는 그 어릴때부터 이 한 구절이 잊혀지지 않았다. 선택 장애인들 앞에서 적절한 사회화가 끝난 카페 주인인 내가 차마 뱉어내지 못한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알아요?"이다. 당신이 내 취향을 모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내가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지않겠어요?

사실 글로 쓰여진 이 가사를 보기 전까지는 '네'가 아니라 '내'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내가 내 인생 하나를 제대로 알고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내가 너까지 어떻게 알겠니?라고 반문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들어도 말은 된다. 그리고 내게는 이 쪽이 더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작은 사물에서부터 음식과 문화, 상황과 환경까지. 취향을 적용할 수 있는 꺼리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리고 취향은 대부분의 경우 선택을 불러온다. 그러니 선택의 문제를 나에게 미루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남에게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위탁하다니, 나에겐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이다. 일단 그게 가능한가?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의 카페에는 꽤 많은 메뉴들이 있다. 누군가는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하며 메뉴를 늘릴 것이 아니라 그 카페만의 시그니처 메뉴 몇가지를 선보여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내가 만약 작은 동네의 골목카페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를, 어떤 사람은 녹차라떼를, 또 어떤 사람은 화이트 초콜렛모카(사실 이건 메뉴에 없다)를 찾는 이 곳에서 "아니요. 여긴 과일청 음료 전문점입니다. 커피는 옆 카페로 가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카페 사장이 몇이나 될까? 그들이 나의 카페로 오는 이유는 여기가 과일청 음료 전문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동네에 있는 가장 가까운 카페이기 때문이다. 과일청음료 전문점, 로스팅 커피 전문점, 티 음료 전문점이 모두 한 블록에 있고, 그 중 내 취향에 맞춰 골라 들어갈 수 있는 시내 한 가운데였다면 나도 선택과 집중을 메뉴에 적용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취향에 맞는 메뉴를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이 중 당신 취향의 음료가 하나는 있겠지'라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었다. 자, 여기에 얼마든 다양한 것들이 있으니 무엇이든 당신이 좋아하는 걸 고르세요!

그런데 코메디처럼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못고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취향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추천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위한 추천메뉴는 당연히 고를 수 있다. 미지근한 아메리카노.

하지만 나는 끝내 그 메뉴를 말하지 못한다. 그건 내 취향의 추천메뉴니까. 무엇이 제일 맛있냐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아메리카노가 가장 맛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답은 그게 아닐 거라는 걸 안다. 아하하, 하고 또 한번 어색하게 웃으며 기다린다.

남편은 내게 '그러니까 네가 장사를 못하는 거야.'라고 했다. 추천메뉴를 꼭 그 사람의 취향을 따져가며 들이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 제일 많이 팔고 싶은 것, 밀고 싶은 메뉴를 말하면 된다고 했다. 아니면 재고가 많이 남아서 빨리 떨어버리고 싶은 것으로 하던가.

그래. 장사꾼의 마인드로는 그럴 수 있다. 모르는 게 아니야. 장사꾼의 마인드를 앞서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취향의 문제는 나에게 너무나 중요해서 장사꾼의 마인드로 덮어버릴 수가 없다. 덮이질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추천했고, 운 좋게 그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만의 하나 전혀 아니었다면? 추천한다고해서, 맛있다고 해서 먹어 봤는데 너무나 취향에 맞질 않았다면 나는 그의 행복을 저해하는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누군가의 행복도 아니고 행복을 망가뜨리는데 (아무리 작은 부분이나마) 일조를 해야하지?

나는 그런 위험부담은 전혀 지고 싶지않다. 겨우 차 한잔을 팔면서 그런 위험을 함께 팔기엔 내가 너무 부담스럽다. 아니, 그것 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않다. 차한잔의 가격이 그 불행보다 가치가 크지 않다.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본다. 무언가를 고르려고 메뉴판을 살피는 친구를 뒤로 밀어내며 "나 여기 단골이야. 여긴 이게 제일 맛있어. 그냥 이거 먹어."라고 해버리는 사람들이다. 이곳의 모든 메뉴를 만들고 먹어본 나조차도 무엇이 '제일' 맛있다고 말할 수 없는데, 몇번의 방문으로 단골의 타이틀을 스스로 부여한 사람들이 자신이 늘 먹던 음료를 친구에게 강권한다. 그렇게 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연히(그리고 운좋게) 한번에 자신에게 딱맞는 메뉴를 찾아내고, 그 후로는 그것만 파던 사람들이다. 사실 딱 맞는 메뉴를 찾아낸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다른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내게는 그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대단한 무례이자 결례아닌가?

누군가의 취향을 자신의 것으로 밀어붙이는 행위, 그보다 더 나쁜 건 그들의 자신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도 주지 않는 독단적인 태도. 나라면 절대로 못할 이야기이다. 나는 그저 속으로 놀라며 둘 사이의 공기가 불편해지지는 않았는지 살피며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떨군다.




취향의 유무, 취향의 강약이 행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 모든 것에 취향이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 또한 꽤 피곤한 삶일 것이다. 취향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있어도 된다. 하지만 크든 작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는 게 맞지 않나? 질문에 대한 선택은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맞지 않나?

조언을 구하는 것과 취향을 발견하는 것은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선택을 위해 조언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당연히 있다. 하지만 사소한 취향 문제에 대한 선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결정하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찰과 관심 없이 고유의 취향을 발견할 수는 없다. 나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행복할 수는 없다. 분명한 취향이 곧 행복은 아니지만 나의 취향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요소들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걸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게 나는 아쉽고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이다.

반대로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거나 상대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좋았으니, 너도 그럴거야라는 지레짐작이 얼마나 위험한건데.

배우자에게나, 꽃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나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네가 하고싶은대로 해.", "하고싶은 대로 마음껏 하세요."

나는 정말로 그들이 자기가 하고싶은 게 뭔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것을 응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서 그렇게 이야기한다. 부디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도 말고, 누군가를 위해서도 말고,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하기를 바라며.

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생략된 문장이 하나 더 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나는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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