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독후감, 꽃후감_ 마담 보바리

사랑의 고통, 갈망의 고통

by 문혜정 maya





꽃으로 쓰는 독후감, 꽃후감은 책을 읽고 떠오른 심상, 느낌, 주제, 캐릭터 등을 꽃으로 표현합니다. 글로 쓰는 독후감은 브런치에, 영상으로 쓰는 꽃후감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됩니다.




꽃후감 다섯번째 작품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입니다.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오래되고 또 그만큼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라 정말 여러 출판사의 여러 버전의 마담 보바리가 있죠.

그리고 올해 '북레시피'에서 또 한 가지 버전이 추가 되었습니다. 하도 유명한 작품이고 여러 출판사의 버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약간의 차별화 전략(?)으로 이브 생로랑의 마담보바리 필사본과 삽화를 함께 싣은 버전으로 나왔습니다. 이브 생로랑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라는 것 정도만 알 뿐 그의 생애나 디자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패션을 사랑한 어린 남학생이 사춘기 시절 읽은 마담보바리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매혹적이어서 필사도 하고 삽화도 그렸는지 궁금해서 이 버전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누군가는 마담 보바리를 사랑에 모든 것을 쏟은 열정적인 여인으로, 누군가는 허영으로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파국에 이르게 한 어리석은 여자의 상징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은 보바리 부인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름만 들어봤던 마담 보바리.

프랑스 작가의 소설은 생각보다 잘 손이 안가는데 낯설고 어려운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것이 첫번째 이유라면, 현대, 현대의 내가 과거 프랑스 혁명이후의 프랑스인들(현대가 아닌 과거)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소설 속 인물에 몰입하기 너무 어려웠던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그래 뭐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정도라면 내 안에 있는 조상님의 영혼을 불러내어 조금 헤아려 보겠다만 유럽까지는 좀 버거웠달까.

하지만 나는 언제나 예쁜 것에 끌린다. 소위 예쁜 쓰레기들을 많이 모으던 시절도 있었다. 마음껏 수집을 하면서도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던 수집품이라면 '예쁜 책'이 대표적이다. 점차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확고해지면서 이제 학창시절만큼 다양한 것들을 사모으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브 생로랑의 삽화가 포함되었다는 이 어여쁜 책은 꼭 한권 책장에 꽂아두고 싶었다. 책을 사기 위한 가장 좋은 핑계는 '책을 읽는 것'이므로, 나는 표지의 아름다움에 끌려 마담 보바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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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이 이야기는 마담 보바리가 아닌 무슈 보바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샤를 보바리는 딱히 머리가 좋지도, 의학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엄마의 뒷바라지 하에 학위 없이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의사가 된다. 어려서는 엄마의, 커서는 엄마가 짝지워준 아내의 그늘 아래,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유 없이 몰개성하게 자라난 그는 어느 날 다른 지역의 농부 루오씨의 다리 골절을 치료하러 왕진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루오씨의 딸 엠마를 만나고 그녀를 남몰래 좋아하게 되지만, 그에겐 전남편과 사별하고 재산을 좀 상속 받았다며 엄마가 적극적으로 결혼시킨 병약하고 히스테릭한 아내 엘로이즈가 있다. 그녀를 사랑하진 않지만 남편으로서의 의무는 잘 지켜오던 샤를은 어느날 갑작스럽게 엘로이즈가 사망하자 엠마와 재혼을 한다.

난생 처음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자신이 원하는 결혼을 하게 된 샤를은 엠마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보이지만 엠마는 결혼 직후 자신이 원했던 삶이 이렇게 안정적이고 어찌보면 지루하기까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 속에서 보던 첫눈에 반하는 사랑, 온갖 방해와 핍박끝에 쟁취하는 사랑을 느끼기에 샤를과의 삶에는 아무런 자극이 없다.

우연히 초대를 받아 가게된 남작의 파티에서 자신이 꿈꿔오던 화려한 삶을 맛본 엠마는 더이상 평범하고 변화없는 삶을 견딜 수 없어 병에 걸리고 아내가 걸린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던 샤를은 살고있던 지역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그녀를 달래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은 본래 있던 토트라는 지역과 비슷하게 특별할 것 없는 시골 지역으로 엠마는 다시 자신의 삶에, 그리고 야망도 야심도 없이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샤를에게 환멸을 느끼며 젊은 청년 서기 레옹과 나름의 플라토닉한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 레옹은 엠마를 사랑하면서도 숫기가 없어 주위를 맴돌기만 하고 임신 중이던 엠마 역시 적극적으로 불륜을 저지르지는 않고 그저 그 애타는 감정에 빠져 레옹과의 관계를 즐긴다. 그러던 중 레옹이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나고 실의에 빠진 엠마에게 저돌적으로 다가온 로돌프는 엠마의 성향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연애 소설 속 주인공처럼 운명적이고도 비련의 사랑을 연기하며 엠마와 불륜 관계가 된다. 그러나 더이상 현실에 견딜 수 없어진 엠마가 자신과 자신의 딸을 데리고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자 도망쳐버린다. 이제서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엠마는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이를 알지 못하는 샤를은 아내의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엠마가 사달라고 하는 것은 모두 사주고, 엠마가 하자고 하는 것은 모두 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부채는 조금씩 그들을 잠식해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를 위해 특별히 데리고 간 연극 공연장에서 파리로 떠난 레옹을 마주치고, 엠마는 이번에야 말로 진실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며 레옹과 다시 불륜 관계에 빠진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엠마와 레옹의 관계를 알게되고 레옹은 점차 자신에게 집착하는 엠마가 부담스러워져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엠마 역시 레옹과의 관계가 안정적이 될 수록 레옹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식어가지만 연애를 하는(불륜이지만) 자신의 모습,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자신의 모습에 빠져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결국 레옹은 떠나가고, 두번의 불륜과 실연 속에서 사치스러운 소비로 자신을 달래던 엠마의 부채는 보바리가의 파산이라는 결과로 드러난다. 엠마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로돌프와 레옹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만 운명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들은 엠마가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지자 모르는 척 외면한다.

더이상 구제할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린 엠마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 하고,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남은 샤를은 엠마의 환영 속에서 그녀를 그리워 하다가 그녀가 연인들과 주고 받은 연애 편지를 보고 괴로워하다 숨진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생겼어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녀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였던
지극한 행복, 열정, 도취 같은 말들이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려 애썼다.

마담 보바리, 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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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마담 보바리의 철없는 연애사이면서 무슈 보바리의 호구담이고, 진실한 사랑만을 원하는 여자의 마음을 이리 저리 속이고 가지고 놀았던 로돌프의 사기행각이자, 사랑밖에 모르는 순수한 청년이었던 레옹이 그저 그런 남자 어른이 되는 성장기이다.

그 중간 중간 더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이 네명만으로도 나는 숨이 막힌다. 처음 엠마와 샤를의 연애는 꽤 흥미롭고도 응원할만한 것이었다. 샤를은 유부남이긴 했지만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히스테릭한 아내에게 시달리고 있었고 엠마는 순진하고 귀여운 시골처녀로서 샤를을 행복하게 만들어줄만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샤를의 첫번째 부인인 엘로이즈가 급사했을 때 '이제 샤를과 엠마가 행복할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샤를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엠마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본인은 샤를과 결혼하면 성실하고 정숙하며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엠마는 이내 깨닫는다.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의 정숙한 아내가 아니라 기숙학교 시절 읽었던 소설 속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것이라는 걸.

그녀는 아무것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똑같은 집, 똑같은 음식, 똑같은 사람, 그리고 답답한 남편까지도.





“세상에, 내가 왜 결혼을 했지?”
다른 우연의 조합으로 다른 남자를 만날 수는 없었을까 자문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일들, 다른 삶,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남편은 어땠을까 상상해보려 애썼다.
누구든 정말 저 남자와는 달랐다.
그 사람은 잘생기고, 재기발랄하고, 기품있고, 사람의 마음을 끄는 남자,
아마도 예전 수도원 친구들이 결혼했을 법한 그런 남자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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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너만 있으면 돼!' '너는 내 운명이야!' '나는 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라고 말하는 백마 탄 왕자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샤를은 그저 세상 물정도 모르고 바보 같고 야심조차 없는 둔탱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샤를은 오히려 그녀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원했던 그런 남성에 가장 가까웠다. 엠마가 답답해 한다는 이유로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역을 떠나 연고 없는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그녀를 위해 사치를 부린다는 며느리를 못마땅해하는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대들었고, 그녀가 사고 싶다고 하는 옷과 물건들을 어음을 쓰고 유산을 미리 당겨쓰면서까지 모두 사주었고, 그녀가 불륜을 저지르기 위한 시간과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에 피아노레슨을 받으러 가고 싶다고 할 때도 무리를 해서 6개월치의 레슨비를 마련해주었다.

게다가 단 한번도, 그녀가 죽고나서 실제로 그녀의 불륜 증거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엠마의 불륜을 의심하거나 추궁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녀를 보며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진료가 끝나면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의 아내라는 것에 너무나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했다.

그런대로 엠마는 '이런 게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첫눈에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 짜릿한 무엇인가라고 믿었다. 샤를의 지극한 사랑은 지겹고 짜증스러운 것이라고 치부했다. 혐오스럽다고 하기까지 했다.




엠마를 보자면, 그녀는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 것인지 스스로 묻지도 않았다.
사랑이란 느닷없이, 번쩍 터지는 광채와 더불어 벼락처럼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삶 위로 떨어져 내리는 하늘의 폭풍우,
그리고 삶을 뒤엎어버리고 사람의 의지를 나뭇잎처럼 휩쓸어가버리며
온 마음을 심연으로 몰아가는 폭풍우 같은 것.
그녀는 주택의 테라스에서 빗물받이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렇게 안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벽에 생긴 균열을 발견했다.

마담 보바리, 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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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엠마의 불륜을 숨죽여 지켜보면서, 그녀가 그 나쁜 남자들에게 빠지고 또 속는 그 과정을 바라보며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린가에 대해 생각했다.

엠마가 만난 남자들이 그리 질 좋은 남자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이 결국 엠마에게 질려버린대는 엠마의 연애 스타일도 한 몫했다.

로돌프는 전형적인 나쁜남자였고, 엠마를 통제했다. 엠마는 그를 더 갖고싶어했고 그의 사랑을 더 확인하고 싶어했다.

레옹은 어릴적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첫사랑 같은 남자였다. 어릴 적 순수한 감정을 나눈 남자는 이제 그 시절의 남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관계도 그때와 같아질 수 없었고, 이번에는 엠마가 그를 통제하려고 했다. 역시나 엠마는 로돌프 때의 실패를 떠올리며 그를 완벽히 더 소유하고 싶어했고, 그녀가 사랑에 빠져있다는 감정을 늘 확인하고자 했다.

나는 엠마의 연애들이 너무 짜증났는데, 왜 이렇게나 짜증스러울까 떠올려보니 그녀의 어린 시절 내가 했던 연애들과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풋풋하게 시작한 연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건, '이 남자도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런데 왜 더 자주 전화를 하지 않지? 왜 벌써 전화를 끊으려고 하지? 왜 더 자주 데이트를 하지 않는 거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 사랑하는 거 맞아? 나랑 밤새 통화하자. 어디 가면 나한테 어디라고 늘 말해줘. 친구들과 술먹지 말고 나랑 데이트해야지 왜 우리의 시간에 더 집중하지 않는거야?'라고 그를 달달 볶았다. 처음에는 그도 '미안. 내가 더 신경쓸게. 당연히 사랑하지. 오늘 좀 피곤하지만 밤새도록 얘기할까? 친구들 안 만날 게.'라고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나면 둘 사이에는 늘 답도 없는 싸움이 매일같이 계속되고 좋아서 만나는 건지,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만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결국 '내가 널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라던가, '널 더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만나' 같은 얘길 하면서 헤어지자고 하게 되는 것이다.





“꼭 게린 같으시네요.
…(중략)…
게린은 너무나도 슬프고 슬퍼서, 걔가 자기 집 문간에 서 있는 걸 보면
문 앞에 관 덮는 천이라도 널려 있는 것 같았다니까요.
걔 병은 머릿속에 안개 같은 게 끼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의사들도 신부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렀어요.
그게 심해지면 혼자 바닷가에 나갔는데,
세관 관리가 순찰을 돌다가 걔가 자갈밭에 엎드려서 울고 있는 걸 여러번 봤대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 그게 싹 없어졌다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시작됐어.”
엠마가 말했다.

마담 보바리,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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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혼자서, “나는 연인이 있다! 연인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이 생각을, 그리고 자신에게 또 한 번의 사춘기가 찾아왔다는 생각을 만끽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마침내 저 사랑의 기쁨을 자신이 단념했던
뜨거운 행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마담 보바리, 247p





몇 백년전 마담 보바리의 사랑은 21세기를 사는 스물살짜리들의 첫번째 연애와 다를바가 없다. 서로 사랑을 갈구하다가 서로의 사랑을, 그리고 서로를 갉아먹다가 나가떨어지게 되는 어설프고 어린 사랑.

엠마는 스스로를 갉아먹다 못해 남편인 샤를까지도 갉아먹었고 결국엔 그들 사이의 하나 밖에 없는 딸 베르트를 돈 한푼 없는 고아로 만들었다. 엠마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누구의 삶까지 파멸시켰을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어떤 짓을 하든 그녀가 원하는 무언가는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로돌프와의 사랑의 도피가 성공했더라도 그녀는 결국 로돌프와의 삶에서 지리멸렬함을 느꼈을 것이고, 레옹과 결혼했더라도 그가 샤를보다 나은 남편이 되었을리 만무하다. 엠마에 대한 샤를의 사랑은 그녀의 정부들이 그녀에게 가졌던 사랑이나 그녀 자신이 정부들에게 가졌던 사랑보다도 높고 넓고, 평탄했기 때문이다.





“울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이제 곧 내가 당신을 더는 괴롭히지 않을 거에요.”
“왜?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여보.”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어?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네……, 맞아요……, 당신은 좋은 사랑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그는 슬픔이 더 북받쳤다.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 더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순간에 그녀를 잃게 된다는 생각을 하자
자신의 존재 전체가 절망으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마담 보바리, 4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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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흔들림에서 시작한다.

흔들리고 깨지고 찔리다가 결국 멈춘다. 애정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이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어야 '사랑의 시작기'가 지났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이지만 사랑의 과정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시작기'를 지난 '유지기'에 들어서야 사랑이 진정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유지기에 들어간 사랑은 진행을 멈춘 듯 보이지만 쓸데없는 움직임을 멈춘 채 뜨겁게 달궈지는데 그 에너지를 사용한다. 운동에너지에서 열에너지로 바귀는 것이다.

엠마는 사랑을 운동에너지로만 이해했다. 한 자리에 웅크린채 서로의 온기로 데워나가는 열에너지의 사랑을 지루하다, 시시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절당한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이다. 계속해서 흔들리고 깨지고 서로를 찌르다가 식어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몇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그것을 배운다. 혹자는 20대처럼 그렇게 격정적인 사랑을 나이먹으면 못한다며 아쉽다고 하지만 그건 그저 육체적으로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랑의 변화 과정에 대해 이해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랑의 단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도 철없을 그때처럼 사랑을 하면 다치는 이유가 그것이다.







레옹과 둘이서 종종 파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는 이야기 끝에 꼭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아, 우리가 거기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행복하지 않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 맞아.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키스해줘.”

마담 보바리, 3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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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슴(Bovarysme)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자신의 환영(幻影)을 좇아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실제와는 다른, 분수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는 정신 작용. 프랑스의 철학자 고티에가 소설 <보바리 부인>의 여주인공의 성격에서 따서 지은 말이다(표준 국어 대사전 인용)'.

인간의 성숙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 혹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엠마의 잘못은 진정으로 어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리고 레옹도 갑자기 다른 이들과 똑같이 아득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해!’ 그녀가 속으로 말했다.
그러면 뭐하는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삶은 대체 왜 충만하게 채워질 수 없는 것일까?
삶이 무엇엔가 기대는 순간 그것은 왜 바로 썩어버리는 것일까?

마담 보봐리, 3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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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페이지 옮긴이의 말에 작가인 플로베르가 '사람은 고통에 의해서만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며 모든 고통은 갈망이기 때문' 이라고 했다. 이미 엠마를 만나 자신의 모든 갈망을 채운 샤를은 삶에 아무런 고통이 없이 행복한 인간이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갈망하기 때문에 파멸의 고통을 겪는 엠마가 위대한 엠마로 다시 이해되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한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예술가의 눈에서 보면 엠마는 위대하고 안주하는 샤를은 평면적이고도 재미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술의 세계에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하고 싶지만 내가 살고 싶은 것은 샤를의 세계이다. 신뢰하고, 만족하고, 충족한 세계.

행복한 샤를을 자신이 살고 있던 평온한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엠마가 몸부림치고 울부짖던 미성숙한 세계로 집어던진 플로베르가 꽤 변태처럼 느껴진다.

갈망은 고통으로 변질되지 쉽지만 갈망이 곧 고통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갈망은 희망이 될 수도 있다. 희망 역시 고통이 될 수 있으나 그렇게치면 세상의 모든 밝은 감정은 다 고통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싶지 않다.

나는 성숙하고싶다. 나는 만족하고 싶고, 안정적이 되고 싶다. 뭉근한 온도로 끓고싶고 뭉근한 에너지로 무언가를 만들고 내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폭발이 아니라.

갈망을 단숨에 채워야 한다는 욕심이 곧 고통이다.






다음 날 샤를은 정자의 벤치에 가서 앉았다.
격자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포도나무 잎들이 모래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재스민 향기가 맴돌고,
하늘은 푸르고, 활짝 핀 백합 주위로 가뢰들이 붕붕거리며 날고,
샤를은 서글픈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희미한 사랑의 향기에
사춘기 소년처럼 숨이 막혔다.
일곱 시가 되어, 오후 내내그를 보지 못했던 베르트가
저녁 식사 시간이라고 부르러 왔다.
그는 머리를 뒤로 젖혀 벽에 기대고서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긴 검은 머리카락 한 타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아빠, 얼른 오세요!” 아이가 말했다.
그러고는 아빠가 장난을 치려나 보다 하고 살며시 밀어보았다.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죽어 있었다.

마담 보바리, 4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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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조금 웃긴 여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내가 뭘 막 사고싶어질 때마다 남편에게 '내 안의 엠마가 깨어나려고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엠마를 사랑한 샤를만큼이나 나를 사랑하는 남편은 '내가 사줄까?'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엠마가 된 것 같아서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그리고 마담 보바리는 작가가 실제로 의사였던 드라마르라는 사람의 아내인 델핀느의 자살사건을 취재하여 완성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영상으로 보는 마담 보바리 꽃후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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