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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un 03. 2019

추로스와 초콜라떼

이방인을 위한 일요일 아침의 위로

따뜻한 된장국과 밥 한술로 개운하고 속 편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대신, 달고 진한 초콜라떼에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추로스를 찍어먹는 날. 오늘은 일요일이다. 스페인의 전통 초콜라떼는 파우더가 아니라 고체 초콜릿을 녹여서 만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핫초콜렛보다 훨씬 더 진하고 달다. 찐득하니 점성이 높아 마시기보다 죽처럼 떠먹어야 한다. 전통 추로스는 밀가루와 물, 베이킹파우더, 올리브오일로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버터, 계란까지 넣어 만드는데 내 입에는 심플한 전통 추로스가 훨씬 맛있다. 하지만 달고 느끼한 음식을 잘 못 먹는 나는 추로스 2조각(1/2인분)과 초콜라떼 작은 잔을 시키는데, 초콜라떼는 추로스 2개를 다 찍어 먹고 나도 늘 반이 남는다. 아깝지만 그냥 먹기에는 너무 달아서 내 한계는 딱 거기까지다. 초콜라떼와 추로스. 스페인 사람들의 전통 아침식사라는데,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아침으로 먹나, 보기만 해도 속이 느끼하고 혀가 단맛으로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즐기는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의 여유’라고 썼지만, ‘일요일 아침의 위로‘로 읽는다. 내가 혼자 마드리드에 한 달이란 짧지 않은 기간 머물기 때문에 생겨난 독특한 감정, 혼자 맞이하는 주말 아침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라 하겠다. 한달살이의 특징은 현지인들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되는 일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오전에는 스페인어학원을 가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쉰다. 그리고 주중에 2번 정도는 학원이 끝난 후 정란이 회사근처에서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수요일 저녁에는 정란이가 초대한 한국인독서클럽에 간다. 또 하루 정도는 로사를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그러다 보면 금요일까지 시간이 후딱 간다. 그런데 주말이 되면, 난 오롯이 이방인이다. 로사는 남편과 양가가족, 정란이는 남자친구 하이메와 주말을 보내고, 세르지오는 보통 여자친구 올리비아집에서 자고 들어온다. 해본 사람은 안다. 주말에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어색하고 생뚱맞은 일인지. 레스토랑도, 카페도, 연인이나 친구,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가득해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게 눈치 보인다. 평일에는 전혀 이상하지 않던 일들이 갑자기 나를 밀쳐내는 기분. 주중에는 혼자라도 좋은데 주말에는 혼자인 것이 싫다. 아일랜드에서는 늘 주말을 존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주말이면 그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일요일 아침, 나는 평일과 다름없이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선다. 마드리드 시내가 아니라 오래된 아파트와 공원이 있는 주거지역 어디쯤에서 발견한 초콜라떼리아. 한적한 가로수길, 동네놀이터, 언덕진 주차장, 집과 가게들을 지나 그곳에 다다르면, 어느새 살짝 젖은 이마를 선선한 아침바람이 식혀주고, 나는 테라스 나무그늘 아래서 달고 뜨거운 초콜라떼에 바삭한 추로스를 찍어 먹는다. 한국도 아일랜드도 아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나의 실존이 좀더 선명해지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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