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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un 28. 2019

마드리드 리오(Madrid Rio)의 추억

만사나레스강 곁의 새로운 휴식처

마드리드에서 내가 한 달 동안 살았던 집은 ‘마드리드 리오’ 근처에 있었다. ‘마드리드 리오(Madrid Rio)’는 ‘마드리드강‘이라고 해석되지만 서울의 ‘한강‘처럼 강의 이름이 아니라 ‘마드리드 리오 공원’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실제로 중앙을 흐르는 강의 이름은 만사나레스(Manzanares).  게다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강’의 유량을 생각했다가는 보자마자 “에게, 이게 강이야?” 하고 코웃음을 칠 게 뻔하다. 비가 적은 시기에는 말라서 바닥을 보이는 날도 많다는데, 내가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에는 제법 힘 있는 물줄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매력 넘치는 마드리드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바다나 넓은 강이 없다는 것인데, 이런 내륙도시의 답답함 때문에 휴양지로서는 경쟁도시인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다른 스페인 도시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약 10년 전 마드리드의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재탄생한 마드리드 리오는 해가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만큼 진행 과정에서는 국가예산의 씀씀이에 대해 옳다, 틀리다, 말이 많았다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프로젝트라는 평가와 함께 마드리드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강줄기를 따라 조깅과 사이클링을 할 수 있는 트랙과 산책로, 피크닉을 하거나 누워서 쉴 수 있는 잔디밭이 장장 1,20,881 평방미터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어쩐지 한강시민공원과 비슷한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매일 마드리드 리오를 지나다니면서도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마드리드 리오처럼 ‘운동하기 좋은‘ 공원보다 나무와 벤치가 많고 정적인 분위기의 공원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스페인어학원 선생님 크리스티나 말이, 마드리드 리오가 조성되기 전 강 주변은 지저분하고 편의시설도 없는, 거의 버려진 동네였다는 거다. “지금 마드리드 리오를 보면 그때 모습은 상상하기도 힘들어. 지금은 오히려 살기 좋은 동네로 손꼽히는 걸.” 그러니, 마드리드 리오가 지역경제 살리기에 엄청난 몫을 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아침 마드리드 리오를 지나서 학원에 갔다.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행렬을 피해 가로수 그늘이 있는 강 옆 난간을 따라 걷다가, 둥근 원통처럼 생긴 은빛터널 밑을 지나 강을 건너면, 19세기초 필립5세 때 세워진 똘레도문(Puerto de Toledo)이 나왔다. 그 문을 지나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이제 곧게 뻗은 길만 따라가면 되었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본 것 같은 은빛터널 옆에는, 대조적으로 자그마치 1564년에 지어진 세고비아다리가 서 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데, 내 눈에는 미래형 디자인의 은빛터널보다 투박한 돌덩이를 섬세하게 깎아 올린 석조다리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주말이 되면 마드리드 리오는 훨씬 더 다채로운 활기를 띠곤 했다.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과 뛰어 노는 아이들, 바닷가 대신 잔디 위에 웃통 벗고 누워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약속 없이 집에 있던 어느 토요일 저녁, 문득 가족들과 나누던 소소한 두런거림이 그리워 마드리드 리오를 걸었다. 그리고 햇살이 낮고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을 때 공원에 있는 테라스 바에서 차가운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마드리드를 떠나고 나면 큰 의미 없이 지나다니는 그 공원도 그리워질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 순간 마시고 있는 맥주의 맛과 목 넘김의 느낌까지 생각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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