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p Remedy

따뜻한 스프 한그릇의 힐링

by Maya Lee

당신이 아일랜드에 온다면 '아일랜드에는 하루에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말을 곧 믿게 될 것이다. 내 가방 안에도 늘 선글라스와 우산, 걸칠 옷가지와 머플러가 함께 들어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늘이 흐리고 비가 오든 해가 눈부시게 짱짱하든, 그것이 그날의 날씨라고 생각하면 99% 오산이다. 1분 뒤 날씨가 어떻게 변할 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 지금 날씨가 좋다고 너무 좋아할 일도, 날씨가 나쁘다고 너무 실망할 일도 아니다. 경험상 얘기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아일랜드 날씨가 짜증스럽고 선글라스와 우산을 번갈아 쓰는 것이 좀 귀찮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애인 변덕에 장단을 맞춰주듯 마음을 비우는 것이 본인의 정신건강에 좋다.

7월의 마지막 토요일.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눈을 떴는데, 오후에는 청자켓에 머플러까지 돌돌 두르고 흐린 하늘 아래 차를 마셨다. 아일랜드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진 않지만 한 계절이 끝날 땐 이런 날씨의 변덕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덕분에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난 감기에 걸려버렸다. 어젯밤부터 목이 칼칼하고 머리도 지끈지끈, 어질어질한 것이, 바람 한 자락만 불어도 몸이 으슬으슬하다. 이런 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이다. 바질향 솔솔 나는 토마토스프도 좋고, 당근, 호박, 감자 등 큼직한 야채 건더기가 자박자박 씹히는 맑은 국물의 야채스프도 좋다. 레드렌틸콩을 푹 끓여 생레몬즙을 넣어 먹는 중동스타일 렌틸스프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프 중 하나다. 한국의 찌개나 국처럼 국물 음식이면서도 밥과 김치가 따로 필요 없고 스프 한 그릇으로 든든한 밥도 되고 가벼운 간식도 되니, 스프는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먹던 '국물'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대용식이 되었다.

사실 아일랜드가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지만, 아일랜드에서 맛볼 수 있는 스프의 종류는 내가 가본 어떤 유럽 나라보다도 다양하다. 최근 유기농 야채와 허브로 끓여낸 한 그릇의 건강한 스프를 맛볼 수 있는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나에겐 행복한 소식!

오늘은 '블레이징샐러드(Blazing Salad)' 내 단골 샐러드바에서 토마토 베이스에 인디언 향신료로 포인트를 주고, 렌틸콩과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만든 스프를 먹었다. 톡 쏘는 커리향이 느껴지는 따뜻한 스프 한 그릇에 으슬거리던 몸이 금새 따듯해졌다. 한국에 갈 때마다 아일랜드가 그리워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따끈한 스프가 생각나기 때문! 요 맛있는 스프 한 그릇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시 힘을 내 흐리고 바람 부는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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