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공항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목요일 저녁 7시의 더블린 공항은 한산하다. 휴가시즌이라 한창 붐빌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내가 '도착하는 곳'에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출발하는 곳'은 지금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어딘가로 태양을 찾아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을지도.
나는 더블린 공항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그녀는 지금 마드리드에서 더블린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을 것이다. 친구는 10시가 넘어 도착할 예정이지만 퇴근시간의 복잡한 시티센터에서 서성이기 싫어 조금 일찍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목이 말라 차가운 사이더를 시켰는데 반병을 비우기도 전에 몸이 으슬으슬 춥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목도리를 칭칭 감고 외투자락을 꼭꼭 여민 채 사이더를 홀짝이며 창밖을 보니, 거리의 사람들도 제법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다. 한국은 이제 열대야의 날들이 시작되었다는데 나는 이제 한국의 열대야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매해 한국에 갔지만 늘 여름을 건너 뛰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밥 대신 입에 달고 살던 달고 시원한 수박의 맛도, 이젠 혀끝에서 어설프게 맴돌 뿐.
현재 마드리드 근교에 살고 있는 친구와 나는 3년 전 더블린의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다. 친구는 더블린에서 어학연수할 때 만난 스페인 남자랑 1년 반 전에 결혼했다. 1년 연수를 마치고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나는 친구에게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저렇게 영영 헤어져야 하다니 안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존이 몇 달 후 한국에 온다는 약속이라도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냥 아무 약속도 하지 말고 두고 보자'고 했다니 나 같으면 그런 식의 원거리 연애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 예상을 깨고 친구는 2년 가까이 그와 스카이프 연애를 지속했다. 서로 떨어져 있으니 외롭고 힘들긴 하지만 다른 남자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든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느날 "언니, 나 담달 말에 스페인으로 이사가"라고 깜짝 통보를 했다. 한달 사이 그녀는 귀국 후 어렵게 구한 직장도 그만두고 결혼한다는 떠들석한 소식도 없이 조용히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마드리드에서도 시청에서 그의 가족들만 참여한 가운데 조용히 식을 올렸다. 나도 외국남자와 결혼하긴 했지만 나야 내가 이미 어느 정도 살아본 나라에서 사는 거고 영어도 어느 정도 되니까 그렇다치고,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그녀가 스페인의 낯선 도시에 살겠다고 간다니 진짜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이렇게 친구가 스페인으로 떠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반이란다. 남편과 단둘이 아니라 남편의 어린 딸과 함께 셋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 너무 놀라 할 말을 잠시 잊기도 했다. 나라면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이렇게 용감한 내 친구에게 찾아온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그녀와 주고받는 카톡을 통해 그녀의 고민과 아픔을 들었다. 타국살이를 하며,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남자와 살며 겪는 우리의 어려움과 갈등은 공통점이 많아 그런 잠깐잠깐의 수다로도 서로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친구의 갈등은 대체로 내것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할 때가 많았다.
지난 3월 말, 난 그 친구가 보고싶어 마드리드로 날아갔다. 우리는 톨레도와 세고비아를 함께 여행하며 하루종일 목이 아프도록 수다를 떨었다. 더블린에서 함께 보낸 8개월보다 그때 함께 했던 3일 동안 우리는 더 많이 친해지고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며, 그녀가 함께 살고 있는 남편 필리오와 그의 딸(지금의 내 친구의 딸이기도 한) 루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난 내가 보고 있는 그 풍경 속의 친구를 축복했다.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된 스페인의 작은 타운, 스페인어를 쓰는 가무잡잡한 피부의 남자와 그의 어린 딸이 눈물이 아닌 미소가 되기를 기도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친구가 도착한다. 더블린의 긴 여름해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친구의 삶은 여전히 녹녹치 않다. 반복되는 문제들과 잘 풀리지 않는 매듭...그래서 그녀에겐 그녀만의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고, 사실 그것이 그녀가 아일랜드에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워본 적 없고, 내 자신의 아이조차 없는 내가 감히 그녀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 내가 할 일은 그녀가 이곳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며 마음의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편안하고 따스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 어쩌면 아일랜드의 차가운 바람이 그녀가 흘렸던 눈물 자리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줄런지도. 공항에 오는 길,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체리를 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