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쉬 영화 나눔 (1)
"너는 그리고 못생기기도 했어."(You're ugly, too) (덧글: 영화를 보기 전에는 '너도 못생겼어'라는 뜻이라 생각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 대사가 '게다가 못생기기까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제목보다, 나는 늘 이렇게 약간 비뚜름한 제목에 더 끌리곤 했다. 게다가 포스터 속, 아일랜드의 아스라한 풍경을 배경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와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영화를 보기 전부터 마음을 천천히 적시듯 스며들고 있었다.
결혼 후, 아일랜드가 '잠시 머물 곳'이 아닌 '내가 앞으로 살 곳'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내 관심의 촉수도 조금 더 '아이리쉬'적인 것들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영화라면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유독 아일랜드 영화,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의 새로운 세대 감독들이 만든 인디영화들을 찾아보게 되는 이유다.
내가 처음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영화를 통해서였다. 아일랜드의 대표감독 짐 쉐리던의 작품들(<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과 영국감독 켄 로치의 작품들(<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랜드 앤 프리덤>...)을 보며,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묘한 친밀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영화들은 대부분 그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만든 것들이었고, 현재 아일랜드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만나기 힘들었다. 그리고 등장한 영화가 바로 <원스>! 아일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희노애락의 삶과 관계 안에 녹여 만든 이 아일랜드의 저예산 독립영화가 의외의 히트를 치면서 갑자기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버스킹(거리공연)'의 낭만을 심어준 것도 이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아일랜드에서 만난 한국 사람 중에 이 영화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아일랜드까지 날아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 게 중에는 '원스'에 나왔던 장소에서 버스킹을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청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원스>에 마음을 빼앗겼던 사람 중 하나였고, 당시 남자친구가 다운 받아 준 사운드트랙을 하루종일 반복해서 듣곤 했다. 내가 처음 아일랜드에 온 것이 그 영화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아일랜드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심어준 어떤 것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일랜드에 온 후로 한국에서는 개봉할 것 같지 않은 아일랜드 영화들을 볼 기회가 많아졌다. 아일랜드 집시들의 거친 삶과 독특한 문화를 담은 <킹 오브 더 트래블러즈(King of the travellers)>, 자아를 드러내기 두려워 마스크를 쓰고 연주하는 인디뮤지션의 이야기 <프랭크(Frank)>(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등 지금 이 시대 아일랜드를 살아가는 아이리쉬들의 생생한 삶을 영화로 맛보며, 나는 아일랜드만의 아이리쉬적인 매력에 조금씩 더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유 아 어글리 투>를 보고나서 문득 아일랜드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아일랜드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영화를 통해 발견한 아일랜드의 모습을 기록해 두고 싶은 이유에서다.
엄마를 잃은 한 소녀가 있다. 그리고 소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외삼촌이 그녀를 돌보기 위해 찾아온다. 교도소 복역 중의 특별출소다. 그런 범죄자 삼촌이 갑자기 엄마 역할을 대신 하러 찾아오다니, 소녀는 그닥 반갑지 않다. 소녀의 삼촌인 남자 역시 어색하고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쌓여간다. 그렇다고 결론이 할리우드영화처럼 '그러다가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마무리되었다면 이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영화는 결코 두 사람의 복잡한 현실을 동화화하지 않고, 아픔과 갈등을 자연스레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자라나는 과정 안에 실제적이고도 따듯하게 녹여낸다. 섬세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대사 하나하나...바로 이 영화로 데뷔한 마크 누난(Mark Noonan) 감독의 작가출신 경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이 영화는 어딘지 <원스>랑 좀 닮아 있다. 뮤지션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음악이 영화 전체를 부드럽게 장악하며 스토리라인과 밀착되어 흐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귓가가 아닌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흐른다는 점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작은 타운과 동네 펍, 어딘지 황량하면서도 한없이 다정한 풍경들을 보면서, 나는 아일랜드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일랜드가 그리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