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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Feb 04.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기

변하는 상황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를 바라보다

05년산 스코다가 드디어 운명을 달리했다. 작년 11월 즈음 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몇 달을 굴렸으니 그만하면 잘 버틴 셈이다. 하지만 차가 없음으로 해서 견뎌야 하는 불편함은 얄짤없다. 당장 다음날 아침부터 더블린까지 버스로 출퇴근해야 하는 존은 물론, 존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던 나도 내 소소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도보, 버스, 기차를 총 동원해 하루 10유로씩 지불하며 서너 시간을 오가는 길에서 보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수 년 전부터 더블린으로 이사가지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건만! 잠잠해졌던 불만이 다시 뭉글뭉글 올라오기 시작하지만 꾹꾹 참아야 한다. 어차피 지금 현재로는 금세 이사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괜히 딴지를 걸었다가는 부부 사이에 날만 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단 싼 중고차라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즐겁게 생활하려면 내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나마 올해 겨울은 예년에 비해 비도 덜 오고 심한 추위도 없어 차 없이 다닐만하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현실은 늘 만만치 않다. 새해에 세운 그럴듯한 계획과 결심들이 무색하게 나의 1월은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무심하게 흘러갔다.  한국에서 <초록빛 힐링의 섬 아일랜드에서 멈추다> 출판기념 행사를 마치고 아일랜드에 돌아온 후 앞으로 무얼하고 살아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 기다림과 수고 끝에 좋은 결과물을 얻은 것에 말못할 만큼 깊은 감사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 감사는 점점 퇴색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을 한 권 냈다고 수입이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온 상황에서 책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해 연계적인 수입원을 효율적으로 찾아나서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고 어떤 상이나 공모에 당선된 경우처럼 스포트라이트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도 없다.  게다가 ‘윈터블루스’를 부르는 아일랜드의 흐리고 조용한 겨울의 시간이 나를 더 가라앉게 했다. 다음 책에 대한 구상도 빨리 마치고 원고를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마저 보태져 밤마다 뻐근한 어깨 위로 불면증이 내렸다.


차가 고장난 지 일주일째. 오랜만의 뚜벅이 생활이라 존도 나도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었다. 차가 없으니 굳이 존의 이른 출근길에 따라 나설 이유가 없어졌고, 자연스레 나는 존이 출근한 후 조금 느긋하게 집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마다 다트역까지 걸어가는 40분 동안 기도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기도라고 해서 심각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나는 친구랑 이야기하듯 하나님께 내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걱정, 답답함을 털어놓았는데 생각해 보니 이런 기도의 시간을 참 오랜만에 갖는 것 같았다. “사실 진짜 제가 살고 싶은 삶은 현재의 상황,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떻든지 ‘오늘 주신 하루’에 감사하는 삶이에요. 그런데 그게 참 잘 안돼요...” 그때 내 마음을 흔드는 잔잔한 깨달음이 있었다.


난 이미 너에게 영원한 기쁨과 평안을 주었단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사라지거나 퇴색하지 않는.

남이 가진 것과 비교하지 말고, 문제나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너를 향한 나의 특별한 목적과 계획을 신뢰하렴.

모든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나의 사랑 안에서 쉬렴.

나의 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너에게 부어진 은혜를 세어보렴.

사실 성경말씀처럼 ‘범사에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반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새해를 맞으며 깨알같이 적어둔 굳은 결심들이,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길 때마다 쉽게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내 자신의 연약함을 본다. 매순간 내 느낌, 감정, 본능에 따르지 않고, 옳은 것, 선한 것,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어느 순간 보면 나는 내 감정과 느낌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 관심사가 온통 ‘나’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하루를 살고 나면 뭔가 바쁘고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깊은 만족이 없다. 그저 몸은 피곤하고 내일 할 일을 걱정과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내가 내 삶을 스스로 끌고 가려고 힘쓰지 않고,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창조자의 마음에 귀 기울이면 신기하게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삶이 내가 바라고 계획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시고 늘 내 곁에 계시고 나를 그의 목적에 따라 인도하고 있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나를 평안하게 하고, 평안이 주는 평정심 속에서 수많은 감사의 제목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빨리 가고 싶은데 기다리라고 하시면 속도를 늦추고 기다리고, 반대로 서두르라 하시면 별로 마음이 당기지 않아도 미루지 않고 일어나 행동하는 거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이렇게 살 때 내 삶에서 일어나는 작고 큰 기적들, 깊은 평안과 만족을 매일 경험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존이 전화를 했다. 오늘은 집에 같이 가자며, 던리어리 도서관에서 자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침에 기도하다가 얻은 깊은 위로 덕분에 마음이 한껏 부드럽고 너그러워진 터라 뭐든 존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저녁 6시30분쯤 도서관에 나타난 그가 집에 가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런데 그가 향한 곳은 다트역이 아니라 도서관 주차장이었다. “왜 그쪽으로 가는데?” 하고 물으면서도 뭔가 있구나 하는 확신이 왔다. 가슴이 점점 두근대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검정색 차 한 대였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정확히 일주일만이었다. 물론 연식이 10년도 넘은 중고차이지만 차가 달린 거리는 평균 5년 정도 된 차와 비슷했고, 차주가 여자라는데 어찌나 관리를 잘 했는지 차 내부도 새 차처럼 깨끗했다. 게다가 브랜드도 아우디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블랙락칼리지 교사가 중고차판매업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 알게 되었고, 차는 절실한데 예산이 없어 고민하는 우리의 사정을 들은 그가 한국돈 100만원에 이 차를 우리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고생 안해도 된다!” 존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차가 없어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차까지 덤으로 선물로 받으니, 아무리 넘치게 감사해도 모자랄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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