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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pr 07. 2020

우리의 우주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

4월 3일 : 코로나의 일상에도 봄은 오고

Dear diary,


종일 비 오고 흐리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어제 늦은 오후 잠깐 흩뿌린 비를 제외하면 일주일째 이렇게 날이 좋을 수가 없어. 밖에 돌아다녀야 할 때는 비가 지겹게 오다가 집에만 있어야 할 때는 이렇게 눈부시게 화창하다니, 머피의 법칙이 딱 맞아 떨어지는 요즘이야. 그래도 봄볕이 내리는 창가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4월이네...

새봄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가 싹 물러가주면 참 좋으련만,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은 아직 코로나와의 전쟁이 한창이야. 뉴스를 보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이 사태가 언제쯤 끝날까요?”라는 리포터의 질문에 “아무도 모릅니다.”라는 전염병전문가의 답을 들을 때야. 끝나는 때를 알면 참고 버티는 게 조금은 쉬울 텐데, ‘알 수 없다’는 모호함이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열심히 싸우려는 의지를 흔드는 거지. 하지만 정확히는 몰라도 언젠가 이 상황도 끝날 테고, 백신도 개발될 테고, 다시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친구들과 펍에서 맥주잔을 부딪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힘을 내는 거야.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하나의 적을 두고 함께 싸우고 있는 요즘, 이 우주에 공존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하게 관계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돼. 정확한 원인과 결과로 규명되는 과학의 세계와 끝없는 모순과 불연속성의 세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예상하고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이 몇 퍼센트나 될까? 2020년도가 시작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설레어 했는지 기억나? 2000년도 밀레니엄을 맞을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왠지 2020이라는 숫자의 정렬이 주는 느낌도 심상치 않고 또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는 데 모두들 큰 의미를 부여했었잖아. 그런데 웬걸, 그 대망의 새해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진 거야. 그것도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지더니 이제 4월, 꽃피는 봄이 왔는데도 바이러스는 잡힐 기미가 안 보이고 오히려 의료시스템이 열악한 제3국으로 퍼져가기 시작했어. 넘쳐나는 환자들로 각 나라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고,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은 물론 이동제한명령으로 집안에서만 종일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어. 그야말로 ‘세상의 마지막 때’를 맞은 듯 사람들은 두려움과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말이지, 오랜 세월 인간이 견고히 세우고 지켜온 질서체계가 와르르 무너지고 나니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큰 축복이었음을 걸 깨닫게 되는 거야.


그 중 가장 먼저 깨닫게 된 건 아마도 ‘일상의 소중함‘일 거야. 습관처럼 들러 모닝커피를 마시던 단골카페, 친구와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즐겁게 수다 떨던 오후, 바쁘게 보낸 하루의 수고를 토닥이며 친구들과 펍에서 맥주잔을 부딪치고 가끔씩 멋진 레스토랑에서 존과 기분 내던 특별한 저녁, 휴가 때마다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기 위해 떠나던 짧은 여행 따위들. 너무나 당연하게 삶에 존재하던 시간들을 빼앗겨 버린 후 내가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었는지 느끼고 있어. 물론 그 소중한 일상의 중심에 있는 건 ‘사람’이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 심지어 모르고 스쳐가던 사람들조차 그리워져.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눈과 눈을 마주친다는 것,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안아주는 온기의 행위가 사라진 세상은 참 허전하고 쓸쓸해. 나에게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아. 그래도 이럴 때 온라인 세상이 있어서 다행이야. 물론 직접 만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리운 얼굴을 화상으로라도 마주할 수 있어서,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게다가 좋은 점도 있어. 각자 생활에 바빠 한 장소에 모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다들 집에 있으니 같은 시간에 온라인 플랫폼에서 모이는 게 더 쉬워진 거야. 더욱이 모두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다 보니, 그동안 소홀했던 서로의 안부에 좀 더 마음을 기울이게 되더라. 메시지나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전하고, 이 시기를 잘 이겨내자고 격려하고.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고통을 나누려는 다양한 활동이 SNS를 통해 세계적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어. 의료시스템이 열악한 나라에 부족한 의료장비를 지원하기 위해 기부캠페인을 펼치고, 음악가들은 자신의 노래와 연주를 인터넷 플랫폼에 공유해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이번 바이러스 대유행이 한두 나라에서만 일어나고 끝났다면 이렇게까지 전 세계가 한마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거야.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고통은 깊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신체적으로는 온기를 느낄 수 없는 2미터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렇게 마음으로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해.



오늘 오후에는 브레이를 살짝 벗어나 조금 긴 드라이브를 했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니 차를 타고 가는 동안이나마 꽃구경 좀 실컷 하고 싶었거든.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뭉게뭉게, 막 돋아나기 시작한 나뭇가지의 연둣빛 새순들이 가슴 시릴 만큼 예뻤어. 개나리와 목련, 벚꽃처럼 한국에서 많이 보던 꽃들을 보니 갑자기 한국의 봄날이 그리워지더라. 아일랜드는 봄만 되면 히스라는 노란색 덤불꽃이 지천이야. 주로 산등성이를 타고 번지듯 피어나서, 어떤 산은 멀리서 보면 전체가 노랗게 보여. 몇 해 전 엄마가 아일랜드에 오셨을 때 이 꽃이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그 히스’라고 알려주셨어.


존과 나는 페어뷰공원이 시작되는 길에 차를 세우고 함께 공원을 가로질러 바닷가를 따라 걸었어. 바닷가라지만 개펄이 넓어서 마치 드넓은 모래벌판을 걷는 기분이었지. 내 등 뒤로 바람이 엄청나게 세게 불어왔어. 몸에 힘을 빼고 바람에 기대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강한 바람이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내고 통에 내 발은 저절로 뛰어가듯 빨라졌어. 그 느낌이 재미있어서 양팔을 활짝 벌리고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마구 달려갔지.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어떤 지점, 어쩌면 지구의 끝을 바라보면서. 바람이 만들어내는 모래 회오리가 영화의 하늘로 치솟다가 공기 중에 흩어졌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풍경 속을 사람들은 모래사막을 건너는 수행자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천천히 걷고 있었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 오랜만의 비라서 그런가, 왠지 반갑고 시원하더라. 이 비에 코로나도 나 씻겨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 이 코로나 위기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고,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펍과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소풍을 즐기겠지. 그때,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힘들게 건너온 시간이 가르쳐준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때까지 계속 가슴 따뜻한 일들이 일어나길 기도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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