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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pr 21. 2020

홀로 남은 아내의 토요일

4.18 :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해 생각하다

Dear diary. 오늘은 존이 블랙락컬리지에서 일하는 토요일이라 그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집에서 긴 시간을 혼자 보냈어. 2주 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담당 쉐프로 일하고 있거든. 일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야. 하긴, 눈 뜨자마자 밖으로 튀어나가야 하고 컴퓨터라면 질색팔색 하던 이가 갑자기 집에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 일해야 하니 얼마나 좀이 쑤셨겠어. 게다가 ‘줌Zoom’이다 ‘팀Team’이다, 처음 들어보는 화상미팅 기술까지 사용해야 하니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거든. 블랙락컬리지까지 가는 길에 가장 좋아하는 킬라이니언덕과 도키하버를 지날 수 있고, 간만에 바쁘게 몸 쓰는 일을 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얼마 되지 않는 일당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야. 매일 껌딱지처럼 붙어 지내던 남편이 일하러 가고 없으니 집이 썰렁한 게 마음이 허전하네. 뒷산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조용한 집에서 덜컥 안겨진 혼자만의 긴 시간. 혹시라도 몸과 마음이 높은 파도처럼 어수선하거나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잔잔한 수면 위에서 부드럽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물결처럼 하루를 보내려 애쓰고 있어. 1시간 남짓 아침요가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닦았지. 점심때는 올리브오일에 구운 현미떡에 아몬드크림치즈를 바르고 따뜻한 렌틸콩스프를 곁들여 먹었어. 난생 처음 시도해 보는 조합이었는데 신기하게 맛있더라. 문득 어린 시절 가끔 나만의 ‘창작요리’를 만들어 먹곤 하던 기억이 나네. 사실 난 요리사들이 만드는 맛있는 음식을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 어떤 재료나 음식들의 조합, 어울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더욱이 요리사 남편과 국제결혼까지 하고 나니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은 점점 더 국적 불명이 되어가는 것 같아. 음...좋게 말해 ‘퓨전’이라고 해두자.

오후에는 친구 기림이가 보내준 다큐멘터리를 한 편 봤어. <헤로니모>라는 제목인데, 1900년 대 초 애니깡(선인장)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쿠바로 이주한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야. 이주노동자 300명. 그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수탈이 심해지자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었지. 언어도 모르고 아마도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머나먼 땅에 배를 타고 도착한 그들은 노예처럼 일했어. 원래 4년 계약을 맺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사이 한일합방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졌고, 그들이 돌아갈 조국도 함께 사라져 버린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쿠바에 남게 된 이들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렇게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삶을 이어나갔어. 언젠가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날 다시 돌아가리라는 꿈으로 버텨나갔지. 그 때 이주한 한인 1세대 중 임천택이란 사람이 있었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쿠바한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자금을 모아 고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분이래. 영화 제목인 ‘헤로니모’는 그의 장남 이름인데, 아버지를 쏙 빼닮아 정의감이 강하고 두뇌도 명석했다지. 쿠바 최고 대학인 아바나대학 법대에 들어가는데 바로 그곳에서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 피델 파스트로와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게 돼. 졸업 1년 전 학업을 그만두고 카스트로와 함께 진보정당에 입당한 후 그의 삶은 사회약자의 편에서 독재정권에 대항해 싸우는 혁명가로 거듭나지. 늘 대의를 앞세웠던 그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깊어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늘 다정한 아버지, 할아버지였다고 해. 쿠바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쿠바한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구조사를 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한인커뮤니티를 처음 자리 잡게 한 사람도 바로 헤로니모였어. 그는 1995년 한국정부의 초대를 받아 광복 50주년 행사에 쿠바한인 대표로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 땅에 발을 딛었지. 머리는 하얗게 쇠었지만 아직도 청년처럼 빛나는 그의 눈동자가 교차하는 만감으로 그렁해지는 걸 보니 가슴이 뭉클했어.

영화를 보는 내내 한인들이 낯선 땅 쿠바에서 겪어야 했을 절망과 외로움의 고통에 가슴 아프면서도 대를 이어 그들만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을 멈추지 못했어. 내가 쿠바의 한인들처럼 치열한 환경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왠지 더 공감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사실 나는 평소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공감대와 관계맺음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이제껏 내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어. 그런데 영화에서 전혀 한국인 같지 않은 외모의 20대 쿠바한인 3세 여성이 “나는 한국사람입니다”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는데 ‘대한민국 만세’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더라. 영화를 보고 나서 테라스에 나가 보니 살짝 기운 늦은 오후의 햇살이 앞 산 머리 위에 예쁘게 내리고 있었어. 영화 볼 때 병맥주를 한 병 마셨더니 살짝 알딸딸한 게 은근히 쓸쓸하면서도 기분도 좋더라. 아일랜드 작은 마을 브레이에 코로나로 갇혀 있는 디아스포라. 그래도 쿠바의 한인들을 생각하면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어. 난 아일랜드를 무척 사랑하지만 이상하게 힘들 때는 한국 생각이 나더라. 몸이 아플 때 엄마 생각이 나는 것처럼. 만약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그래도 나를 책임지고 돌봐줄 곳은 내 나라 한국일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는 거야. 락다운 해제에 대한 시기가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와중에 5월 5일까지 연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 뉴스를 듣고 ‘앞으로 2주나 더 이렇게 갇혀 지내야 한다니!’ 하는 불만이 먼저 튀어 나왔지만, 2주 후 한결 따뜻해진 햇빛과 함께 “다시 기차를 타고 더블린에 갈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이 찾아올 상상을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어. 긴 기다림 끝에 맛보는 자유가 얼마나 달콤하고 소중한지 그때 다시 얘기해 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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