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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pr 27. 2020

갇힌 시간을 치유하는 창의적 놀이

4월 23일 : 음악초보의 노래 짓던 날

Dear Diary. “오늘은 아일랜드가 락다운 된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는데 아나운서가 무슨 중요한 기념일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어. 나는 인간이 만든 시간의 단위가 부여하는 의미를 중력을 느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어. 그러고 보니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가고 싶은 장소를 가지 못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더라. 한국은 코로나가 거의 잡혀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고도 부러웠어. 아일랜드에도 빨리 그런 봄 같은 시간이 왔으면... 내가 사랑하는 이니스케리의 작은 숲과 킬라니 언덕은 잘 있는지 궁금하다. 그 사이 꽃들도 만개하고 녹음도 더 짙어졌을 거야. 2km 이동제한 규제가 시행된 후로는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집 앞 개울가나 브레이 바닷가밖에는 없거든. 그래도 이럴 때 도시 한복판이 아니라 산과 바다가 가까운 외곽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자연이 주는 위로라도 없었으면 이 시간을 건너는 게 더 힘들었을 거야. 코로나 전에는 시티까지 너무 멀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많이 든다고 불평도 많이 했는데. 참 아이러니하지?

요즘 존과 나는 밖에 나가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을 비워낼 수 있는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 혹은 놀이를 찾아 하면서 시간을 보내. 평소에는 주로 먹던 음식을 반복해서 만들었는데 요즘에는 전에 안 사본 재료를 사서 안 해본 요리에 도전해 보고 있어. 특히 남편이 요리사다 보니 요리에는 크게 관심을 안 갖고 살았는데 지금은 내가 훨씬 더 요리를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러던 중 지난 주 월요일부터 존이 줌으로 온라인 기타 수업을 시작했어. 덕분에 처음으로 나도 줌의 세계에 발을 들였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수요일마다 패스웨이 센터에서 존이 진행하던 수업인데 나도 멤버로 참여해 기타를 배워왔거든.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을 보니 참 좋더라. 처음에는 화면에 뜨는 내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해서 다른 사람들 얼굴에만 내내 시선을 고정하고 대화를 했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이젠 슬쩍슬쩍 내 얼굴도 보고 그래. 내가 웃을 때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이런 제스처를 많이 쓰는구나, 생각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문자만 주고받는 것보다, 목소리만 듣는 것보다, 얼굴과 표정을 보면서 목소리를 들으니 훨씬 가깝게 느껴져 좋더라. 화면 너머 그들의 체온과 마음의 온기도 미세하게나마 전해오는 것 같았어. 우리는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 오랜만에 기타줄을 잡으니 굳은살이 사라진 왼쪽 손가락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마저도 반갑고 좋았어.


난 기타수업이 끝난 후에도 기타를 가방에 집어넣지 않았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거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치며 보내는 존과 달리, 나는 보통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음악과 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리고 다음날부터 조금씩 시간을 내어 기타를 잡았어. 인터넷에서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들을 찾아 쳐보기도 하고, 존의 기타수업 때 함께 연주했던 곡들의 악보를 꺼내 복습도 하고.

오늘 오후, 다시 기타를 잡았어. 생각 없이 기타줄을 튕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멜로디가 있어 기타코드와 함께 적어 내려갔어. 그리고 멜로디가 떠올랐을 때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을 가사를 써서 노래를 만들었어. 혼자 30분 정도 연습해 본 후 존을 불렀지. “나 노래 만들었어. 코로나에 대한 노래야.” “진짜? 어디 들어보자!” 어설픈 나의 연주와 노래가 시작되었어. 물론 그는 언제나처럼 딸내미 격려하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그가 기타를 가져왔어. 역시 프로 기타리스트답게 내 곡 중 거친 부분을 다듬은 다음 인트로를 덧붙이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핑거픽킹 주법을 찾아 연주를 시작했어. 나는 그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지. Spring has come Even though we can’t meet Spring has come Even though we can’t touch But we are together in heart Waiting for the healing Spring has come To give us a little hope Spring has come For you and me, and the world 어린아이들이 심심해야 스스로 놀거리를 만들어 창조적으로 노는 것처럼, 매일 덩어리 채 주어진 시간을 소화하려고 하다 보니 내가 이렇게 노래를 만들면서 놀고 있는 거야! 겨우 초급자의 취미 수준이지만 리듬과 멜로디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느꼈어. 흐르는 음표들을 따라 마음에 고여 있던 무의식의 찌꺼기들이 씻겨나가는 느낌이랄까. 차분해지는 나의 마음결을 따라 오늘 하루 수고한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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