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 갈 수 없으니 더 가고 싶어서
Dear diary. 이번 주 내내 두통과 인후통이 오락가락 몸이 안 좋아서 혹시 코로나에 걸린 거 아닌가 걱정했더니 존이 하는 말. “그럴 리 없어, 넌 잘 먹고 있잖아.” 듣고 보니 그렇더라? 코로나에 걸리면 입맛도 없고 냄새도 잘 못 맡는다는데 내 배꼽시계는 너무 정확하게 울려서 탈이니까. 일단 코로나는 아닌가 보군, 하며 안심했지. 한동안 재밌던 요리가 살짝 시들해져서 새 장난감을 원하는 어린애처럼 새로운 놀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어. 그러던 차에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온라인 사진 강의를 발견했고, 내일부터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지. 내친 김에 할까 말까 내내 고민하던 스페인어 온라인 강의도 질러버렸어. 둘 다 무료는 아니지만, 때론 내 돈을 쓰는 게 동기부여에 확실히 도움이 되거든. 맞아, 무언가 집중할 것이 필요했어. 감정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 사실은 요즘 마음이 많이 허전했거든. 존이랑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고, 운동이랑 산책도 매일 하고, 줌 미팅으로 친구들이랑 가끔씩 온라인으로 수다도 떠는데 왜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는지 모르겠는 거야. 코로나 때문에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집단우울증이 나에게도 전이된 것일까? 생활 패턴은 느슨해졌지만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과 심리적 피로감이 축적되어서 나타나는 증상일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최근 부쩍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더라. 아차, 향수병이 도졌구나! 깨달았지. 한국의 가족들이 주말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는 소식에, 늘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중 한 명이 새로 얻은 스튜디오에서 파티를 한다는 소식에,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거야. 예전 같으면 좀 아쉽긴 해도 어차피 나는 아일랜드에 있어 못 가니 그러려니 했을 텐데. 친구들이 페북이나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을 보면서도 부럽고 그리운 마음에 자꾸만 가슴 한편이 쿡, 쿡, 아팠어.
향수병이라니, 정말 오랜만이야. 아일랜드에 살기 시작한 후 처음 몇 해는 계절 따라 찾아오는 독감처럼 오다가다 했지만, 아이리시 남자와 결혼하고 이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향수병이 오더라도 가벼운 감기처럼 아주 가끔씩 스쳐가는 정도였어. 특히 이곳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카톡 채팅창을 들락거리는 시간도 서서히 줄어들었지. 그렇게 잊고 있었던 향수병이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친 거야. 아마도 지난 주 토요일 처음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 몇 명과 ‘행아웃’으로 온라인 미팅을 하고 나서가 아닌가 싶어.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내 아이패드 화면에 떠오르고, 그들을 마지막 본 지난해 겨울의 어느 밤이 어제였던 듯 우리는 도입부 없이 바로 본격적인 수다에 돌입했지. 한국과의 시간 차이 때문에 한국시간 밤 10시, 여기 시간으로는 오후 2시쯤 시작했는데 웃고 떠드는 사이 2시간이 훌쩍 흘렀어. 하고 싶은 얘기를 채 반도 못했는데 말이야. 한국은 자정을 막 넘겼고, 난 긴 하루를 보낸 친구들의 휴식을 위해 아쉬운 ‘안녕’을 했어. 알록달록한 빛깔로 가득 찼던 컴퓨터 화면이 다시 파란 바탕으로 돌아왔고 전원을 끄는 순간 검은 색으로 변했어. 서로의 말 뒤꼬리를 잘라 먹으며 어수선하게 주고받던 대화와 웃음의 소음이 사라진 방안은 이상하리만치 적막했지. 나는 부엌에서 한 병 남아있던 맥주를 가져와 책상 앞에 앉았어. 컴퓨터 화면을 보느라 창을 가렸던 커튼을 젖히니 오후 4시의 눈부신 햇살이 소리 없이 책상 위로 쏟아져 들어왔어. 나는 맥주병을 기울여 작게 한 모금 넘겼어. 청량하게 톡 쏘는 차가운 액체가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참 좋더라.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불쑥 나는 거야. 그때 알았지. 아, 코로나가 아니라 향수병이 왔구나. 이번 주 내내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감지했었나, 존이 오늘 저녁을 먹으며 그러더라. “코로나 잠잠해지면 나 걱정 말고 혼자 한국 다녀 와. 나도 이제 컴퓨터로 미팅하고 수업하는 거 익숙해져 혼자서도 괜찮아. 가서 엄마 집밥도 실컷 먹고 가족여행도 하고 친구들이랑 원 없이 회포도 풀고 와.” 미우나 고우나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남편밖에 없나 봐. 그 말이 너무나 고맙고 따뜻해서 또 바보처럼 눈물이 났어. 그래,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나긴 격리의 시간이 끝나는 대로 나는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탈거야. 오가는 길에 코로나에 걸릴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향수병부터 치료하고 오려고. 그때까지, 하루하루 지금 이곳의 시간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행복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