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흐르던 네모나고 검푸른 바다의 조각들
한국 사람치고 김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살짝 구워서 양념장에 찍어 먹는 김, 참기름 들기름 발라 구운 조미김, 바삭하고 고소한 김자반, 채 썬 무와 섞어 식초에 새콤하게 버무린 김무침, 달큰짭조름하게 조려낸 양념장을 부어 만든 김장아찌까지, 한식 밥상에 김이 빠지면 어쩐지 서운할 정도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도 김을 많이 먹지만 그들마저도 한국을 여행하고 돌아갈 때 포장된 조미김을 잔뜩 사가는 걸 보면 김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은 여러모로 참 매력적이다. 칼로리는 낮으면서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식감을 낸다. 또 쉽게 구할 수 있고 바로 먹을 수 있어 김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마음이 든든하다. 네모나게 자른 김 위에 따뜻한 밥을 조금씩 얹어 한 입씩 싸먹다 보면 밥 한 공기가 금세 뚝딱이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밥상 앞에서 투정하는 아이들도 밥을 김에 싸서 입에 쏙 넣어주면 대부분 잘 받아먹는다. 날 김 몇 장 쓱쓱 썰어놓으면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포장된 조미김을 쉽게 살 수 있는 요즘에는 밑반찬으로 몇 봉지씩 쟁여두는 집이 많다. 게다가 무게도 가볍고 부피도 작아 해외여행 갈 때 비상식량으로 가져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이리시 남자와 결혼해 아일랜드에 보금자리를 튼 지 올해로 8년째. 매번 한국에 갔다 올 때마다 내 커다란 여행가방은 이런저런 한국음식으로 가득 찬다. 그 중에서도 가방에 빈 공간이 남을 새라 사이사이 촘촘히 채워넣는 것이 바로 김이다. 자식들이 성인이 된 후로는 엄마도 시중에 파는 포장김을 사서 드시지만, 그렇더라도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내 가방에는 꼭 지주식으로 기른 김에 국산 기름과 천연소금으로 조리한 품질 좋은 제품을 사서 넣어주신다. 더블린 시내의 한인슈퍼에서도 쉽게 김을 구할 수 있지만 엄마가 사주시는 김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래서 아껴가며 조금씩 먹으려 해도 늘 아일랜드로 돌아온 지 몇 달이면 동이 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김을 정말 좋아했다. 열 살 남짓 소녀시절에는 김만 보면 하도 달려들어 먹어 대서 엄마가 ‘김호랑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시장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던 열댓 살의 나는 동네장이 서는 날마다 엄마를 따라 장에 갔다. 알록달록한 야채와 과일이 산처럼 쌓여 있고, 싱싱한 생선들은 햇빛에 비늘이 반짝였다. 바구니에 담긴 채 살아 움직이는 꽃게나 새우, 해삼, 조개류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검정콩, 조, 수수 등 잡곡류 저울에 달아 파는 가게 옆, 마른 김과 미역, 건어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100장씩 종이 띠로 묶여 있는 마른 김을 사곤 했다. 검고 얇은 김, 초록빛 파래가 섞여 있는 김, 거칠고 도톰한 돌김 등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나는 그 김들이 마치 사각형으로 박제된 검푸른 바다의 조각들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편리성 때문에 대부분 조미된 김을 사먹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직접 구워 먹는 집이 많았다. 김을 굽는 날이면 집안에서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바다냄새가 났다. 엄마는 얼굴만 한 크기의 네모난 김을 한 장씩 펼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린 다음 다시 차례로 쌓아 올렸다. 그리고는 기름과 소금간이 골고루 밴 김을 다시 한 장씩 떼어내 따뜻하게 달궈진 프라이팬에다 천천히 앞뒤로 구워냈다. 나는 종종 그 옆에 서서 엄마가 김을 굽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엄마가 기름에 적신 솔을 페인트칠하듯 김 위에 슥삭슥삭 바르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해보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엄마는 "기름을 골고루 얇게 발라야 하는데 너한테는 어려워"라며 못하게 하셨다. 어쩌면 내가 비싼 참기름을 마구 쓸까봐 걱정되어 그러셨는지도 모르겠다.
김이 익기 시작하면 바다향과 뒤섞인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집안에 퍼져 나갔다. 나는 입안에 고이는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김들이 어서 구워지기를 기도했다. 엄마는 다 구워진 김들을 한 데 모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다음 네모난 통에 담아 밥상 중앙에 놓았다. 엄마가 다른 반찬들을 꺼내고 국과 밥을 국그릇 밥그릇에 담아 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손을 김통으로 뻗는다. 한 장만 먹어 보려 했는데 두 장, 세 장, 자꾸만 손이 간다. 그러면 보다 못한 엄마가 머리에 '콩' 꿀밤을 놓았다.
“반찬으로 먹으려고 만든 걸 그렇게 계속 맨입에 집어 먹으면 어떻게 해! 한 장씩 일일이 뒤집어가며 구우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알아, 요 김호랑이야?”
찔금 놀란 나는 얼른 김통에서 손을 떼고 아빠와 언니, 남동생을 부르러 달려간다. 다 같이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 엄마는 김통에서 내 몫의 김을 조금 덜어 내 밥그릇 옆에 놓아주며 말했다. “김호랑이는 먹을 만큼 따로 놔줘야지. 안 그러면 다 먹어버릴라.”
엄마는 다른 식구들 몫도 공평하게 챙기려고 한 말인데 그땐 철없는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못 먹게 하는 게 마냥 서운했다. 그래도 다음날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통을 열면 어김없이 은박지에 곱게 쌓인 김이 맨 위에 놓여 있었다. 다른 반찬들은 가운데 두고 친구들과 나눠 먹었지만 김만은 예외였다. 나는 김이 담긴 은박지를 책상 아래 선반에 올려두고, 친구들 눈에 띌 새라 몰래 한 장씩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가끔은 기적처럼, 같은 날 저녁에도 부엌에서 푸른 바다의 조각들이 프라이팬 위에서 따뜻하고 바삭하게 익어갔다.
나처럼 한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끔씩 향수병이 찾아온다. 그런데 지난 4월 중순, 갑자기 그분이 오셨다. 봄빛 가득한 광화문 네거리의 소음과 쑥, 냉이, 곤드레, 돌나물 등 한국의 봄에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의 맛과 냄새가 기억 저편으로부터 오감으로 되살아났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항공사 웹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유럽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아일랜드에도 본격적인 봉쇄조치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이었다.
사실 감기처럼 불쑥 왔다가는 게 향수병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보통은 바쁘게 일하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저절로 낫는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향수병은 좀 이상했다.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갑자기 늘어난 시간 덕분에 내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아진 것은 좋았는데,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접하고 가족, 지인들과 안부를 주고받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이 자꾸만 한국으로 달려갔다. 물론 한국에 간다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껏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리운 곳들을 찾아다닐 수 없을 텐데도 그랬다. 하루에 한두 번씩 남편과 함께 동네 공원이나 바닷가를 산책하며 기분을 전환했지만, 모든 가게와 공공시설이 문을 닫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텅 빈 거리 위에서 마음은 이내 다시 허전해졌다.
그럴수록 생각이 그리움의 우물에 고이지 않도록 관심을 분산시켜야 했다. 한동안 쉬었던 스페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매일 아침 유튜브 영상을 보며 요가를 했다. 한 시간씩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열심히 만들어 먹었다. 나는 이렇게 코로나가 가져온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려 애쓰며 평상심이 유지해 나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엄마한테도 평소보다 자주 안부전화를 드렸다. 한국은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었고 유럽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을 때라 엄마는 내 걱정이 더 많았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드렸는데, 엄마가 서둘러 내 안부부터 물었다.
“먹는 건 어떻게, 잘 챙겨 먹고 있니?”
“그럼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삼시 세 끼 다 만들어 먹다 보니 요리에 재미 붙였어. 어제는 난생처음 순두부찌개랑 감자조림도 만들어봤는데 나름 맛있었어요.”
“가져간 김은 좀 남았어?”
“그건 벌써 다 먹었죠, 엄마. 아, 아까워서 한 봉지는 남겨뒀어. 유통기한은 좀 지났는데 계속 냉장고 안에 있었으니까 괜찮겠지?”
“에고 이것아, 그럴 거면 냉동실에 넣어두지. 그럼 좀 오래 둬도 괜찮은데.”
엄마는 김을 우편으로 좀 보내주고 싶은데 아일랜드로 가는 소포길이 막혀 보낼 수가 없다며 속상해 하셨다. 그리고는 요즘 쑥이 얼마나 연하고 맛있는지 내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잠깐 잊고 있었던 봄나물에 대한 향수가 갑자기 물큰하게 차올랐다.
그날 밤 이상하게도 잠이 통 오지 않았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때문인 듯했다. 자려고 노력할수록 옆에서 잠든 남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시계 초침 소리와 엇박자로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3시간 같은 30분이 뜬 눈으로 흘렀다. 나는 잠들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을 포기하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작은 병맥주 하나와 아껴뒀던 조미김 봉지를 꺼냈다. 작은 크기로 네모나게 썰어 네모난 도시락 그릇에 담고 병맥주를 땄다. ‘딱’하는 청량한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깨웠다. 차가운 맥주를 먼저 한 모금 넘긴 후 김을 한 장 입에 넣었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바다향이 성큼 입안으로 들어왔다. 얼른 씹어 삼키고 또 한 장을 입에 넣었다. 하지만 아까워 묵혀두었던 김은 생각만큼 맛있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난 김에서는 살짝 군내가 났고 조금 눅눅했다.
나는 막 구워낸 따뜻하고 바삭바삭한 김이 내 앞에 쌓여 있는 상상을 했다. 어린 시절 조리대 앞에 서서 김을 한 장 한 장 구워주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김을 한 장씩 먹을 때마다 검푸르고 네모난 바다조각들이 뱃속으로 흘러들어와 마음에 그리움으로 고였다. 왠지 그 날만은 엄마가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으렴, 이 김호랑이야!" 하고 말해주실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