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며 성숙하는 시간
뜨거운 여름을 지나자마자 가을 한가운데로 순간이동을 한 듯했던 아일랜드의 8월. 그런데 지구를 반바퀴 돌아 한국에 왔더니 한국에는 아직 뜨거운 여름이 머물러 있었다. 햇빛알러지가 있어 햇빛이 강한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시험공부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은 기분에 아직 남아 있는 더위가 무척 반가웠다. 여름이 끝났다는 것은 올해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고,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선득하고 쓸쓸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천천히 왔다가 천천히 가주었으면 좋겠다. 가을을 기다리는 시간의 설렘을 좀더 오래 즐기고 싶다.
아직 1차지만 일단 시험도 끝나고 남편도 옆에 없으니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가 보고 싶고 우리가 함께하던 일상이 그리운 순간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혼자 하루를 계획하고 내 의지대로 사용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부부에게는 흔치 않게 찾아오는 혼자만의 시간이라 더욱 소중하다.
지난 토요일, 한국 온 지 3주만에 처음으로 동생네 가족을 만났다. 내가 보는 국가시험 끝나고 모이자고 했더니 그렇게 되었다. 언니네 집 근처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아빠한테 조금 이른 추석인사를 하러 광릉추모공원에 갔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6년이다. 아빠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작은 단풍나무가 다행히 푸르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가는 차 안에서는 아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막상 나무 앞에 서니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아빠, 저 왔어요."라는 말만 하고 내 몫의 소주를 부어드렸다. 생전에 나무와 숲을 무척 좋아했던 아빠는 분명 아일랜드의 푸른 들판과 푸른 숲도 무척 좋아하셨을 것이다.
보통 성묘가 끝나면 추모공원 옆에 있는 서운동산에 가서 조카들과 놀다가 돌아가곤 했는데 코로나 거리두기 때문에 함께 못 들어간다고 해서 그냥 서울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워 다함께 엄마집으로 갔다. 대신 엄마가 우리를 위한 어떤 노동도 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굳이 고등어를 굽겠다는 엄마를 겨우 말리고 중국요리를 배달시켰다. 당연히 집밥만큼은 못하지만 가끔 자장면을 나눠 먹는 재미도 있다.
남동생이랑 올캐 얼굴을 오랜만에 보니 괜시리 가슴이 뭉클했다. 내 동생도 어느새 새치가 무성한 중년남자가 되었다. 꼬맹이 조카들은 훌쩍 자라 이제 어른들끼리 자기 얘기하는 것을 의식하며 싫어하는 나이가 됐다. 이렇게 나도 나이 들어가는구나. 아이가 없어서인지 아일랜드에서는 세월이 흐르는 걸 잘 못 느끼고 산다. 그러다 이렇게 한국에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거꾸로 내 몸과 마음 안에 쌓여가는 세월을 감지한다.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 앞에 놓고 언니랑 올캐랑 나랑, 여자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은 조카들 이야기가 주된 주제가 된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지호 이야기를 하다가 그 나이 즈음의 나를 떠올렸다. 먼 기억 너머에 있던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생생하게 소환되었다.
나는 예민하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언니와 남동생 사이 둘째로 자라 욕심도 많고 질투도 많았다. 감정이 풍부한 편이었는데 부끄러움이 많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엄격한 엄마의 훈육방식 때문에 스스로 많이 억누르며 지냈던 것 같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쌓이고,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정도가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일종의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집에 오자마자 숙제를 다 해놓고 다음날 준비물까지 다 챙긴 후에야 밥을 먹는 식이었다. 언뜻 보면 모범생이라 칭찬 받을 행동이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숙제를 하기 위해 노트에 필기를 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내 눈에 똑바르지 않으면 여러 번 지우고 다시 써야 했다. 그 때문에 30분 안에 끝날 숙제를 2시간씩 붙잡고 있었고, 이유를 모르는 엄마는 뭐 하고 있는 거냐며 혼을 내곤 했다. 강박증은 12살 소녀의 상상력 안에서 몸집을 불렸다. 텔레비전에서 사람의 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스쳐 보고 난 후 한동안 내 머리속에서 수많은 뇌세포가 죽는 상상을 하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아동상담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겠지만 그때만 해도 정신과에 가는 것이 터부시 되었던 터라 나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그 시기를 보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 상태를 몰랐고 나는 내 상태를 알았지만 너무 어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 증상을 완전히 극복하고 지금처럼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 즈음 하나님을 만나 완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받아들여지는 조건없는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자 치유가 일어났다. 그 과정을 자세히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금 생각해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 모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한켠에 품고 살아간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내가 내 안의 어린 나를 마주하고 새롭게 이해하고, 위로하고 다독이며 격려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어쩌면 아일랜드에 있는 존도 어린 시절 그의 자아와 만나는 시간을 좀더 많이 보내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 우리를 한뼘 더 성숙하게 해주리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12월에는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